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마지막 1년 그린 ‘영웅’···뮤지컬은 ‘성공’·인물 매력은 ‘글쎄’

오경민 기자

‘천만 감독’ 윤제균 8년 만 신작

대부분 노래 현장 라이브 방식

노래에 인물 감정 그대로 담겨

14년 간 역 맡은 정성화 노련미

인물간 유대와 감정 표현 약해

‘왜 하얼빈 갔나’ 설득력 부족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정성화)의 마지막 1년을 그린 뮤지컬 영화다. CJ ENM 제공. 사진 크게보기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정성화)의 마지막 1년을 그린 뮤지컬 영화다. CJ ENM 제공.

1909년 3월 러시아 연추에서 열두 남자가 스스로 자신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잘랐다. 이들은 3년 이내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겠다고 피로써 맹세했다. 이 동맹을 주도한 이는 약 반 년 뒤인 그해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쏘아 죽였다. 그는 이토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뤼순 감옥에 수감됐다가 이듬해 3월26일 사형을 당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 <영웅>이 21일 개봉한다. <해운대> <국제시장> 등 ‘천만 영화’를 두 편 만든 윤제균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영화는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2009년 초연 때부터 안중근을 연기한 배우 정성화가 영화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다.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을 목격한 가상의 인물 설희는 김고은이 연기했고, 안중근의 동지인 우덕순(조재윤)·조도선(배정남)·유동하(이현우) 등 원작의 인물들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안중근의 오랜 친구인 중국인 왕웨이와 링링 남매는 한국인 마두식(조우진)과 마진주(박진주)로 바뀌었다. ‘장부가’ ‘그 날을 기약하며’ ‘누가 죄인인가’ ‘영웅’ 등 원작의 주요 넘버가 그대로 영화에 삽입됐다. 14곡 중 영화에 새롭게 삽입된 곡은 설희가 부르는 ‘그대 향한 나의 꿈’ 하나다. 윤 감독은 지난 9일 언론배급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절반의 새로움과 절반의 익숙함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기 위한 배우와 연출진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 윤 감독은 라이브 녹음 방식을 고집했다. 덕분에 스튜디오 녹음이 불가피한 분량을 제외한 전체의 70%가량이 현장에서 녹음된 라이브 가창 버전으로 영화에 담겼다. 혼자 부르는 노래의 경우에는 가급적 컷 분할을 하지 않는 롱테이크 방식을 사용했다. 촬영 스태프들은 외부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겨울에 촬영을 하면서도 패딩 점퍼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패딩 점퍼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착용한 인이어와 마이크를 지우기 위해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14년간 안중근을 연기해온 정성화의 안정적인 연기가 극의 중심을 잡는다. 조마리아 여사 역을 맡은 나문희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윤 감독이 라이브 녹음을 고집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음정이 정확하고 매끄러운 노래가 아니더라도, 눈물 젖어 목이 메 힘겹게 부르는 노래가 더 감동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안중근과 동지들의 맹세로 비장하게 시작한다. 중간중간 안중근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내와의 관계, 마진주와 우덕순의 상호 외모 비하가 웃음 소재로 사용되지만 극과 융화되지는 않는다. 급작스러운 농담보다는 인물들 간 유대와 신뢰 관계를 부각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거사 전 잠시의 평화를 묘사하는 데 더 도움이 됐을 듯하다.

조마리아 여사(나문희·오른쪽)는 아들의 이번 여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예감한다. 떠나기 전날 밤 아들의 배냇저고리를 꺼내 본다. CJ ENM 제공 사진 크게보기

조마리아 여사(나문희·오른쪽)는 아들의 이번 여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예감한다. 떠나기 전날 밤 아들의 배냇저고리를 꺼내 본다. CJ ENM 제공

노래에 힘을 쏟은 만큼 서사의 몰입감이나 인물의 감정 표현은 다소 부족하다. 평화를 주창하는 안중근이 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총을 들어야 했는지, 그에게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영화만 봐서는 알기 어렵다. 안중근은 “나는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일본의 제국주의를 미워할 뿐”이라며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제국주의의 원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누가 죄인인가’에 말로 나열될 뿐이다. 안중근은 자신의 평화론에 따라 일본인 포로를 풀어주는데, 그가 ‘은혜도 모르고’ 안중근을 죽이는 데 앞장서는 설정은 안중근의 정신에 오히려 모순돼 왜 영화에 들어간 것인지 의아하다.

안중근이라는 독립운동가가 ‘동양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동지들이 희생됐다. 재판을 받기 위해 수감됐던 안중근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으라’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항소하지 않고 순국한다. 영화는 이 일련의 사실을 전달하는 데에는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왜 그런 결정에 이르렀는지, 어떤 마음으로 총을 품고 하얼빈역에 섰는지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한마디로는 그의 외로움과 결연함을 표현하기 역부족으로 보인다. 상영시간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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