자동차 사고로 정문이 사라졌다. 공원이 활짝 열렸다...도대체 무슨 일이?

윤희일 선임기자
교통사고로 정문이 사라진 우암사적공원 전경. 왼쪽으로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 4호 남간정사 등이 보인다. 윤희일 선임기자

교통사고로 정문이 사라진 우암사적공원 전경. 왼쪽으로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 4호 남간정사 등이 보인다. 윤희일 선임기자

휴일인 지난 18일 오후 4시쯤 대전 동구 우암사적공원 앞. 화창한 날씨 속에 봄 나들이에 나선 사람들로 공원이 붐볐다.

“어, 공원이 시원하게 뚫린 느낌이 드는데…. 뭔가 이상해.”

“몰랐나 보네, 얼마전에 대형 교통사고가 나서 공원의 정문이 사라졌잖아. 그래서 공원 내부 모습이 훤하게 보이는 거야.”

시민들의 이런 대화를 듣고 있다보니, 왼쪽 편으로 이 공원의 핵심 시설인 남간정사(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는 물론 공원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과거 공원 앞에 대형 정문이 있을 때는 밖에서 볼 수 없던 정경이었다.

“문이 사라지니까, 공원이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아요. 개방감이 발군인데요.”

매주 이 공원을 찾는다는 우송정보대 교수 A씨(65)도 달라진 우암사적공원을 크게 반겼다.

교통사고로 정문이 사라진 우암사적공원 전경. 왼쪽으로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인 남간정사 등이 보인다다. 윤희일 선임기자

교통사고로 정문이 사라진 우암사적공원 전경. 왼쪽으로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인 남간정사 등이 보인다다. 윤희일 선임기자

이 공원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지난 달 29일 오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7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공원 앞 곡선 도로를 주행하다가 정문으로 돌진하면서 정문의 절반 이상이 무너져내렸다. 당시 현장을 주행하던 다른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정문 건물은 문화재가 아니었지만, 주출입문으로서 갖는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승용차가 돌진하면서 무너진 우암사적공원의 정문.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승용차가 돌진하면서 무너진 우암사적공원의 정문.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후 대전 동구 우암사적공원 정문으로 승용차가 돌진하는 사고로 문이 대부분 부서졌다. 대전경찰청 제공

지난달 29일 오후 대전 동구 우암사적공원 정문으로 승용차가 돌진하는 사고로 문이 대부분 부서졌다. 대전경찰청 제공

하지만, 이후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당국이 사고 잔재를 모두 치우고, 문이 있던 자리에 화분을 몇 개 갖다 놓고 나자 “문이 없어지니까 공원의 개방감이 높아지고, 시민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는 등의 의견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고 전 공원 앞에 있던 정문은 폭 13.2m, 높이 6.57m로 남간정사를 비롯한 공원 전경을 대부분 가리고 있었다.

무너지기 이전의 우암사적공원 정문. 장옥란 대전관광문화해설사 제공

무너지기 이전의 우암사적공원 정문. 장옥란 대전관광문화해설사 제공

전문가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문화재 분야 전문가인 대전향토문화연구회 백남우 회장은 “공원 정문은 남간정사를 중심으로 한 공원 내부 경관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어 문을 철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면서 “비록 예기치 못한 사고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공원이 시민의 품에 안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여론 속에 대전시는 지난 9일 문화재위원 등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을 방문해 의견을 청취했다. 여기서도 문을 새로 세우지 말고 개방형으로 공원을 운영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대전시는 정문을 다시 세우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물론 일부 전문가와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문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임재호 대전시 문화유산과장은 “야간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접이식의 간단한 철제문을 설치해 낮 시간에는 완전히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통사고’라는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사태로 촉발된 ‘개방’의 흐름은 다른 곳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대전시는 이 공원 내 남간정사의 담장 높이도 낮춰서 개방감을 더 높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내년에는 담장 낮추기 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

우암사적공원에는 조선 후기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송시열이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등이 있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장판각, 유물관, 서원 등의 건물을 재현한 뒤 1998년 4월 사적공원으로 문을 열었다. 정문도 당시 세워졌다.

한편 대전시는 사고 차량의 운전자가 가입한 보험사에 무너진 정문의 비용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사고 운전자의 운전부주의가 사고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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