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점조차 미래의 다른 가능성이라 믿게 만드는 힘

심사위원 강동호·강지희·김미월·김인숙·정지아(가나다순)

심사평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2023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위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2023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위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올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심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예·본심 통합으로 진행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예심 단계에서 추천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꼼꼼히 검토하고, 당선작을 결정하기 위한 토론에 돌입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세 편의 작품에 주목했고, 각 작품이 보여주는 매력과 아쉬움에 관해 논의하며 최종 당선작을 가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박하의 <호모 파라볼라>는 항공우주센터에서 만난 두 주인공 사이의 우연한 만남과 대화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꿈과 사랑에 관한 인간적 감정을 대하는 작가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이 담백하고 안정적인 문장을 통해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지나치게 투명하고 정직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 그리하여 독자의 상상이 개입해 들어갈 여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모난 데 없이 단정하지만, 응모작만의 독자적인 개성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소윤의 <백자 이야기>는 백자가 되어버린 사람에 관한 서술자의 자폐적이고 관념적인 의식의 흐름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집요하면서도 미학적인 문체를 바탕으로 망상의 곡예를 이끌어 가는데, 끝까지 서사적 긴장감을 잃지 않는 능력이 범상치 않았다. 그러나 상실과 글쓰기에 대한 실험적 자의식을 연결하는 변신 모티프가 새롭지 않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그것을 전개해 나가는 자폐적 스타일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응모자의 소설적 재능은 분명하게 감지되나, 응모작 자체만으로는 습작의 단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소설적 세계에 도달해 있다는 충분한 신뢰를 주지는 못했다.

당선작인 신보라의 <휠얼라이먼트>는 정체가 불분명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해 기이한 연극적 대화를 주고받는, 한 편의 부조리극과 같은 소설이다. 미묘하게 일탈적이고, 이상하게 도발적인 이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단문 형태의 거칠고 시건방진 말,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의 불연속적인 전개이다. 읽는 이를 사로잡는 서사적 에너지와 광기의 흡입력이 매력적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지나치게 불친절하고 인물과 말에 있어 작가가 다소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적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러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관한 소회로 심사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이 작품의 논쟁적 호소력을 수행적으로 방증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심사위원들이 최종적으로 <휠얼라이먼트>를 선택한 것은 이 작품이 결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점조차 미래의 다른 가능성이라고 믿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당선자가 그 믿음을 증명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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