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 김기영 감독 유작 시나리오 ‘생존자’ 찾았다

정용인 기자

그동안 알려진 김 감독의 마지막 시나리오는 ‘악녀’였다. 그러나 고인이 생전 인터뷰에서 밝힌 <생존자>라는 시나리오가 5분의 1쯤 불에 그을린 상태로 영상자료원에 보관되어 있다. 김 감독 부부를 삼킨 화마 속에서도 살아남은 시나리오의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책장을 넘기면 바스러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아직 보존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상자료원 관계자가 주의사항을 말해줬다. 아들 김동원씨(61)가 흰 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표지를 넘겼다. ‘생존자(生存者). 유락성 영화주식회사 팬 푸로덕숀 합동 초특급작품(1997년도)’ 낯익은 손 글씨다. 고 김기영 감독의 글씨다. 5분의 1 정도는 불에 그을려 있었다.

1998년 2월 5일 화재로 세상을 떠나기 전, 한때 영화화가 추진되기도 했다. 주연으로 영화배우 이지은씨가 거론됐다. 악녀 프로젝트는 김 감독이 세상을 떠난 후 영화판 용어로 ‘엎어졌다’. 욕심을 내고 달려든 감독들은 많았지만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않았다.

7월25일 영상자료원에서 고 김기영 감독의 아들 동원씨가 유품으로 보관되던 김 감독의 시나리오 <생존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7월25일 영상자료원에서 고 김기영 감독의 아들 동원씨가 유품으로 보관되던 김 감독의 시나리오 <생존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뒤늦게 재발견된 한국영화 거장


‘거장’ 김기영 감독은 사실상 뒤늦게 재발견되었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회고전이 기점이다. 해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이 화마에 희생된 며칠 뒤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특별회고전에서 김 감독의 작품들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나 더글라스 서크 등과 비교되었다. 2006년 프랑스 시네마테크에서 김 감독 작품 18편이 상영되었다. 영상자료원이 2008년 복원한 <하녀>는 그해 열린 칸 영화제 회고섹션에 특별초청되었다. 1983년, 일본의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나라야마부시꼬>. 20년 이전에 같은 주제를 다룬 김기영 감독의 영화 <고려장>(1963)이 있었다. 정작 본인은 부끄러워했지만, 유신시대 외화수입용 의무편수제 때문에 날림으로 만든 후기작 <파계>(1974), <육체의 약속>(1975),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같은 영화에도 김 감독의 팬들은 열광했다. 그의 사후 영상자료원의 복원작업을 통해 초기작인 <주검의 상자> (1955), <양산도>(1955) 등은 복원되었지만 <여성전선>(1957), <10대의 반항>(1957) 등의 작품은 아직도 ‘전설’로만 남아 있다.

결국 영화화하지 못한 <악녀> 이외에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것은 생전 인터뷰를 통해 감독이 밝힌 바 있다. 지금은 폐간된 잡지 <키노> 1997년 1월호에서 김 감독은 “이제 막 탈고를 끝냈다”며 영화 <생존자>의 스토리를 언급한다(이 인터뷰는 지난 2007년 책으로 나온 <전설의 낙인>에 재수록되어 있다).

-최근에 새로운 시나리오를 탈고하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런 이야기다. 시대 배경은 일제시대부터 오늘까지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가 어렸을 적에 강원도 금화군 금남면 양지리에서 살았다. 이곳에서 오붓하게 같은 성씨만 모여 살았다. 시나리오를 시작하기 전에 미군이 바로 이 마을에 원자탄을 쏘려고 했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한국전쟁 때) 이곳에 중공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폭탄이 터지고 중공군 10만명과 마을사람들이 전멸했다. 이건 기록에도 남아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의 생존자가 바로 나 하나다. 그래서 시나리오의 제목도 <생존자>다. 멋지지 않는가.”

