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잽이 안철수 vs 독불장군 윤석열을 그린 ‘간도리’…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개그 만화

위근우 칼럼니스트

캐릭터의 속마음까지 끄집어낸 현실 정치 풍자…안 웃을 도리가 없다

현재 한국 최고의 개그만화는 박순찬 작가의 <간도리>다. 분야를 만화에서 다른 미디어로 넓히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경향신문에서 시사만화 <장도리>를 연재하다 퇴사한 그는, 현재 블로그에서 <장도리> 시즌 2를 비롯한 만화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이 중 지난 1월 중순부터 연재 중인 <간도리>는 정치적 선택에서 항상 간을 보는 ‘간도리’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중심에 놓고,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둘러싼 당의 내분과 대통령실과의 긴장 관계를 코믹하게 그려낸다. 물론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부터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까지, 시사풍자만화엔 언제나 유머가 있었다. 서슬 퍼런 권력의 말과 행동 사이 모순을 비집어 드러내는 그런 날카로운 유머. 하지만 <간도리>의 유머는 분명 정치 풍자의 영역에 있되 기존 시사만화, 심지어 <장도리>와도 궤를 달리한다.

과거 <장도리>는 ‘헬조선’이란 단어로 상징되던 박근혜 정부 시절 유독 강한 분노를 담아내기도 했지만, 정치가 기득권에 복무하며 국민과 괴리되는 모습은 어떤 웃기는 아이디어로 표현한들 공분을 자극한다. 역시 작가가 블로그에 연재 중인 <윤도리>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을 하찮은 소인배로 우습게 묘사하지만, 차라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능해 보인다고 한숨짓는 만화 속 서민들의 모습을 보며 마냥 웃기란 어렵다. 그런데, <간도리>는 마냥 웃긴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가 자기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고 소주를 마시며 투덜대는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의 심기를 계속해서 건드리며 간을 보는 안철수, 당권 경쟁에서 밀려나 까마귀밥 신세가 됐지만 복수를 다짐하는 이준석 등 <간도리>는 세상 못난 사람들의 디테일한 못난 이전투구를 요절복통 캐릭터쇼로 풀어낸다.

점입가경인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그 자체로 좋은 코미디 소재긴 하다. 같은 여당 안에서 누가 ‘윤심’인지 따지는 걸 넘어 대통령실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해 나경원을 주저앉히고 안철수를 압박하는 것도 초유의 사태거니와, 그 와중에 윤석열과 안철수를 향한 양비론으로 깐족대는 이준석의 언론 플레이는 얄밉기 그지없다. 이 세계는 별도의 각색 없이도 <하우스 오브 카드>보단 <SNL>에 훨씬 가깝다. 하지만 <간도리>가 좋은 소재에 무임승차하는 건 아니다. 작가는 이 혼돈에서 서사의 중심을 윤석열이나 이준석이 아닌 안철수로 놓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한다. 대통령실 관계자 입을 통해 “안(철수) 후보는 더 이상 설명 필요 없는 내부총질 전문가”라는 말이 나와 보도될 정도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와 단일화를 했던 안철수의 기여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 어쩌면 치욕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간도리>는 안철수를 치욕의 피해자가 아닌 계속 간을 보며 대통령의 심기를 찜찜하게 하는 주체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시사만화 ‘장도리’의 박순찬 작가
프리선언 후 블로그 등서 작품 활동
작년 ‘윤도리’ 이어 ‘간도리’ 연재

대상의 특징·표정 절묘하게 캐치
코미디같은 정치에 헛웃음 유발

비록 일시적이지만, 희화화를 넘어
자책·정치혐오·현실도피로부터
새로운 전망에 대한 기대를 깨운다

이 구도의 효과는 너무나 명백한데, ‘간도리’ 때문에 약 올라 몸부림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다는 거다. 특히 “내가 누굽니꽈”라는 안철수의 정신 공격과 밧줄로 묶어 당기는 이준석의 고문에 협공당하는 악몽을 꾸다 땀범벅이 돼 일어나는 장면은 백미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전당대회와 이상민 장관 탄핵으로 그가 실제로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국민이 난방비 폭탄을 맞고, 2월 초 무역적자 50억달러가 되고, 같은 당 소속 강원도지사가 야기한 채권시장 신용 하락의 여파에도, 해외만 나가면 입방정이나 떠는 대통령이 마음 편히 숙면을 취해선 안 될 일이다. 대상의 특징과 표정을 절묘하게 잡아내는 박순찬의 그림으로 분통 터진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보는 건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준다.

