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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같은 사랑을 찾아서···‘채털리 부인의 연인’ #shorts
D H 로렌스(1885~1930)의 장편 <채털리 부인의 연인>(1928)은 영상화하기 까다로운 작품입니다. ‘귀부인과 하인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구도가 자칫 통속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렌스가 처음 이 글을 썼을 때는 파격적이었겠지만, 이후 이 구도는 수많은 성인영화에서 유사하게 변주돼 식상해졌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성인영화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걸 알았다면 저승의 로렌스가 통곡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로렌스 원작의 최신 영화화 버전입니다. 프랑스의 여성 감독 로르 드 클레르몽 토네르가 연출했다는 점에서 자극적인 베드신으로 점철된 성인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주제 의식을 비교적 충실히 따릅니다. 코니(엠마 코린)는 축복 속에 클리포드 채털리와 결혼하지만, 채털리는 신혼의 단꿈을 즐기지도 못한 채 참전했다가 큰 부상을 당한 채 돌아옵니다. 젊은 부부는 채털리 가문의 시골 영지로 이주합니다. 채털리는 가문 소유의 광산 개발 사업에 몰두하는 동시, 가문을 이을 아들을 갖길 원합니다. 채털리 본인이 코니와 동침할 몸 상태가 아님에도 말이죠.
채털리는 코니에게 누군가의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그 아이를 자식 삼아 키우겠다고 제안합니다. 당황해하는 코니에게 채털리는 말합니다. “물론 다른 남자에게 빠지길 원하는 건 아니야. 어차피 형식적인 섹스인데 아무 의미가 없잖아. 감정을 잘 다스리면 돼. 치과에 치료받으러 간다고 생각하면 돼.”
코니가 “아무 남자나 상관없다는 말이냐”고 묻자, 채털리는 “당신 판단을 믿어. 당신이 이상한 남자가 만지도록 허락하진 않겠지. 남자가 누군지 알고 싶지는 않아”라고 답합니다.
코니는 이후 영지의 사냥터지기 올리버와 사랑에 빠집니다. 단 채털리가 바란 것과는 다른 방식의 사랑이었죠. 애초 치과 치료를 받듯 사랑하고 임신하고 출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후반부 채털리는 동력 휠체어를 사용하다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애를 먹습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조차 계획대로 다룰 수 없는데, 깊이와 생김새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을 쉽게 다룰 수 있겠습니까. 사랑 같은 감정이 배제된 관계는 디스토피아적인 SF에서나 가능한 설정입니다. 대개 그런 SF는 감정의 가치를 깨달은 주인공의 일탈 혹은 파국으로 전개됩니다.
채털리의 저택은 편리하고 깨끗하지만 더 없이 갑갑합니다. 올리버의 오두막은 작고 낡았지만 코니는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코니와 올리버는 처음에는 오두막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차츰 야외로 나갑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코니와 올리버가 갑자기 옷을 벗고 뛰쳐나가 온 몸에 비를 맞으며 즐거워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채털리 부인’으로서 지켜야 할 체통, 결혼 제도의 굴레 같은 것들이 빗속에서 씻겨 나갑니다. 이제 코니는 ‘채털리 부인’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마 누군가에게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불륜 영화’에 불과할 겁니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코니와 올리버의 관계에 대해 나쁜 소문이 퍼집니다. 채털리는 자신의 명예에 흠집이 나자 분노하고, 동네 사람들은 ‘귀부인과 하인의 사랑’을 두고 쑥덕댑니다. 물론 제작진은 세간의 시선이나 관습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감정을 믿고 따르는 두 연인을 응원합니다.
영국 왕실을 다룬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더 크라운>에서 젊은 시절의 다이애나비를 연기한 엠마 코린이 코니 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자연친화 지수 ★★★★ / 영국 전원의 무심한 듯 아름다운 풍경
자유연애 지수 ★★★★ / 제도와 관습을 벗어난 사랑을 옹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