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화려하고 조금 더 정교해진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경민 기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첫 뮤지컬 영화

초연 당시인 1957년보다 심화된 인종갈등 담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두 주인공 토니(앤설 엘고트)와 마리아(레이첼 지글러)는 파티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두 주인공 토니(앤설 엘고트)와 마리아(레이첼 지글러)는 파티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60년 만에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장면은 더 화려하고 사운드는 풍성하다. 처음으로 뮤지컬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동명의 고전 뮤지컬을 스크린 위에 성공적으로 펼쳐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원작 뮤지컬의 설정과 전개를 대부분 충실히 따랐다. 이탈리아의 원수 집안 카풀렛 가문과 몬타규 가문은 1950년대 미국 뉴욕 외곽지역의 백인 빈민 패거리인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 ‘샤크파’로 재구성했다. 샤크파 리더인 베르나르도의 동생 마리아와 제트파의 토니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며 겪는 이틀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마리아는 신예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토니는 앤설 엘고트가 맡아 호연했다. 원작에선 뮤지컬 무대를 옮겨놓은 듯했던 세트장은 더 현실에 가까워졌다. 화려한 의상은 춤과 노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영화는 미국 사회 내 인종 차별을 원작보다 정교하게 그려냈다. 1961년 영화에서는 제트파와 샤크파가 서로 대립하는 마찰 정도로 비춰졌던 첫 장면을 스필버그는 백인 집단 제트파의 일방적인 시비와 린치로 그렸다. 제트파는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찾아가 간판을 떼는 등 장사를 방해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을 희롱한다. 철거를 앞둔 도시 외곽의 가난한 백인 청소년 패거리 제트파가 이주민을 괴롭하는 이유는 단 하나 ‘다름’이다. 제트파가 부르는 ‘제트송’의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그들은 우리가 아니야(they ain’t us)”라는 가사는 상징적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가 공개한 코멘터리에서 스필버그는 “이 뮤지컬은 1957년을 배경으로 샤크파와 제트파의 갈등을 다루는데 지금은 세상의 분열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 각본 작업에 5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분열이 더 확대됐다”며 “안타깝게도 이 작품이 보여주는 지역 간의 갈등은 이야기의 배경인 1957년보다 오늘날 관객들에게 더 낯익은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발렌티나(리타 모레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발렌티나(리타 모레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에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발렌티나는 인종 차별을 더 정교하게 보여주면서 두 집단 간 화해를 가교하는 역할을 맡았다. 리타 모레노가 연기한 발렌티나는 백인 남성과 결혼한 푸에르토리코인 여성으로, 출소한 토니를 보살피고 제트파에게는 따끔한 충고를 한다. 제트파는 백인과 결혼한 그를 ‘명예백인’으로 여겨 무시하지 않는다. 영화는 제트파가 샤크파 리더 베르나르도의 연인 아니타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장면은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원작에 없던 발렌티나의 단호한 꾸짖음을 삽입했다. 그는 제트파에게 “내가 어릴 적부터 봐 온 너희가 강간범으로 자랐구나. 너희는 자신들의 수치고 죽은 친구의 수치야”라고 말한다.

원작에는 톰보이 정도로 표현됐던 제트파의 ‘애니바디스(Anybodys)’는 2021년 작에서는 트랜스젠더 캐릭터로 바뀌었다.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 배우 이리스 메나스가 연기했다. 애니바디스는 시스젠더(지정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남성 집단인 제트파를 위해 헌신한 뒤 영화가 끝날 즈음 제트파 멤버 액션에게 “잘했어. 친구(buddy boy)”라는 말을 들을 때 비로소 미소를 짓는다. 트랜스젠더가 남성사회의 승인 뒤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해석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촘촘히 깔린 맥락 덕분에 토니와 마리아가 부르는 사랑 노래 ‘섬웨어(Somewhere)’는 두 인물 간 사랑을 넘어 조금 더 폭넓게 읽힌다. “우리를 위한 시간이 있을 거야.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아껴줄 수 있는 시간이. 언젠가, 어딘가에서”라는 가사에서 둘의 사랑이 축복받는 것을 넘어 인종 차별이 종식되는 시공간이 막연하지 않은 좀 더 가까운 미래에 다가왔으면 하는 감독의 바람이 느껴진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메인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메인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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