“마침 전화를 해봤더니 기도원인데 막 원고를 탈고했다는 것이다.”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던 이연호 영화평론가의 말이다. 그도 <악녀>의 시나리오는 봤지만 <생존자>는 보지 못했다. “경험담처럼 말하는데 그게 실제인지 픽션인지 알 수 없었다. 본인이 혼자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사실 믿을 수 없어서 설마했더니 ‘진짜’라며 돌아가신 분들 실명을 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일종의 영화적 번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유품으로 분류돼 작품 리스트에도 없어

<생존자>는 김기영 감독 생전에 묶여나온 <김기영 시나리오 선집>이나 영화감독 김홍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고 김 감독의 타계 후 편집해낸 <김기영 시나리오 선집2>권에도 실리지 않았다. 김홍준 감독은 “<생존자>라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상자료원이 보관 중인 시나리오 리스트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유품’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존자> 시나리오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와 과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시나리오 앞에 실린 ‘제작의도’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6·25전쟁 시 원인 모를 괴질로 촌민이 모두 전멸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져 본인만이 살아남은 증인이 되었다. 그 괴질은 ‘에이즈’처럼 지구상에 없던 균이라는 것이 판명된 바 있다. 이 영화는 내가 창작한 작품을 다섯 개나 모은 것으로, 창작이라기보다 실화의 모음 같은 것일지 모른다. 모두 근거가 있는 [에피소-드]로 엮여 있어 [휙숀]과는 다른 차원의 감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 감독의 인터뷰에서 눈길을 끈 것은 원자탄이나 알 수 없는 폭탄이 터져 중공군 10만명과 마을사람들이 전멸했다는 대목이다.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건 기록에도 남아 있는 사건”이라며 실화임을 강조했다. 찾아보니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기밀해제 문서가 있었다. 실제 한국전에서 원자탄 사용 논의와 관련된 문서도 있었다. 김 감독의 시나리오에서 주인공인 신문기자 순자의 말을 빌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유엔군이 이 황폐한 산골을 큰 도시 개성과 바꾼 이유를 아세요? 이곳을 내주면 안 됐기 때문이야. 우리가 가는 고려마을 입구 철조망 초소 저쪽에서 세계 역사상 가장 괴기한 사건이 벌어져 30만 중공군이 하루 아침에 소멸되고 고려마을 주민이 자취를 감춰 생존자가 한 명도 없게 됐어요.”

30만 중공군·주민 절멸 ‘실화’ 강조

결국 세균전 등 미군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서부전선을 포기하고 동부전선을 지켰다는 것이다. 미 CIA는 그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해 암살한다. CIA의 하수인인 한국의 정보기관도 마찬가지다. <생존자>의 시나리오는 살아남은 주인공들이 얼싸안고, 그동안 죽은 마을사람들, 민통선을 지키는 초병들이 함께 ‘강원도 아리랑’을 부르는 것으로 끝맺는다.

시나리오는 여러 차례 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에는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이 TV에 생중계되는 것을 묘사하는 대목이 있다. 또 전쟁 후 30년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1980년도에도 손을 봤던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제작의도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고대한다. 일찍이 없던 대작의 기획이라 제작비, 연출에 무척 고난을 겪을 것 같다.’ 감독의 말대로 실제로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비를 넘어야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아버지가 전쟁터에 끌려가자 어머니는 양공주로 흑인 병사들에게 몸을 판다. 호객행위를 하는 것은 7살 먹은 아들이다. 시대적 배경이 1970·80년대인 것도 어려운 점이다. 아들 동원씨는 말한다. “행복하게 돌아가신 셈이다. 만약 <악녀>가 개봉해서 흥행 실패를 했다면 실망감을 안고 가셨겠지만….”

