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시대에 대한 몰이해가 자초한 참사, 드라마 ‘설강화’

오경민 기자

방송 전부터 역사를 왜곡한다는 의혹을 받은 JTBC 드라마 <설강화>와 관련된 논란이 사그라들고 있다. 오해가 풀렸다기보다는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방영 첫 주 3.0%, 3.9%에 달했던 시청률은 2주차에 1~2%대로 떨어졌다.

JTBC 드라마 <설강화> 포스터. <설강화>는 호수여대에 재학 중인 은영로(지수·왼쪽)과 북한의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의 사랑을 다뤘다.  JTBC 제공

JTBC 드라마 <설강화> 포스터. <설강화>는 호수여대에 재학 중인 은영로(지수·왼쪽)과 북한의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의 사랑을 다뤘다. JTBC 제공

1987년을 배경으로 하는 <설강화>는 시놉시스가 일부 공개된 지난 3월부터 지난 18~19일 1~2회가 방영된 직후까지 시청자의 거센 비판에 시달렸다. 북한의 남파공작원을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한 주인공 은영로(지수)가 구해주는 설정이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 이강무(장승조) 캐릭터 설명에서 ‘대쪽같은 인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 등 때문에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과거 정보기관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는 방영을 중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가처분 신청으로 이어졌다. 2회 방영 이후에도 논란이 식지 않자 JTBC는 24~26일에 걸쳐 드러마의 3~5회를 특별 편성했다.

24~26일 방영분에서 민주화 운동은 더이상 주요한 요소로 사용되지 않는다. 앞서 공개된 시놉시스에서 ‘대쪽같다’고 표현됐던 안기부 요원 이강무는 간첩을 ‘잡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상부에 저항하고, 취조할 때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부하직원을 나무라기도 한다. “드라마에는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드라마와 무관하다”,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 등 제작진 해명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설강화>는 6월항쟁이 있었던 1987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가상의 이야기’라며 시대에 대한 해석을 포기했다. 운동권 학생 정민이 “간첩, 짭새들이 맨날 하는 소리야. 걸핏하면 우리 빨갱이로 모는 거 몰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안기부를 비판하는 듯 하다가도, 안기부 요원인 이강무가 “당신, 우리가 지금 데모하는 학생들이나 쫓는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라고 협박하는 대사를 넣는 등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민주화 운동, 안기부, 독재 정권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유예하고 그 시대를 복고적인 장치로만 동원한다. 간첩이 안기부에 쫓기는 장면에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삽입하는 등 참사에 가까운 연출이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드라마는 많은 이들이 죄 없이 고문당한 대공분실을 수사물의 작전 회의실처럼 비추기도 했다.

<설강화> 5화에서 남파공작원 수호는 호수여대 기숙사에 살고 있는 은영로 등 여대생들을 인질로 삼는다. 은영로는 안기부장의 딸로 드러난다. JTBC 제공

<설강화> 5화에서 남파공작원 수호는 호수여대 기숙사에 살고 있는 은영로 등 여대생들을 인질로 삼는다. 은영로는 안기부장의 딸로 드러난다. JTBC 제공

1987년이라는 시절에 닻을 내리지 못한 드라마의 서사는 개연성을 잃고 표류중이다. 3~4화에 걸쳐 여자 주인공 영로가 안기부장 은창수(허준호)의 딸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영로와 수호 사이의 ‘금단의 사랑’ 설정은 더 무리해졌다. 5화는 남파공작원들이 서울 한복판의 여대 기숙사를 거점으로 인질극을 벌이는 장면에서 마무리됐다.

드라마의 여성관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제기됐다. 독재 타도와 호헌 철폐를 외쳤던 당시 여대생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호수여대 학생들은 하나같이 값 비싼 물건을 전시하고 남성과 미팅을 하는 데 혈안이 돼있다. 한 누리꾼은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여성들을 모독하는 역사 왜곡 드라마”라고 비판했다. 다른 누리꾼은 영로가 여대 기숙사에 뛰어든 수호를 목욕탕 의자에 숨겨주고 옷을 벗는 장면에 대해 “관음적인 시선 좀 버릴 수 없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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