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스포일러 보일라

김태훈 기자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스파이더맨 스포일러(내용누출) 피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클릭하면 경고가 뜬다. “이렇게 방심하다가 스포일러에 당한다. 앞으로는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스포일러를 주의하라는 엇비슷한 내용의 인터넷 게시물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두고선 ‘당신은 또 이렇게 스포일러에 당할 뻔했다’고 알려주는 소위 ‘츤데레’ 같은 게시물들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오죽하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빠른 흥행에 ‘스포일러’ 노출을 피하기 위해 관객들이 영화의 관람을 서두른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까지 나올 정도다.

마블 스튜디오의 연작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지난 12월 15일 개봉했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대신 다시 사회 곳곳에서 ‘거리 두기’ 방역정책이 강화되면서 상영 횟수와 시간 모두 전보다 제한이 늘었지만 오랜만에 흥행작을 보러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집계된 12월 22일까지의 국내 누적 관객수는 335만9830명을 기록했다. 2021년 한국 극장가 최대 흥행작인 <모가디슈>가 361만 관객을 동원한 기록과 비교하면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도 12월 19일까지 누적 매출액이 2억9727만달러(약 3528억원)를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봉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본’ 관객들 근질거리는 입

‘스파이더맨’이 원작 만화에서부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마블의 가장 주요한 시리즈인 동시에 캐릭터이기 때문에 흥행은 이미 예상된 바 있다. 또한 시리즈의 전작인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이어 3부작의 결론을 맺는 작품이어서 팬들의 기대도 컸다. 때문에 소니 픽처스가 앞장서 ‘스포일러 자제’ 캠페인을 벌일 정도로 ‘아직 못 본’ 관객들이 ‘이미 본’ 관객들의 근질거리는 입을 다물게 하는 문제는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스포일러를 둘러싼 논쟁은 그저 스포일러를 금지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스포일러’라는 표현은 영어의 원뜻대로 옮기면 ‘망쳐버리는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처음으로 이 표현이 등장한 때는 1971년 4월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유머 잡지 ‘내셔널 램푼’을 만든 덕 케니가 ‘스포일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여러 유명 영화들의 결말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당시엔 영화를 감상하며 느낄 긴장감을 줄여주려는 의도로 쓴 글이었다. 그럼에도 이 글은 논란이 됐다. 이미 1960년에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 개봉 이후 감독인 히치콕이 지금으로 비유하면 ‘스포일러 자제’를 부탁할 정도로 관객들에게 내용을 미리 알리지 말라고 부탁하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다. 스포일러라는 표현이 있기 전부터 작품을 미리 본 사람이 안 본 사람을 골탕먹이는 일은 흔했던 것이다.

국내에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며 영화가 끝나는 <유주얼 서스펙트>가 개봉한 1995년 무렵 당시 관람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던 관객들에게 이미 영화를 본 관객이 “○○가 범인”이라며 소리쳤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반전 결말로 유명한 또 다른 영화 <식스 센스> 역시 가장 민감한 지점의 내용이 미리 알려지면서 미처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의 공분을 산 예가 있다. 마블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역시 스포일러 문제를 두고 관객들 간의 갈등이 벌어졌던 대표적인 영화다.

현재도 어느 정도가 스포일러에 해당하는지는 명확한 판단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몇명 이상의 관객이 봤거나 또는 개봉 이후 얼마나 지나야 핵심 내용에 관해 언급할 수 있는지, 또 그렇다면 내용상 어느 지점까지를 화제로 올려도 되는지를 따지기 어렵다. 예를 들어 1886년 출간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에 나오는 지킬과 하이드는 지금에 와선 한 인물이 가진 두가지 인격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작에선 범죄를 일삼는 하이드를 쫓는 과정을 지나 결말부에 이르러 두 인격이 사실 한 인물 속에 공존한다는 반전이 나온다. 이미 너무나 유명해진 반전은 아예 스포일러 여부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작사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도

직업상 본인이 작중 내용을 까발리는 스포일러 역할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평론가들은 스포일러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지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선 리뷰 또는 평론·비평 등 어떤 형식의 글이든 이미 나온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작품을 감상하기 전까지는 어떤 내용도 사전에 알고 싶지 않은 관객·독자라면 아예 모든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랜선을 뽑는’ 길밖에 없다는 얘기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물론 원론적으로 작품의 핵심 내용, 특히 반전이 키포인트가 된 작품이라면 리뷰가 평론에서 스포일러를 알아서 자제하지만, 실제로 평론가의 글을 찾아 읽는 독자라면 오히려 작품 내용이 나오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다 깊게 들어가는 비평이라면 필연적으로 상세한 내용까지 다뤄야 하므로 이런 글에 대해서도 스포일러를 금지하는 원칙이 적용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처럼 스포일러 여부가 오히려 제작사의 마케팅 기법과 비슷하게 활용되는 모습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특히 히어로들이 출연하는 마블의 영화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양상이 팬들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정형화되고 있고, 실제로 영화 개봉 전부터 출연 배우의 인터뷰나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핵심 지점을 유추할 수 있는 ‘떡밥’을 뿌리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피터 파커 역으로 분한 배우 톰 홀랜드는 개봉 전 스파이더맨 시리즈 전작에 나온 배우 토비 맥과이어의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아예 ‘스포이더맨(스포일러+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스포일러에 관한 과도한 금지나 자제 요구는 제작사 입장에서 평론가나 기자의 글을 통해 혹평이 나오는 것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재갈 물리기’ 기능을 할 여지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다른 관객의 감상을 방해하는 고의적 스포일러는 애당초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문제이고, 작품을 본 관객끼리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며 “작품 내용이 언급되는 글의 제목이나 서두에 ‘스포일러 주의’라고 알리는 것은 이미 기본적인 매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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