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소년 이미지…러닝머신서 네발로 달렸죠”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한다더니 기껏 공중에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게 일이냐!”

“야생소년 이미지…러닝머신서 네발로 달렸죠”

고향 경남 진해에서 올라온 아버지는 해외 유명작에 출연하는 아들의 공연을 본 후 실망과 질책의 한마디를 남기고 내려가셨다. ‘델라구아다’는 지상에서 3m 높이인 천장 무대에 매달린 채 고난도 연기를 펼치는 독특한 신체극. 오디션을 통해 뽑힌 국내 유일의 배우로 참여했다. 해외 연출자가 브로드웨이 공연을 위해 스카우트 제의를 했을 정도로 그의 기량은 뛰어났다. 진선규(29)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3학년 때인 4년 전의 일이었다.

진선규는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연극 ‘보이첵’ ‘공포의 꽃가게’ ‘햄릿’ ‘하륵이야기’ 등에서 활약한 배우로 몸 연기만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주인공 ‘야생소년’ 역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사실. 인간과 처음 대면한 듯한 야생의 목소리, 동물적인 움직임, 순수한 마음을 담은 연기가 눈길을 끌었다. 객석에서는 “타잔이야, 킹콩이야”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진선규의 아버지도 이 공연을 보고 “사람 역할도 아니고 기어다니기 바쁘더구나”라고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지난 연말 공연한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는 무료병원 602호의 붙박이 환자 최병호 역할로 등장했다. 척추마비로 몸이 불편한 최병호는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 인물. 공연 마지막날까지 표가 매진되는 바람에 다행히 아버지는 관람하지 못했다.

대학로에서 성공작으로 꼽히는 작품에는 이렇게 늘 진선규가 끼어 있다. 이젠 제법 분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알아보는 팬들도 많아졌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CJ엔터테인먼트 제작으로 대학로예술마당 1관에서 오는 7일부터 다시 공연될 예정이다. 2004년 대학 재학 시절 민준호 연출과 함께 학교의 지원금 80만원으로 만든 작품. ‘빈곤’이 가져다준 창작력은 천 조각뿐인 텅빈 무대와 배우들의 자연물 연기, 신선한 소재와 연출로 성공을 가져왔다. ‘오페라의 유령’ 등 해외 대작에 투자해온 CJ가 대학로에 진출하며 선택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은 연기가 몸에 배어있어 자연스럽지만 처음엔 엄청 고생했어요. 야생소년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러닝머신 위에 올라 짐승처럼 네 발로 달리는 연습을 했죠. 자연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타잔’ 등을 보면서 수없이 따라했어요. 운동을 좋아한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격투기 전공을 꿈꿨다. 고교 3학년 때 지역 극단 ‘고독’에서 스태프로 잠깐 일하며 연극 분위기를 맛본 게 계기가 됐다. 작은 공간에서 옹기종기 연습하는 모습이 마음에 다가왔던 것.

“그때 처음으로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시골에서 살다보니 태어나서 한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었는데 덜컥 연극원에 합격했지요. 동네 형, 아저씨 같은 사람 냄새 나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보잘 것 없이 시작해 동료, 관객들과 함께 키워가는 작품 재미도 쏠쏠합니다.”

좀더 다듬어진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기대해달라는 진선규는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고향의 극단을 찾아 잔일을 돕는 ‘의리파’다.

〈글 김희연·사진 박재찬기자 eggh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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