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세상엔 오 박사님도 해결 못할 문제가 있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가부장적 문화는 ‘그래서 그랬구나’로 치유가 안 된다고요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는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부부가 등장하고 정신의학자이자 상담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는 특유의 분석과 솔루션으로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려 한다. MBC 제공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는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부부가 등장하고 정신의학자이자 상담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는 특유의 분석과 솔루션으로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려 한다. MBC 제공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하 <결혼지옥>)의 제목은 이중적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제작진이 생각한 건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이란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의미 구성에서 ‘결혼 지옥’의 반대말은 ‘결혼 천국’이 된다. 그러니 극복 대상은 지옥 같은 생활이며, 목적은 평온한 부부 관계의 회복이 된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결혼은 지옥이란 의미다. 여기서 ‘결혼 지옥’의 반대말은 ‘비혼 천국’이다. 여기서 결혼은 그 자체로 극복되어야 할 지옥문이며, 목적지는 결혼 제도 안에 내재한 폭력성의 붕괴다.

재밌는 건, 프로그램은 명백히 전자를 지향하지만, 순간순간 후자의 가능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매 회차마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부부가 등장하며, 정신의학자이자 상담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는 특유의 분석과 솔루션으로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려 한다. 물론 결혼을 유지한 상태 안에서의 회복이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그의 해법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상호 이해와 존중에 집중된다. 결혼이라는 것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 할 때, 서로가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니 오은영의 해법은 효과가 있다. 하지만 또한 결혼 공동체의 규범엔 다양한 사회적 맥락이 작동하며, 두 사람의 갈등 밑바닥엔 이러한 제도화된 패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은영도 제작진도 굳이 그 흔적을 파헤치진 않지만, <결혼지옥>이 부부의 갈등을 각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남김없이 환원하려 할수록 미처 환원될 수 없는 의문들이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다름 인정하는 이해·존중에 집중
오 박사 해법, 나름 효과 있지만
갈등들 기저엔 제도화된 패턴 흔적

남성 중심 등 젠더 불평등 모르쇠
개인 문제로 환원하기엔 의문 남아

오은영이 정서적인 이혼 상태라고까지 선언한 3회 ‘음소거 부부’의 사례는 <결혼지옥>의 접근방식이 지닌 한계를 잘 드러낸다. 5년째 대화를 거의 대부분 문자로만 나눌 정도로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틀어진 계기는 차에서 말다툼 중 남편이 만삭의 아내를 도로에 두고 가버린 일이었다. 임신 기간 중 출퇴근 시간에 남편이 데려다주길 바랐지만 거의 들어주지 않거나 들어주더라도 짜증을 낸 경험도 아내에겐 임신할 때 받아야 할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 이유가 됐다. 물론 남편은 그걸 귀찮아했던 과거를 후회하지만 아내는 그에 대한 사과가 언제나 구체적이지 못하고 미흡하다 여긴다.

여기서 패널인 하하는 “남자들은 항상 이 지점에서 막힌다. 이 퀴즈쇼에서의 정답을 모르겠다”고 말하며, 역시 패널인 김응수도 “남자들의 한계 같다”고 한다. 한계는 맞다. 왜 상대가 구체적 사과를 원하고, 본인들이 왜 구체적으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지 고백한다는 점에서는. <결혼지옥>은 ‘남편 공감’, ‘대한민국 남편분들 응원합니다^^;’라는 자막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슬쩍 눙치지만, 만약 같은 장면을 본 다른 기혼 여성들 역시 의뢰인 아내에게 이입하며 강렬한 ‘아내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아내의 사과 요구가 너무 구체적이고, 남편은 그 구체성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서로의 심리적 차이가 아니다.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특별히 인식하지 않고 넘어가도 됐던 남편의 권력화된 무신경함이 문제의 본질이다. 즉 아내들이 분노하는 건, 단순히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몰라도 되는 지위를 누리면서도 그걸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임신이 육아의 시작이라면, 임신 당시 아내가 느낀 소외감은 또 다른 방식의 독박 육아다. 즉 남편의 행동은 감정적으로 서운한 일이 아니라, 결혼 공동체가 함께 져야 할 부담을 외면한 일이다. 그 구체성을 인식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은 <결혼지옥>이 살벌한 분위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안일한 연출 실수가 아니다. 지옥 같은 부부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하자는 기획의도 안에는 이미 정상적 결혼 생활이라는 하나의 이데아가 전제된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허구적이다. 한국의 결혼 생활과 문화를 둘러싼 제도화된 젠더 불평등의 요소를 모르쇠 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가령 첫 회에 등장한 안무가 배윤정 부부의 경우, 육아와 가사 노동을 아내인 배윤정이 거의 대부분 부담한다. 오은영은 남편에게 육아와 가사를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적절히 조언했지만, 실은 개인의 적극성 부족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사를 처음부터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식사로 아내가 라면을 끓인 것에 짜증을 내는 것이다. 아내가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짜증. 남성이 가사 노동을 자신의 일이자 결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는 건 개인사의 굴곡이나 심리적 상흔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래도 되는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조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제하지 않을 때, 모든 솔루션은 결국 각 개인의 심리 분석과 마음가짐의 문제로 환원된다.

