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죽고···‘모두 잊었으니까’

백승찬 기자
디즈니플러스 <모두 잊었으니까>의 미스터리 작가 M(아베 히로시).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플러스 <모두 잊었으니까>의 미스터리 작가 M(아베 히로시).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오마주]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죽고···‘모두 잊었으니까’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5년 만난 애인이 사라졌다...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모두 잊었으니까’ #shorts #오마주

M(아베 히로시)은 중년의 미스터리 작가입니다. 단골 카페 머메이드나 바 등대에서 글을 씁니다. 등대에서 열린 핼러윈 파티에 5년째 사귄 여자친구 F(오노 마치코)가 나타나기로 했지만 결국 얼굴을 보이지 않습니다. M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같은 일상을 이어갑니다. 3주가 지난 뒤, 등대에 F의 언니라는 사람이 나타나 M에게 동생의 행방을 묻습니다. M은 그제야 F가 실종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방을 찾아 나섭니다.

‘의문스럽게 실종된 여자친구를 찾는 미스터리 작가’라는 설정만 들으면 <모두 잊었으니까>를 음울한 필름 누아르 혹은 숨 막히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죽이진 않았죠?’ ‘당신의 관절을 다 부러뜨리겠습니다’ 등 초반부 에피소드 제목만 들으면 섬찟하기도 합니다.

막상 보면 분위기는 예상과 전혀 다릅니다. M은 F 언니의 독촉에 F의 행방을 찾아 나서긴 하지만, 큰 열의를 보이진 않습니다. 범죄 혐의가 없기에 경찰이 나서지도 않습니다. M은 등대나 머메이드에서 글을 쓰고, 편집자를 만나고, 가게 주인이나 단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소일합니다. F의 실종은 어쩌면 맥거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가한 진행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느긋함이 묘한 매력을 줍니다. 마치 유사 가족 같은 단골손님들과 가게 주인의 별다른 것 없는 대화를 들으면 어딘가에 저런 단골 가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들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데 거침이 없으면서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존중합니다. 편집자는 M을 설득해 에세이를 연재하게 하고, 이를 묶어 단행본으로 내려 합니다. M은 투덜대면서도 에세이를 쓰고, 편집자가 시키는 대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시작합니다. 연배와 사회적 위치로 봤을 때 M은 갑, 편집자는 을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편집자의 고양이를 대신 맡아줄 정도로 융통성 있고 너그럽습니다. M과 편집자가 맺는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인간적인 관계는 사회생활을 하는 직업인이 받아들일 만한 모범 같습니다.

다만 연인 관계는 술집의 단골, 일로 만난 상대와는 달라야 하나 봅니다. M은 F의 행방을 캐면 캘수록 자신이 5년이나 사귄 F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각자 집에 살면서 가끔 만나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삶이나 고민에 대해 캐묻거나 간섭하지 않고, 3주간 연락이 없어도 궁금해하지 않는 관계는 ‘연인’이란 이름으로는 지속되기 어려울 겁니다. 중년의 M과 F가 10~20대처럼 뜨거울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M은 금세 돌아올 수 있는, 적당히 지겨운 장소로 여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연인, 가족과 진득하게 엮이지 않고 혼자 적당히 불행한 상태가 마음 편하다고도 말합니다. M과 같은 캐릭터의 사람이 점차 늘어나는 것은 현대 도시 생활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 같습니다.

매회 30분 안팎의 상영시간에 격정적인 전개도 없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단편처럼 삶이 내는 수수께끼를 불쑥 던지기도 합니다. 단 둘이 술을 마시며 대화하다가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뜬 뒤 돌아오지 않은 친구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M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겁니다. 단지 연인도 가족도 친구도 일로 엮인 사람도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헤어지고 결국 죽음으로 영원히 이별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뿐입니다. M은 자신의 에세이를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써놓길 잘했다.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도, 현실이라 믿었던 일도 조만간 우리는 모두 잊을테니까.”

<모두 잊었으니까>는 형식적으로도 독특합니다. 남성인 M의 심경을 여성 화자가 읽어줍니다. 매 에피소드 마지막에 실제 뮤지션이 라이브로 한 곡씩을 노래합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연을 맡았던 가수 겸 배우 미우라 도코의 노래도 들을 수 있습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10개 에피소드를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여행 지수 ★★★★ 오래됐지만 단정한 일본 뒷골목의 카페 풍경

차도남 지수 ★★★★★ 쿨하지만 애착도 없는 남성 주인공

<모두 잊었으니까>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모두 잊었으니까>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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