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리턴 투 호그와트’로 본 해리포터 20년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촬영이 즐거웠다”는 아이들과 마법 같은 사춘기를 함께 지나 그렇게 우리도 어른이 되었다

2022년 1월1일, 해리포터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리턴 투 호그와트>가 HBO 맥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국내에서는 웨이브(Wavve)를 통해 볼 수 있다. <리턴 투 호그와트>가 시작되면, 가뜩이나 비현실적인 2022년은 마법에 걸린다. ‘머글 세계’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호그와트의 마법사들은 호그와트 문양이 찍힌 초대장을 받는다.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고, 연회장의 문이 열리면,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인물들이 훌쩍 자란 모습으로 부둥켜안는다. 이 연출 뭐야? 별안간 눈가가 촉촉해진다.

호그와트 마법학교 입학 동기로 만난 열한 살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의 성장 서사이자, 주연 배우의 역사이기도 한 ‘해리포터 시리즈’가 20주년을 맞았다. 훌쩍 자란 ‘그 시절’ 주인공들이 지난 1월1일 공개된 기념 다큐멘터리 <리턴 투 호그와트>를 통해 다시 만났다. HBO 맥스 제공

호그와트 마법학교 입학 동기로 만난 열한 살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의 성장 서사이자, 주연 배우의 역사이기도 한 ‘해리포터 시리즈’가 20주년을 맞았다. 훌쩍 자란 ‘그 시절’ 주인공들이 지난 1월1일 공개된 기념 다큐멘터리 <리턴 투 호그와트>를 통해 다시 만났다. HBO 맥스 제공

나는 ‘해리포터 세대’다. 론 위즐리 역할의 루퍼트 그린트와 동갑인 1988년생이고,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인 2007년 해리포터의 마지막 시리즈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완결됐다. 2010년 개봉한 마지막 영화가 끝날 때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을 느끼며 친구들과 스크린에 대고 ‘안녕, 안녕’ 손을 흔들었다. 유년 시절과 완전히 이별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팬까지는 또 아니다. 해리포터는 소설부터, 영화까지 어마어마한 팬덤과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열정은 아서 위즐리의 머글에 대한 관심보다 뜨겁다. 나는 국내에서 해리포터 팬을 100명 정도 뽑아서 줄 세운다면 딱 50~55등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다. 오늘은 그 어중간함으로, 유년기부터 해리포터와 함께했으며 성인이 된 뒤에도 일상에서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리포터에 나오는 용어를 쓰는 세대와 옹기종기 둘러앉으려고 한다. ‘덕후가 아닌 일반인’을 ‘머글’, 언급하기 곤란한 존재를 ‘볼드모트’라고 쉽고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며, ‘입 닥쳐 말포이’나 ‘버터 맥주를 마시는 론’ 같은 표현을 들으면 웃음 마법에 걸려 버리는 사람들에게 부엉이를 보내는 마음으로.

<리턴 투 호그와트>는 영화 해리포터가 배우의 성장과 서사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감독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원작 소설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내러티브를 짠다. <호그와트에서의 첫해>는 영화의 첫 번째, 두 번째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와 꼬마 마법사들이 함께했던 촬영 현장을 돌이켜 본다. 당시 10~12세였던 배우들을 잔뜩 데리고 촬영하는 일은 맥고나걸 교수님의 고충과 견줄 만하다. 배우들은 입을 모아 촬영 현장이 즐거웠다고 추억한다. “애들처럼 놀게 해줬잖아. 일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어.” “우리를 풀어주는 대신 일은 더 힘들어졌을 거예요.” “촬영에서 가장 큰 문제였던 건 왔다 갔다 하는 우리의 집중력이었어요.” “아이들을 다루려면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죠. 특히나 우리처럼 지나치게 활동적인 애들이라면요.” 감독이 어린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존중했기에 어린이 배우들이 현장에서 행복했다는 사실은, 그들과 함께 자라 어른이 된 해리포터 팬에게 큰 안정감을 준다. 아동 배우의 본질은 아동 노동이고, 현실의 많은 노동 조건과 현장은 어른에게 맞춰져 있다. 효율과 일정을 위해 가장 약하고 권리가 없는 존재를 무시하는 일이 너무나 흔하게 일어난다. 다행히도 배우들은, 선한 어른이 어린이와 약자를 보호하고자 고군분투하는 (해리는 주인공이다 보니 늘 나이에 비해 가혹한 상황에 던져지지만) 해리포터 속 세계처럼 지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해리포터처럼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영화판이 아니라도, 현장의 아동 배우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기를 바란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연 삼총사(해리포터,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론 위즐리)는 이 역할을 연기한 대니얼 래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와 비슷한 연령대다. 등장인물과 주연 배우가 성장하면서 영화의 서사와 연출도 그에 맞춰 미학적으로 변화한다. 이후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들 역시 더 이상 배우들이 ‘아역 배우’가 아님을 명확히 하며 어른으로 대한다. 배우들이 아동기에서 사춘기로 넘어가면서 겪는 내면의 변화, 영화배우로서의 정체성 자각, 친구에 대한 열등감이나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 세상의 도덕적 기준과 충돌하며 스스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순간은 생생하게 전달된다. 한 영화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배우 교체 없이 진행되어 그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시간이 지나서 배우들이 풀어주는 ‘썰’ 또한 흥미진진하다. ‘호르몬이 촬영 현장에 날아다녔다’고 말할 만큼 정념으로 출렁거린 현장, 캐릭터와 배우 간의 미묘한 감정, 사춘기라서 연회복을 입고 춤추기 싫어했다는 고백, 누군지도 몰랐던 성인 배우들에게서 영감을 받고 성장하는 모습, 한창 연상인 헬레나 보넘 카터를 짝사랑한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1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나에게도 기회가 있었겠죠”라고 쓴 러브레터는 모두의 성장 과정과 포개지는 지점이 있다. 해리포터 세대가 그들과 ‘함께’ 자랐다고 느끼는 이유다.

