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로 내디딘 K콘텐츠의 의미있는 한발짝…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유경선 기자
지난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의 한 장면. 인류가 물 부족 사태를 직면한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한국 정부가 탐사대원들을 달로 보낸다. 넷플릭스 제공

지난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의 한 장면. 인류가 물 부족 사태를 직면한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한국 정부가 탐사대원들을 달로 보낸다. 넷플릭스 제공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는 ‘K콘텐츠의 도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본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아쉽지 않은 질의 우주물을 만들 수 있다. 달 표면 구현, 달 기지의 외관과 내부 모습, 우주왕복선까지 깔끔하게 구현했다.

우주물 클리셰는 피하지 못했다. 많은 우주물에서 인류는 자원 부족 때문에 지구 밖을 탐사한다. 우주는 생명에게 너그러운 공간이 아니다. 탐사대가 그대로 생존해 귀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험한 미지의 존재에도 맞닥뜨린다. <고요의 바다>에도 이 모든 설정이 있다. 우주라는 공간이 제한하는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해 보인다.

클리셰를 감안하기로 한다면 이 드라마에는 한국 제작진도 수준급 우주물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 ‘물’을 둘러싼 독특한 상상력이 등장한다는 것,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할리우드 우주물 특유의 낙관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극중 지구는 더 이상 보이저 1호가 봤던 ‘창백한 푸른 점’이 아니다. 바다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지구는 불그스름한 빛을 띤다. 배경은 인류가 극심한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근미래다. 송지안 박사(배두나), 한윤재 대장(공유)을 중심으로 탐사대가 꾸려진다. 이들의 임무인 ‘발해 프로젝트’는 물 부족과 관련 있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대원들은 달에 가서 5년 전 사고로 폐쇄된 ‘발해기지’ 안 샘플을 회수해와야 한다. 당시 기지에서 근무 중이던 전원이 이 사고로 죽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샘플을 가져만 오라는 것이 정부의 주문이다. “우리가 택배도 아니지 않나”라고 항변해도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정보 부족 등으로 인해 이들도 위험에 처한다. 대원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고, 희생을 대가로 한 정보가 쌓인다. 탐사대는 샘플 안 물질이 무엇이었는지, 5년 전 사고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실체에 접근해 간다. 합리적 의심과 추론으로 차분하게 진실을 짚는 것은 송지안이다. 팀 닥터 홍가영(김선영)이 든든한 조력자다.

발해기지에서는 희귀물질 ‘월수(月水)’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연구는 국가 기밀이다. 월수는 우리가 아는 물(H₂O)과 거의 같지만 치명적 특성이 있다. 이 특성을 통제할 수 있다면 월수는 인류를 구원할 축복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죽을 때 죽더라도 물이라도 실컷 먹고” 죽고 싶다는 현 인류를 익사시킬 위협이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한강이 바닥을 드러낸 서울이 등장한 만큼, 월수의 비밀을 풀고 지구로 돌아간다면 좋았겠지만 <고요의 바다>는 그렇게 호락호락 낙관적이지 않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우주항공국의 최 국장(길해연)은 월수를 가지고 오는 것 이상으로 월수의 외부 유출에 막는데 신경쓴다. 그의 관심은 인류 구원보다 “후발주자인 우리가 단번에 선진국을 따라잡을 기회”에 있다.

자원 마피아들은 발해기지 안에 ‘뭔가 있다’는 낌새를 채고 호시탐탐 스파이를 심는다. 한국 정부는 5년 전 사고에 관해 많은 것들을 감추고 속인다. 월수가 지구를 구하는 물질이 되기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아 보인다. 자원 부족 문제는 이미 닥친 현실이지만 대안을 지구 밖에서 찾겠다는 생각은 답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말하려는 듯하다. 이런 부분은 흔히 봐온 할리우드 우주영화와 다른 점이다.

여성들이 중추에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임무 총책임자 최 국장도, 연구자인 송지안도, 5년 전 발해기지에서 연구를 총괄했던 송지안의 언니 송원경 박사(강말금)도 여성이다. 출연진의 연기가 안정적이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제작진과 배우. 왼쪽부터 최항용 감독, 박은교 작가, 이무생·김선영·공유·배두나·이준·이성욱 배우, 그리고  제작자 정우성.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제작진과 배우. 왼쪽부터 최항용 감독, 박은교 작가, 이무생·김선영·공유·배두나·이준·이성욱 배우, 그리고 제작자 정우성. 넷플릭스 제공

<고요의 바다>는 최항용 감독의 동명 영화를 확장한 시리즈다. 단편을 8화로 늘리다 보니 전개가 늘어진다는 평가와 ‘고요한 연출’을 보는 맛이 있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많은 내용을 전달해야 하다 보니 대사가 주로 상황 설명을 목적으로 활용된 점이 아쉽다.

배우 정우성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그는 지난 22일 제작발표회에서 “독특한 설정이 굉장히 좋았다”고 참여 배경을 밝혔다. 최 감독은 “단편에서는 달 기지 내의 사건에 집중했지만 시리즈로 만들면서 지구에 자원이 부족한 환경, 거기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다”며 “단순한 생존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와 인류의 생존으로 확장해서 더 큰 의미와 고민거리를 던졌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촬영 현장.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촬영 현장. 넷플릭스 제공

제작진은 이 작품이 “큰 도전이었다”고 했다. 박은교 작가는 “취재와 조사 과정에서 우리에게 축적된 (우주물 관련) 경험이나 노하우가 없었다”고 말했다. 세트는 5개 스튜디오에 총 2700평 정도 규모로 조성됐다. 박 작가는 “‘이게 과연 구현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상상보다 세트 규모가 훨씬 크거나 훌륭하게 제작돼 있어 행복했다”고 했고, 류태석 대위 역을 맡은 이준은 “화면에 안 나오는 부분까지 (세트가) 디테일했다”며 “전자기기 배터리 안에 제 이름과 생일이 새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24일 공개된 <고요의 바다>는 하루 만에 넷플릭스에서 시청 수 글로벌 7위에 올랐다. 영화정보사이트 IMDb에서는 7.1점을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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