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능 끝! 학교 졸업···친구도 졸업? ‘성적표의 김민영’ 이재은·임지선 감독

오경민 기자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정희(김주아·왼쪽)와 민영(윤서영)이 스무살이 되면서 변화하는 관계를 그렸다.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정희(김주아·왼쪽)와 민영(윤서영)이 스무살이 되면서 변화하는 관계를 그렸다. 엣나인필름 제공.

일상의 공간을 떠나면 인간관계도 변한다. 매일 쉽게 만나던 이들을 노력해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각자 발걸음을 뗀 이들은 물리적인 거리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할지 선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서운함이나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은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건너가는 두 친구의 하루를 보여주며 이 보편적인 갈등의 모습을 포착했다.

정희(김주아)와 민영(윤서영), 수산나(손다현)는 청주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셋은 ‘삼행시 클럽’ 멤버다. 흔히 보던 삼행시가 아니라 한 편 한 편이 문학 작품 같은 특별한 삼행시다. 정희와 민영은 기숙사 룸메이트라서 사이가 각별하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셋은 화상으로 삼행시를 짓는 모임을 이어간다. 민영은 경상도의 대학에 진학했고, 수산나는 미국 유학을 갔다. 정희는 청주에 남아서 ‘때를 기다리며’ 일을 한다. 서울에 있는 오빠의 자취방에서 방학을 나던 민영은 정희를 초대한다. 정희는 가방을 싸 들고 서울로 달려왔는데, 민영은 정희가 안중에 없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와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받았다. 영화를 공동연출한 이재은 감독(29)과 임지선 감독(30)을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만났다.

영화의 화자는 정희다. 제목도 정희의 속마음을 가늠해 보게 한다. 왜 ‘김민영의 성적표’가 아니라 ‘성적표의 김민영’일까. 이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은 정희이고, 정희 입장에서 쓰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며 “성적표가 민영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하는 단어이지만, 무엇보다 민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희의 마음이 느껴지길 바랐다. 민영이 이름에 방점이 찍혔으면 했다”고 말했다. ‘민영’이나 ‘민영이’가 아니라 ‘김민영’이라고 성까지 붙이는 데서 정희가 느꼈을 서운함이 짐작되기도 한다.

민영과 정희의 이야기가 주요하지만, 원래 이들은 삼총사였다. 임 감독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하는 스무 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수산나는 유학을 가서 물리적으로 더 거리가 생기는 친구다. 더 큰 노력을 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며 “친구 관계가 세 명일 때 생기는 미묘한 양상들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세 명이 같이 다니지만 두 명이 더 친한 이야기가 조금 더 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한 명을 왕따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둘이 더 친밀한 관계가 있지 않나”라고 했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두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둘은 5년 전 한 영화 워크숍에서 만났다. 정희와 민영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기획했던 이 감독은 영화를 장편으로 제작하려고 마음먹으면서 임 감독에게 공동연출을 제안했다. 이 감독은 “개그 취향과 연출 전체 방향이 서로 잘 맞았다”며 “저는 감성에 치우친 사람이고 임 감독은 좀 더 이성적인 사람이라 서로 보완해줄 수 있었다. 영화가 너무 감성으로만 가지도 않고 너무 구조적으로만 가지도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임 감독은 “서로 많은 얘기를 하고 정말 많은 버전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 시간동안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방향성이 있어서 편한 점이 많았다”며 “아무도 모르는 사소한 것들에서는 뜻이 갈리기도 했다. 오히려 완전히 뜻이 같지 않아서 시너지가 난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민영을 찾아온 정희는 함께 할 것들을 이리저리 늘어놓는다. 민영은 정희에게 관심이 없다. 엣나인필름 제공.

서울에 있는 민영을 찾아온 정희는 함께 할 것들을 이리저리 늘어놓는다. 민영은 정희에게 관심이 없다. 엣나인필름 제공.

디테일에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것은 두 감독의 공통점이다. 임 감독은 “영화 예산이 많지 않았는데 미술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소품 하나하나에 이야기와 감정이 묻어나도록 했다”고 했다. 이 감독은 “굵직한 게 아니라 이상한 디테일에 집착하는 게 저희 취향인 것 같다”고 웃었다. 특히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간인 민영 오빠네 집을 구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 만화 <나루토> 그림과 함께 남자들만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민영 오빠의 취향이나 집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인물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장면과 대사를 촘촘히 쌓아올려 보여준다. 민영이는 입던 바지를 아무렇게나 벗어놓는 사람이다. 20학번이지만 윈도우XP가 깔린 오래된 노트북을 쓴다. 오빠한테 물려받은 듯하다. 학교 도서관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빌렸지만 수개월째 반납하지 않았다. 정희는 아날로그 손목시계를 차고 다닌다. 정희는 월간 계획에 ‘개인기 만들기’를 써넣는 사람이다. 수조를 침대 위에 올려놓은 채로 거북이를 기른다.

궤도 안에서 안주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은 정희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는 울림이 크다. 더불어 특별한 건 이 영화가 추구하는 웃음이다. 이 감독은 “저희가 추구하는 웃음의 방향성이 있다. 직접적인 것보다는 내적 웃음을, 웃음을 위한 웃음보다는 감정이 느껴지는 그런 웃음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사랑스러움, 안쓰러움, 어이없음의 연속에 ‘빵’ 터지기보다는 ‘풉’ 웃거나 미소를 짓게 된다. 감독들은 다채로운 웃음을 위해 배우가 의도치 않게 실수하거나 말을 더듬는 컷을 골라 사용하기도 했다. 정희가 처음 일하는 곳에서 팥빙수를 만들며 떡을 흘리는 장면, 테니스장 사장이 정희를 해고하며 말을 더듬는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일상을 공유하던 이와의 관계 변화는 생애 주기마다 나타난다. 이 감독은 “꼭 스무 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20대 중반쯤인 대학 졸업반 정도의 친구들의 이야기로 이 시나리오를 시작했다”며 “감정은 비슷했다. 뭔가를 공유하면서 일상을 같이 보내던 사람들이 각자 선택을 해서 흩어지는 과도기를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배경을 스무 살로 한 이유는 실망을 많이 안 해 봐서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고 헤어짐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기대가 줄어들고 서운함도 덜해졌다”고 했다. 모두가 한 번쯤은 정희와 민영 중 한 사람이 돼보지 않았을까. 영화는 지난 8일 개봉했다.

<성적표의 김민영>을 연출한 이재은(왼쪽), 임지선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성적표의 김민영>을 연출한 이재은(왼쪽), 임지선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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