<리턴 투 호그와트>가 해리포터 시리즈의 키워드로 뽑은 것은 ‘아웃사이더’ ‘소속감’ ‘성장’ ‘사랑’이다. “중요한 건 누군가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느냐 하는 것이다.” 호그와트의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의 철학이기도 하다. 늑대인간, (해리포터 세계관의 혐오 표현을 빌리자면 순수혈통 마법사가 아닌) ‘머드 블러드’, 열등생, 별종으로 불리는 이들이 서로 친구가 된다. 해리 역시 처음에는 외톨이였으니까. 태초에 MBTI의 유행 전, 호그와트 기숙사 테스트가 있었으니. 호그와트에 입학하면, 마법의 모자가 기질을 분석해서 기숙사를 배정해준다. 사주나 별자리처럼 남이 해주는 캐릭터 해석이 제일 재미있는 법. 고작 네 종류지만, 독자들은 각각의 기숙사가 정의나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을 섬세하게 해석하며 갖고 논다. 내가 속할 만한 곳, 나를 받아들여 줄 곳을 찾고, 또 나의 어떤 지점이 그러한지 돌아본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팀’을 상상하고 위로받는 행위다.

물론, 원작의 ‘아웃사이더’에조차 속하지 못한 존재들이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재미있는 이야기지, 완벽한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한 팬들은 자유롭게 작품을 향유하고 해석하면서 해리포터 세계관 내의 인종차별이나 계급 문제, 비장애인 중심주의 등을 발견하고 비판한다. 성장한 배우들이 여러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듯. 엠마 왓슨은 2014년 성평등 캠페인 ‘히포시(He For She)’를 시작하면서 유엔 연설로 큰 물결을 일으키는 등 페미니즘적 활동을 이어왔고, 다큐멘터리에서 다른 여성 배우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한다. 원작자인 조앤 K 롤링이 젠더 정체성 논의와 트랜스젠더 존재를 부정하는 트윗을 썼을 때,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이러한 차별에 반대하는 글을 게시했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해리포터)에서 여러분과 공명하거나 언젠가 당신의 삶에서 도움을 줄 것을 찾았다면 그것은 당신과 당신이 읽은 책 사이의 것이며 신성하다”라는 내용은 작품이 원작자만의 것이 아니며, 향유자의 고유한 기쁨이 있고, 해석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팬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배우들과 함께 사랑하는 작품을 추억 속에 묻어두지 않고, 현재의 관점에 끝없이 비추어 본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지켜야 할 것이 있으면 약해지기 쉽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악역들의 대사이기도 하다) 해리포터 세계관은 그것이 가장 강한 힘이라고 말한다. 누구도 나눌 수 없는 거대한 경험을 한 배우들이 그 시절을 헤쳐올 수 있었던 이유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꼽듯이. 세 사람이 얼싸안을 때, 그들과 함께 자란 해리포터 세대의 영혼도 그 주변에서 함께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나라의 누구인지도 모를 친구들도 함께 끼어 있겠지? 세 사람을 포함한 배우들은 어린 나이에 치른 유명세나,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며 작품 속 마법사들처럼 치열하게 살아남았다. 고맙게도 범죄를 저지르거나 남을 해치지 않고 유쾌하고 씩씩하게 존재해줘서, 공유한 추억은 여전히 반짝거릴 수 있다. 호그와트에 걸려 있는 사진처럼 생생하게 움직이다가, 눈을 마주치면 문득 윙크하면서. 열 살쯤 해리포터를 처음 만나 30대를 훌쩍 넘긴 해리포터 세대도, 자기만의 볼드모트와 트라이위저드, 무도회, OWL(표준마법사시험)을 통과하며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이든, 설렘과 불안과 용기가 일렁이는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해리포터라는 포트키를 가진 행운아다. <리턴 투 호그와트>의 마지막 장면, “아직도?”라는 질문에 답하는 스네이프처럼 “언제까지나”. 다시 또 20년을 기약하며, 아시오 귀지맛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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