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모도바르의 ‘패러렐 마더스’···핏줄의 의미

백승찬 기자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뒤바뀐 아이’라는 소재는 숱한 설화, 동화, 소설, 드라마에서 활용됐다. 실수, 계략 혹은 운명에 의해 출생 직후 뒤바뀐 아이가 원래 속하지 않았던 가문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 그려낸다. 인간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환경인가 태생인가 하는 문제도 종종 다뤄진다.

31일 개봉한 영화 <패러렐 마더스>도 뒤바뀐 아이를 소재로 하되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스페인 영화를 대표하는 명장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아이보다는 두 엄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핏줄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통해 미시사와 거시사를 연결한다. 두 엄마의 이야기가 프랑코 정권기의 상처와 신원으로까지 이어진다.

사진작가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는 아내가 있는 법의학자 아르투로(이스라엘 엘레할데)와의 사이에서 임신한 뒤 홀로 아이를 키우려고 결심한다. 야니스는 병원에서 어린 산모 아나(밀레나 스밋)와 만나 친분을 나눈다.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아나 역시 홀로 양육을 감당할 처지다. 1년쯤 뒤 아르투로가 야니스를 찾아와 아이를 보지만 아무래도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말한다. 야니스는 아르투로에게 화를 내지만 본인 역시 이상한 생각에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자신이 아이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연히 아나와 재회한 야니스는 아나에게 보모 일을 부탁한다. 그 사이 아나의 아이는 유아 돌연사로 사망한 상태였다. 야니스는 몰래 아나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고, 병원에서 자신과 아나의 아이가 바뀌었음을 알아낸다. 아이와 정이 든 야니스는 좀처럼 아나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기존 알모도바르 영화 속 여성들처럼 <패러렐 마더스>의 여성들도 주체적이고 당당하다. 야니스와 아나의 아버지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야니스의 어머니, 할머니 모두 싱글맘이었던 것으로 설정됐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역할을 하는 남성은 아르투로 뿐이다.

이 영화에는 유전자 검사를 위해 구강에 봉을 넣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야니스와 아나가 딸을 확인하기 위해 하고, 야니스의 고향인 시골 마을 주민들도 유전자를 검사한다. 이는 프랑코 정권 시기 학살된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독재자의 하수인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주민을 잡아가 학살한 후 구덩이에 한꺼번에 파묻었다. 주민들은 가족, 친구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채 반세기 이상을 살아야 했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기간 중 실종된 민간인은 11만4000여명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유해를 수습해 신원을 확인한 것은 약 1만90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줄곧 서로 이해하던 야니스와 아나는 유해 발굴 문제를 두고 처음 충돌한다. 아나가 과거를 파헤치는데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자 야니스는 “이대로라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고 소리친다. 결국 아나 역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인간들의 내밀한 관계와 격렬한 감정을 주로 다뤄왔던 알모도바르가 드물게 역사 문제를 언급한 사례다.

알모도바르와 크루즈의 여덟 번째 협업작이다. 크루즈는 이 영화로 지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15세 관람가.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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