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중심에 있는 그들, 한류의 중심이 된다

이혜인·고희진 기자

밀레니얼 세대, 달라진 한류 공식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에 사는 다르다네 루스타즈(21)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광팬’이다. 그녀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과 갓세븐(GOT7)을 제일 좋아한다. 한국 아이돌 그룹이 너무 좋아서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그녀는 친구들과 메신저를 할 때 “anyong(안녕)” “jaljayo(잘자요)” 같은 간단한 인사말들을 한국어로 주고받는다.

한국에서 7900㎞나 떨어진 도시에 살면서 한국인 친구는 한 명도 없던 그녀가 케이팝(K-pop)과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신기하지만, 잘 살펴보면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녀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체크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케이팝 콘텐츠들이 넘쳐났다. 루스타즈는 “3년 전쯤에 친구 한 명이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는데 댄스 스타일이 너무 좋아서 아이돌 그룹 뮤직비디오를 유튜브로 더 찾아보면서 케이팝에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팬들이 만든 페이스북의 케이팝 팬(fan) 페이지들에 가입하니 한국 뉴스와 거의 같은 속도로 올라오는 케이팝 관련 영문 뉴스들을 볼 수 있었다. 루스타즈는 친구들과 더 친밀하게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페이스북에 비공개의 가입제 팬 페이지까지 만들었다. 100여명의 회원이 케이팝 뉴스를 공유하고, 댓글로 실시간 감상을 나눈다. 루스타즈는 “케이팝을 일단 좋아하게 되면 아티스트에 대해 소통하고, 토론하고, 정보를 더 얻고 싶어지는데 SNS는 그러기에 가장 좋은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사이 SNS는 한류의 전초기지가 됐다. 2010년 원더걸스와 같은 인기 아이돌 그룹도 해외 진출을 하려면 거창한 ‘해외 진출’ 선언을 한 뒤 최소 1년은 그 나라에서만 활동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후반 출생)에게는 마치 공기와 같은 SNS가 세계 어디에나 케이팝 콘텐츠들을 실어 나른다. ‘SNS 중심에 있는 자’가 뉴욕의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것과 같은 시대가 된 것이다.

■ SNS 발판 삼는 콘텐츠 제작사들

최근 미국 3대 음악시상식 중 하나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s)’에 서면서 세계적 인기를 확인한 방탄소년단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활발한 SNS 사용이 꼽힌다. 방탄소년단 이전에도 국내 엔터테인먼트사들은 SNS를 케이팝 콘텐츠 유통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SM·JYP·YG 엔터테인먼트 등 3대 기획사는 2008~2009년 사이에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공식 페이지를 개설했다. 처음에는 해외 팬들에게 아티스트들의 공식 활동 소식을 알리고 뮤직비디오 등의 영상을 유통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SNS를 통해 모이는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해서 콘텐츠 유통형식과 경로를 더욱 세분화해 정한다. YG 관계자는 “각각의 아티스트가 활용하기 적합한 플랫폼이 무엇인지를 데이터 분석으로 검토한다”며 “좋은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기획단계부터 각각의 플랫폼 특성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YG는 2012년에 소속 연예인 지드래곤의 앨범 발매를 앞두고 열린 축하파티와 인터뷰를 네이버 브이라이브(V-Live)를 통해 생중계하며 앨범 발매 ‘카운트다운’ 행사를 했다. 이 같은 ‘카운트다운’ 행사는 지금은 앨범 발매 전 필수적인 홍보 과정으로 자리잡았다.

유튜브에서 한국·중국·대만 홍콩의 음악 파트너십을 총괄하는 이선정 상무는 “한국 가수들은 영상 소개를 다국어로 하는 등 해외 팬들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활용하는 편”이라며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 영상이 업로드되는 유튜브 ibighit 채널의 경우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총 시청시간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2012년과 2017년 콘텐츠 시청시간 증가 정도를 자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시청시간이 브라질·멕시코에선 각각 6배, 3배 이상 증가했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에서는 각각 8배, 7배, 6배 이상 증가했다.

