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되는 건 내 몸뿐’…저성장 시대의 현실을 먹고 자라난 딜레마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운동·식이조절 통해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든 후 기록…‘보디 프로필’을 둘러싼 논란

설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조상님이 발행한 최후의 유예 기간, ‘음력 새해’마저 지났으니 2022년의 시작을 더는 부정할 수 없다. 1월1일의 결심은 까맣게 잊었지만 우리의 새해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니 아직 기회가 있다. 새해 목표가 ‘운동하기’ 또는 ‘다이어트’인 사람이 올해에도 많을 것이다. 트렌드를 반영해서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보디 프로필 찍기’ 같은? ‘보디 프로필’이란 운동과 식이조절로 몸을 탄탄하게 가꾼 후, 전문 스튜디오에서 최상의 몸 상태를 찍은 사진이다. 헬스 트레이너나 보디빌더, 모델 등의 직업군에서 포트폴리오 개념으로 찍던 것이 최근 일반인 사이에서도 엄청난 인기다. 사진을 공유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서 ‘보디 프로필’을 태그한 게시물은 288만건이 넘고, 최근에는 래퍼 이영지가 보디 프로필을 찍으면서 화제였다.

SBS의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하며 운동 능력을 입증한 개그우먼 김민경(왼쪽 사진). 건강은 날씬한 몸과 밀접한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모델 이현이(오른쪽 사진)는 “축구를 하다 보니 외모에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SBS 제공

SBS의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하며 운동 능력을 입증한 개그우먼 김민경(왼쪽 사진). 건강은 날씬한 몸과 밀접한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모델 이현이(오른쪽 사진)는 “축구를 하다 보니 외모에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SBS 제공

보디 프로필을 둘러싼 논란은 다양하다. 자기 계발의 관점에서, 건강하게 운동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운동으로 달라진 몸과 체력을 실감하거나, 의지력의 결과를 사진으로 남기거나 공유하여 인정받는 것 또한 긍정적인 경험이다. 동시에, 보디 프로필이 과도하게 상업화되고 성적 대상화되었다는 비판 역시 타당하다. 일부 트레이너들이 성과를 위해 무리한 계획을 짜서 혹사하거나, 근육을 보여주려고 벗은 몸을 포르노의 문법으로 찍는 스튜디오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보디 프로필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의 맥락들을 살펴보고, 그중에서도 ‘자기 효능감’이라는 개념으로 보디 프로필 문화를 읽어보고자 한다.

보디 프로필은 3개월 정도의 기간을 잡고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체지방을 빼고 근육을 도드라지게 하려고 탄수화물과 지방을 극단적으로 제한한다. 남성은 체지방률 5~10%, 여성은 10~15%를 목표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매우 낮은 수치다. 촬영 예정일이 다가오면 수분 섭취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웬만한 의지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보니, 보통 PT를 끊어서 트레이너와 함께한다. PT 비용 수백만원에, 식단 관리에 드는 비용이나 프로필 촬영에 필요한 메이크업과 태닝 비용, 촬영비까지 추가된다. 몸과 마음과 통장이 힘든 데다, 촬영이 끝난 후 대부분 요요현상을 겪는데도 보디 프로필 열풍은 뜨겁다. 여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는 배경도 한몫한다. 건강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여행 등을 갈 수 없게 되면서 그 자금이 몸을 관리하는 것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보디 프로필이 소위 ‘MZ’세대라고 구별되는 2030 사이에서 유행하는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SNS다. 운동하고 식이조절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지만, 이제는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해시태그를 통해 전시하는 시대가 열렸다. 보디 프로필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이며, 단순히 잘 가꾼 몸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의지와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보디 프로필을 찍을 수 있는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상징한다. 강도가 올라간 미적 기준 또한 영향을 끼친다. 예전에는 몸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것이 직업인 모델이나 연예인에게 요구되던 기준, 이를테면 납작한 배라든가 쪼개지는 등 근육 같은 요소를 이제는 일반인도 선망하고 쟁취하고자 노력한다.

실제 내 몸은 내 마음 같지는 않아
욕구에 의지는 위협받고 무너진다
그럼에도 인내와 노력의 결과로
건강을 얻게된다면 기록할만한 일

아름다움에 대한 과시욕은 보편적
성취에 대한 공유도 긍정적 경험
‘자기 효능감’ 극대화 방법이지만
상업화·성적 대상화는 곤란하다

‘보디 프로필’ 찍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에 대한 이해
어떤 몸으로 평생 살아갈 것인가
운동효과는 몸에 한정되지 않는다

