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낄 웃다가 우울해지는 지구멸망 이야기···‘돈 룩 업’

백승찬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빅 쇼트>(2015), 정치인 딕 체니를 풍자적으로 그린 <바이스>(2018)를 연출했던 미국인 감독 애덤 매케이는 2019년 <2050 거주불능 지구>라는 책을 읽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파괴적인 미래를 과학적 근거로 예측한 책이다. 매케이는 이대로라면 파국이 확실시되는데도 전 세계는 아무 일 없는 듯 유유자적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매케이는 동료들과 이에 대해 얘기하다가 한결같은 비유를 전해들었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직전인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과 똑같다.” 매케이는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영화의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천문학과 대학원생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런스)와 담당 교수 민디(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지구 충돌 궤도로 오는 혜성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둘은 권위자인 오글소프 박사(롭 모건)를 통해 백악관에 이 사실을 알리려 한다. 셋은 어렵사리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리프)과 면담한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지구 멸망의 전조를 건성으로 받아들인다. 민디와 디비아스키는 텔레비전에 출연해 지구 멸망을 경고하지만 대중은 분노하는 디비아스키의 얼굴을 인터넷 밈으로 만들어 소비할 뿐이다. 백악관은 선거용 이벤트로 혜성을 폭발시키는 프로젝트에 뒤늦게 착수한다. 이 계획은 예기치 못한 변수에 부딪힌다.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메릴 스트리프가 미국 대통령 역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메릴 스트리프가 미국 대통령 역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대통령(앞줄 오른쪽)은 아들(앞줄 왼쪽)을 비서실장으로 뒀다. 비서실장이 어디서든 버킨 백을 들고 다닌다는 설정은 이 역을 연기한 조나 힐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버킨 백 안에는 핵폭탄 발사 코드가 들어있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대통령(앞줄 오른쪽)은 아들(앞줄 왼쪽)을 비서실장으로 뒀다. 비서실장이 어디서든 버킨 백을 들고 다닌다는 설정은 이 역을 연기한 조나 힐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버킨 백 안에는 핵폭탄 발사 코드가 들어있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지구로 향하는 혜성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의 말에 백악관은 귀기울이지 않는다. |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지구로 향하는 혜성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의 말에 백악관은 귀기울이지 않는다. | 넷플릭스 제공

전개와 결말이 모두 끔찍한 영화지만 막상 관람하면서는 키득대는 웃음을 멈추기 어렵다. 인류 존망의 과제가 눈앞에 닥쳐왔는데 정치권을 비롯한 미국 사회 전체가 아무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 블랙코미디로 그려졌다. 매케이의 풍자와 조롱은 직군을 가리지 않는다. 먼저 정치인이다. 아들(조나 힐)을 비서실장으로 앉혀둔 대통령은 6개월 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데도 중간선거만 걱정한다. 여러모로 자격 미달인 대통령 추천 대법관 후보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취임 선서를 한다. 백악관의 과학담당 자문은 어찌된 일인지 마취과 의사가 맡고 있다. 혜성 폭파를 위한 로켓 발사식 역시 대통령 인기를 위한 이벤트성으로 치러진다. 무인으로 조종할 수 있는 로켓이지만 대통령은 영웅이 필요하다면서 극우적인 퇴역 장성을 로켓 조종석에 앉힌다.

언론도 위기를 알리는 데 무력하다. 신문은 디비아스키와 민디의 발견을 단독으로 보도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신통치 않자 후속보도를 접는다. 인기 아침 토크쇼의 진행자들이 디비아스키와 민디를 불러놓고 처음 묻는 말은 “외계인은 있습니까?”이다.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브리 이반테(케이트 블란쳇, 왼쪽부터)와 잭 브레머(타일러 페리)가 진행하는 텔레비전 쇼에 민디 박사(리어나도 디캐브리오)와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런스)가 출연하는 대목이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브리 이반테(케이트 블란쳇, 왼쪽부터)와 잭 브레머(타일러 페리)가 진행하는 텔레비전 쇼에 민디 박사(리어나도 디캐브리오)와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런스)가 출연하는 대목이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제공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제공

페이스북이나 구글을 연상케 하는 거대 정보기술(IT) 기업 배쉬는 인류 멸망의 시계를 앞당기는 최대의 악당으로 묘사된다. 배쉬의 최고경영자 이셔웰(마크 라일런스)은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을 동원해 알아낸 지식으로 혜성은 재난이 아니라 기회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을 받지 않았다. 이셔웰은 평화, 불평등 해소 등의 단어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배쉬의 독점적 이윤 추구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혜성 충돌이 임박했다는 수많은 과학적 증거를 믿지 않거나, 혜성이 충돌하건 말건 톱스타 커플의 떠들썩한 결별과 재결합 소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대중 역시 멍청하게 그려진다.

결국 혜성이 밤하늘에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한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 이들은 ‘하늘을 보라’(룩 업)는 캠페인을 펼친다.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들은 ‘보지 말라’(돈 룩 업)고 외친다.

재난이 임박했는데도 희희낙락하는 인류의 모습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절실한 풍자로 보일 수도, 인류 전체에 대한 혐오로 보일 수도 있다. 엔딩 크레디트 이후의 쿠키 영상은 우둔한 인류에 대한 최종적 조롱이다. 볼 때는 웃기지만 보고 나면 우울해지는 영화다. 디캐프리오, 로런스, 스트리프 이외에도 케이트 블란쳇, 티모테 샬라메, 아리아나 그란데 등 한 편의 영화로 모으기 힘든 배우들이 등장한다. 8일 극장 개봉했고, 2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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