SNS에서 해외 케이팝 팬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해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그룹도 있다. 핑클, 젝스키스, 카라 등 인기 그룹들을 배출한 DSP미디어의 혼성 그룹 카드(K.A.R.D)는 한국에서 정식 데뷔하기 전 해외에서 먼저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지난 7월에 정식 데뷔했으나 그 이전에 미국과 캐나다 등 5개 도시에서 공연을 가졌다. DSP미디어 측은 “유튜브 접속지역을 분석해본 결과 남미, 서유럽 쪽에서 카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케이팝에 대한 현지 팬들의 높은 관심도와 유튜브 콘텐츠의 공유로 인해 해외에서 먼저 인기를 얻으면서 해외 진출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카드의 노래 ‘오나나’ ‘돈리콜(Don’t recall)’ 등은 국내에선 익숙하지 않지만 해외 팬들에게는 인기 있는 ‘뭄바톤’ 장르의 음악이다. DSP미디어는 카드의 춤·노래 영상이 남미 지역 팬들의 SNS에서 가장 많이 공유되는 것을 SNS 데이터 분석을 통해 파악한 뒤 뮤직비디오에 라틴어·포르투갈어 자막 서비스를 달아 제공하고 있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혼성그룹 카드(K.A.R.D).  DSP미디어 제공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혼성그룹 카드(K.A.R.D). DSP미디어 제공

■ SNS에 최적화된 콘텐츠

CJ E&M과 같은 콘텐츠 사업자들은 이미 3~4년 전부터 변화하는 뉴미디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CJ E&M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1인 크리에이터들과 제휴해 이들의 마케팅과 콘텐츠 유통 등을 지원하고 수입을 나누는 MCN(Multi-Channel Networks·다중 채널 네트워크) 사업을 국내 최초로 2013년에 시작했다. 또 1인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를 방송하는 인터넷 방송 ‘다이아 티비(DIA TV)’를 2015년 출시했다. 다수의 케이블 채널을 보유하고 방송 제작을 해온 CJ E&M에서 향후 콘텐츠 제작과 유통 방식이 SNS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할 것으로 본 것이다.

CJ E&M의 온스타일 채널에서는 디지털 콘텐츠만을 만드는 디지털 스튜디오를 올해 만들었다. 이들은 콘텐츠 유통에 있어서 뉴미디어는 더 이상 서브 채널이 아니라 메인 채널로 기능한다고 보고 SNS를 통한 유저의 콘텐츠 시청시간, 체류시간, 노출시점 등을 분석해 콘텐츠를 만든다. CJ E&M MCN글로벌팀 이진희 팀장은 “뉴미디어는 영어권·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지배적인 홍보 미디어로 자리잡았으며 베트남·태국·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권에서는 전통 미디어 이상의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SNS에 최적화된 콘텐츠는 그저 만들어 팔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과 기호, 콘텐츠 소비방식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뉴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에 대해서 반응하는 정도는 14~29세에서 가장 활동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은 SNS를 시청의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강진숙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등이 쓴 ‘인터넷 팬덤 문화의 생산과 공유에 대한 연구’ 글에서는 “외국 영상물의 감상이 개인적 취미를 넘어 집단적 팬 활동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해외팬들이 스스로 관심 영상물에 자막을 만들어서 다는 ‘팬자막(fansubs)’ 현상을 분석했다. “자막 제작자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 공유하며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며 이를 새로운 세대가 형성한 팬덤 문화의 동력으로 봤다.

밀레니얼 세대는 콘텐츠의 상호성, 참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같은 기호를 잘 읽어내야만 한류의 물결에 올라탈 수 있다. 최근 출간된 <This is 방탄 DNA>(독서광)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성공요인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상호성에 대한 욕구를 잘 짚어낸 SNS 마케팅을 꼽았다. 방탄소년단은 기획사가 정해주는 대로 콘텐츠를 만들지 않았고, 밥 먹는 모습부터 방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까지 팬들이 원하는 모습을 적절한 때에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저자인 저널리스트 김성철씨는 “데뷔 전부터 모든 멤버들이 또래들처럼 SNS로 본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일상을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며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소통은 철저히 상호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J E&M 관계자는 “모바일·SNS 플랫폼이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주요 유통 채널이 된 만큼 이에 맞춰 드라마와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면서 “내년이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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