안철수를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이 그의 정치 행보를 긍정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간도리> 첫 화는 지난 대선 당시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해 무능한 후보를 뽑으면 1년이 지나 그 사람 뽑은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할 것”이라며 선거 완주를 약속하고선 결국 단일화를 했던 사실을 따지려는 유권자들을 피해 안철수가 도망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2화에선 도망치는 중에도 속도를 조절하며 추적자의 간을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이, 3화에선 붙잡히자 “만약 도망가는 일이 있으면 발가락을 자르겠다” 공언한 뒤 커피만 얻어먹고 바로 도망가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의 미꾸라지 같은 정치적 행보는 철저히 희화화된다. 그보다 재밌는 건, 이렇게 희화화된 ‘간잽이’ 캐릭터가 모든 걸 자기 뜻대로 밀어붙여야 하는 윤석열 캐릭터에게 가장 불편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까마귀밥 신세가 된 이준석과 나경원을 보며 “난 저렇게 당하지 않아, 거짓말과 뒤통수치기 실력을 보여줄 때”라고 다짐하는 안철수의 결연한 표정(4화)과 ‘말로만 듣던 찰스맛’에 술맛이 쓴 윤석열의 일그러진 표정이 이어질 때(5화), 신의 없는 자와 독불장군이라는 각기 다른 방식의 미숙함이 선명히 드러난다. 그 미숙함은 세상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 서로를 괴롭히는 방식으로서만 우리에게 일말의 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 뿐이다. 다음 화에서 역시 박순찬 특유의 똑같으면서도 못생긴 얼굴로 묘사된 이준석이 “나 이준석이다”라며 다 죽어가면서도 이죽댈 때, <간도리>는 안정적인 웃음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안철수의 눈치 게임은 무책임하지만 윤석열의 뒷목을 당기게 할 수 있으며, 윤석열의 독단은 막무가내지만 이준석을 폐서인할 수 있고, 이준석이 나대는 건 짜증나지만 안철수와 윤석열도 짜증나게 할 수 있다. 개성 있는 못난이들끼리 서로를 괴롭히려 온 힘을 다하는데 안 웃을 이유가 없다.

물론 <간도리>가 줄 수 있는 웃음은 일시적이다. 박순찬 블로그의 다른 시사만화 소재가 된 사건들, 가령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 뇌물 혐의 무죄, 청와대 연루설이 나오고 스스로도 숨기지 않지만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무속인 천공의 존재 등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울화통 터질 소식이 한가득이다. 이런 시국에 시사만화가 이토록 마냥 웃겨도 될 일일까. 괜찮다. 분노는 많은 감정적 자원을 소진하기에 우리에겐 웃음 역시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시사만화로서 <간도리> 자체가 현실에 대해 충분히 비판적인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 때문만도 아니다. 오직 공들인 유머만이 우리를 자조와 냉소로부터 지켜주기 때문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앞서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이 그 자체로 좋은 코미디 소재라고도 했지만, 질 나쁜 정치는 언제나 일정한 헛웃음을 자아낸다. 누가 봐도 빤한 의도로 압수수색이 남발될 때, 그것은 일종의 농담거리가 된다. 그 웃음은 가장 시니컬한 순간에도 우리의 자리를 나쁜 정치의 객체에 머무르게 한다. 남의 집 보듯 팝콘을 씹으면서만 내 집이 불타는 걸 바라볼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동안 TV를 중심으로 나온 소위 정치 풍자 개그라는 게 거의 이 모양이었다.

반면 <간도리>는 나쁜 정치의 외설적 형식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소동극이 실은 얼마나 허약한 지반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며 외설적 형식에 가려진 내용의 공허함을 까발린다. 이때 웃음은 비로소 현실도피나 자기혐오가 아닌 새로운 전망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낸다. 지금도 우스운 저들에게서 권력을 박탈할 때, 이 코미디의 결말은 얼마나 웃길 수 있을 것인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꽤 건강한 웃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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