오은영 박사의 분석과 솔루션은 각 행위를 하는 주체가 어떠한 개인사적 경험과 관습의 내면화를 통해 구성되었는지 파악하고, 그 안에서 그들 행위의 이유를 연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4회에서 간호사 대신 쇼핑호스트에 대한 꿈을 키우는 며느리에게 모진 말을 하던 시어머니의 행동도 오은영의 분석 안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하다. 이러한 이해가 의뢰인 아내가 시어머니에 대한 서러움을 달래는 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또한 각 주체는 과거로부터 구성되는 동시에 지금 자신의 실천적 수행을 통해서 구성되기도 한다. 시어머니는 단순히 옛날 사람이라 옛날 방식으로 며느리를 대하는 게 아니라, 며느리를 아들과 자신이 구성한 가족의 타자이자 아랫사람으로 규정하고 발화하는 수행적 행위를 통해 가부장제 안에서의 시어머니라는 지위와 권력을 행사하며 또한 획득한다. 이것은 동시에 벌어진다. 즉 시어머니의 발화는 한 나이든 개인의 시대착오적 실언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상징 권력의 의도적 행사에 가깝다. 이러한 발화엔 화용론적 담론 분석이 더 적절하다. 화용론적 관점에서는 서로의 관계에서 그런 권력이 행사될 수 있는 문화적 역사적 맥락과 그것의 부당함을 함께 논의할 수 있다. 상대가 어쩌다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 행동의 타당성 여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과 병행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물론 이것을 오은영이라는 전문가의 한계라고 말하는 건 엄혹한 비판이다. 첫째 그의 해법은 적어도 의뢰인들에겐 지옥 같은 순간을 넘길 실용적 조언이며, 둘째 어떤 전문가든 한계는 있으며 오히려 문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 발생한다. 오은영은 적어도 자신의 전문성 너머에서까지 멘토 역할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결혼지옥>의 오은영 활용법이다. 오은영 박사가 참여한 육아 상담 프로그램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나 MBC <다큐플렉스> ‘오은영 리포트’와 비교해보면 좀 더 잘 알 수 있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에서 아이의 미숙함이란 어른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며, 서로가 겪는 소통의 어려움은 철저히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극복되어야 한다. 셜록 홈즈처럼,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어떤 징후들을 포착하고 그 원인을 재구성해 설명하는 소통 전문가 오은영의 존재가 소중한 건 그래서다. <결혼지옥>에서도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고 태국에서 축구선수를 했던 배윤정 남편의 개인사와 관찰 카메라 영상으로부터 한국어의 서툶에 의한 소통의 어려움과 오해의 순간들을 파악하는 오은영의 관찰력은 여전히 탁월하다. 다만 정말로 미숙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맞춰주는 것과, 미숙해도 되는 문화적 배경을 업은 성인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건 다른 일이다. 둘 다 각 의뢰인들에게는 갈등 해소의 실용적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전자는 시청자들에게도 어른의 책무라는 공적 차원을 충분히 환기시켜주는 반면 후자는 한국의 결혼 생활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젠더 불평등과 가부장적 문화라는 공적 차원을 축소하거나 지워버린다. 두 사례 모두 일차적으로는 사적인 문제지만 궁극적으로는 공적 담론을 통한 투쟁과 인식 변화를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후자의 한계는 뚜렷하다. 앞서 정상적 결혼이라는 것이 허구적 이데아라고도 했지만, 만약 그것이 먼 훗날에라도 도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결혼 문화의 불평등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과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투쟁과 문화적 변동의 전망을 남기지 않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결혼상은 또 다른 억압으로서의 정상성 이데올로기가 될 뿐이다. 이러한 억압이 정작 결혼을 지옥으로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는 진실은 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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