제작의도에서 김 감독의 마지막 바람은 이것이다. ‘영화상영관에 발을 안 들이던 관객들이 1년에 한 번쯤 오게 할 의지의 영화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영상자료원이 유물로 보관 중인 <생존자>시나리오. 아직 대외적으로 공개되진 않는다. |정용인 기자

영상자료원이 유물로 보관 중인 <생존자>시나리오. 아직 대외적으로 공개되진 않는다. |정용인 기자

영화처럼 기묘한 죽음과 또다른 유작들


누가 봐도 기묘한 죽음이었다. 김기영 감독 부부는 1998년 2월 5일 새벽, 명륜동 집 화재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까지 미공개 작품이었던 그의 영화 <죽어도 좋은 경험>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부부가 화재로 죽는 것이었다. ‘그로테스크’, ‘괴짜’. 1960년대 신문에 실린 영화 인상평부터 김 감독을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그가 전에 기거하던 주자동 양옥집은 귀신이 나오는 흉가라서 싸게 구입해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들 동원씨는 “처음에 살던 집에 살던 젊은이가 철조망에 목이 걸려 죽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앞서 인용한 <전설의 낙인>에 따르면 대학로의 집은 이미 두 차례나 노부부가 죽었는데, 대들보가 무너지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한날 한시에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새벽 2시에 달려갔다. 잿더미가 내 키보다 높게 쌓였다.” 아들 동원씨는 집이 화재로 전소된 후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다 타서 잿더미가 되었는데 비닐에 싸인 문서가 발견되었다. ‘동원아 보거라’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유서였다. “너무 놀랐다. 유서 첫 마디는 ‘내가 이 한옥을 사지 말자고 했는데 네 엄마가 우겨서 샀다’는 책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것이다. ‘내가 공중에 떠서 우리집 마당을 내려다 보는데 아마도 내가 죽은 모양이다. 네(동원씨)가 마당에 삼발이를 치고 땅을 파고 있는 것이 보인다.’” 김 감독이 묘사하고 있는 모습이 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던 것이다.

생전에 김 감독은 <악녀>와 함께 <아라리 전설>이라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거론하기도 했다. 여운형이 나온다는 그 작품이 <생존자>일까. <생존자>에는 여운형 대신 박헌영이 스쳐지나듯 나온다. 김 감독의 또 다른 유작 시나리오 중에는 <아라리오>라는 작품이 있다. 조선시대 한의사 허준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기자는 이번 취재 중 김 감독이 직접 작성한 <아라리 전설>의 시놉시스도 확인했다. 김 감독이 밝힌 <아라리 전설>의 주제는 다음이다. ‘많은 죽엄의 출산 속에 생식사명을 갖일 여성의 숙명적 생태를 밝킨다.’ 영화의 ‘휘나레’는 다음과 같다. ‘호수에 SF적인 화면 가득한 크기의 달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떠오른다. 프롤로그의 달의 10,000배 크기 달이다.(특촬)-(중략)-돌연 하늘의 월면을 붉게 침범하는 월식 바닷물이 만월에 이끌려 부풀어 오른다. 그 색깔이 피색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눈을 감고 나와 눈을 뜨는 영아. 그 눈색깔은 푸른 광채를 낸다. 생명의 존재 표현이다.’

종전까지 ‘유작’으로 알려졌던 <악녀> 시나리오는 앞서 언급한 <김기영시나리오선집>에 실린 <겨울무지개>로 알려졌다. 이연호 평론가는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미 쓴 작품을 여러 이름으로 다시 개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타계하기 전 <악녀>의 시나리오를 봤던 이 평론가는 “예를 들어 도봉산 기슭의 상이군인 마을과 포장마차에 가서 몸을 파는 아내들의 이야기가 배경에 있는데 이것은 지금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 만약 영화화하면 개작이 불가피한 부분 ”이라고 말했다.

김홍준 감독은 “핵심을 누가 표절할 수 있다는 생각에 김기영 감독은 외부인에게 보여주는 시나리오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존자>라는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금시초문인 이야기”라며 “선집에 실리지 않은 시나리오들이 많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재로 불타버렸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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