‘건강한 몸’은 매너리즘(?)에 빠질 뻔한 다이어트 산업이 새롭게 발견한 땅이다. 여리여리한 몸, 굶어서 뺀 살은 유행이 지났다. 그런 것은 더 이상 쿨하지 못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하는 선택으로 취급된다. 건강한 몸이 곧 날씬한 몸은 아닐진대, 건강을 위해 운동하라고 권유하는 이미지는 언제나 체지방이 적고 엉덩이가 빵빵한 모델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냥 체중계 숫자를 줄이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체지방을 빼고 근육까지 적절하게 증량해야 성공적 다이어트다. 이것이 곧 자기 관리, 자기를 사랑하는 러브 유어셀프로까지 확장된다. 운동하고 가꿔서 탄탄한 몸을 만드는 것은 가장 직관적이고 빠르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행위다. 달라진 자신을 체험하고 보여줌으로써, 자기 효능감을 손쉽게 움켜쥘 수 있다.

자기 효능감은 행동적 변화를 중재하는 공통적인 인지 기제이다. 개인이 ‘특정 기술을 어느 정도 행할 수 있는가’의 판단을 의미한다. 자기 효능감은 성공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때 현재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인지적, 행동적 기술들을 통합하고 적용하는 생산적인 기제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것은 현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미래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자기 존중감과 자아개념, 그리고 자신감과도 구별된다. 자기 효능감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특정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일반적으로, 실패를 많이 한 사람보다 성공 경험이 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자기 효능감을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효능감을 쌓으려면 작은 성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자기 효능감은 특정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통제권을 의미한다. ‘나’는 ‘상황’에 ‘끌려가지 않고’, ‘나’의 ‘선택’과 ‘의지’로 일상을 조절하며, 아무나 할 수 없는 과제를 해낸다는 짜릿함. 캐럴라인 냅은 <욕구들>(2021·북하우스)이라는 책에서 이 자기 효능감의 일환으로 음식을 통제하고 굶는 섭식장애 경험을 고백했다. 미러클 모닝의 유행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때 다른 영역에서는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운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처럼 모든 것을 사적인 영역으로 환원하고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게 된다.

보디 프로필의 유행은, ‘내 맘대로 되는 건 내 몸뿐’인 현실을 먹고 자라났다. 모델 한혜진이 운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 말은 이러한 세태를 잘 반영하는데, 다이어트 자극 문구로도 유명하다. “세상사 일, 연애, 인간관계, 돈,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만 내 몸만큼은 내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 저성장 시대 청년층의 딜레마가 여기 있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입시부터 취업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고, 지금의 나는 어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초라하다. 그럴 때 자기 자신을 몰아붙여 몸을 변화시키는 것은 빠르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치트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몸은 전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욕구는 툭하면 의지를 배반하고, 건강은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다. 보디 프로필의 일정 자체가 어느 정도 타고나게 건강해야 한다. 정말이지 조금만 아파보면 안다. 제일 내 마음 같지 않은 게 내 몸과 건강이라는 진실을.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럽다. 인류는 원시시대 때부터 치장과 화장을 했다. 욕망 자체가 언제나 옳을 필요도 없다. 심지어 누군가, 보디 프로필의 원래 목적과 달리 성적 대상화되고 싶은 욕망에 보디 프로필을 찍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비난하기보다, 논의는 더 확장되어야 한다. 왜 우리 사회는 벗은 몸을 곧장 성적으로 물화하는가,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여성을 곧잘 안전과 권리를 침해해도 되는 존재로 격하하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가,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안전할 방법은 어떤 것인가 등등. 보디 프로필을 찍느냐 마느냐, 어떻게 찍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건강한 몸이며, 나는 어떤 몸과 평생 더불어 살아가는가, 몸을 통제하는 자기 효능감과 어떻게 잘 공존하는가 같은 고민이다. 개그우먼 김민경의 운동 능력에서 입증되었듯, 건강은 날씬한 몸과는 무관하다. 최근 운동을 배우는 중인데, 인보디상의 변화가 없어 시무룩할 때 운동 선생님의 조언이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근육은 양보다 질이고, 운동 능력은 인보디 기계나 눈에 잡히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SBS의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 중인 모델 이현이는, 축구를 하다 보니 외모를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운동의 즐거움과 의미는 결과로서의 몸에 한정되지 않는다.

보디 프로필이 ‘전성기’의 몸을 기록한다는 인식 또한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젊고 탄탄한 육체만이 ‘진짜 나’이고,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일까? 나와 함께 내 일상을 살아가는 몸은 밥을 먹으면 배가 나오고, 나이를 먹으면 살이 처진다. 자신의 의지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여보는 시험은 재미있지만, 삶은 순간의 이미지 바깥에서 훨씬 더 입체적이고 풍만하게 흘러간다.

(참고 논문 : 김민희, ‘바디 프로필 경험자의 자기 효능감과 이미지’, 한양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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