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애써 만든 한 접시의 음식을 누군가는 맛있게 먹고, 누군가는 한 입 맛보더니 최악이라며 다른 것을 가져오라 말한다. 다른 누군가는 요리사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말을 위한 말’을 늘어놓는다. 모든 창작자가 마주하는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어떤 요리사나 영화감독은 이런 비평에 신물이 날 수도 있다. <석세션> <쉐임리스> <앙투라지> 등을 연출한 마크 미로드 감독이 창작자를 열받게 하는 이들을 한 고급 레스토랑의 손님들로 은유한 영화 <더 메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궁지에 몬다.
외딴섬에 있는 레스토랑 ‘호손’에 12명의 손님이 도착한다. 이들은 단 한 끼의 식사에 1250달러(약 161만6000원)를 지불했다. 미식가 테일러(니컬러스 홀트)와 ‘급조한 여자친구’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도 이들과 함께다. 셰프 슬로윅(레이프 파인스)은 오랫동안 이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제공해 왔다. 오늘의 손님은 열한 번이나 이 레스토랑에 온 부유한 노부부, 레스토랑에 거금을 투자한 엔젤투자자의 동업자들, 슬로윅을 스타 셰프로 만든 요리 평론가와 그의 글을 잡지에 실은 편집자, 슬로윅을 찬양하는 미식가, 슬로윅과 친구라며 떵떵거리는 연예인 등이다. 손님들은 슬로윅의 코스 요리가 나올 때마다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눈에 대한 집착이 접시에서도 나타나네. 진부해”라고 평하거나 “배고프니 다른 음식을 좀 달라”고 무리한 요구도 한다. 마고는 다른 손님들과 달리 다음 코스를 차분히 기다린다. 예약자 명단에 없는 마고의 존재를 슬로윅은 불편해한다. 그는 이 모든 손님들에게 원한이 있고, 코스의 마지막에 모두를 죽여버릴 계획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호러와 코미디가 섞였다. 코스가 나올 때 누군가의 손가락이 잘리고,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죽기도 한다. 그다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접시가 나온다. 차례차례 <수요미식회>처럼 화면에 나타나는 음식의 클로즈업샷, 자막으로 제시되는 음식의 이름과 재료를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메뉴에 없는 음식을 달라는 백인 남성 거부들에게 동양인 직원이 “너희는 욕망한 것보다는 적게, (너희의) 주제보다는 많이 먹게 될 것”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장면, “저는 왜 죽어야 되죠”라고 묻는 아이비리그 졸업생에게 슬로윅이 “학자금 대출했나? 아니면 죽어”라고 답하는 장면 등은 황당하고 오싹하지만 통쾌하다.
복수와 냉소의 대상에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포함된다. 슬로윅 사단의 여성 직원은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슬로윅을 칼로 찌르고, 이 역시 메뉴의 일부다.
슬로윅이 마고에게 “당신은 누구냐”며 “우리 쪽인지 저쪽인지 알아야 해”라고 물을 때, 관객도 같은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만드는 사람인가, 소비하는 사람인가.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소비하는 사람인가. 살인극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은 가장 돈 많은 사람도, 셰프에게 사랑받기 위해 가장 노력한 사람도 아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자 가장 단순한 사람이다. 7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