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뮤지션으로서 느끼는 고립감 있지만, 내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최민지 기자
데뷔 9년차인 래퍼 탐쓴(본명 박정빈)이 지난달 16일 대구 대명동의 작업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나고 자란 대구에서 활동하며 지역색이 담긴 음악을 만들어왔다. 문재원 기자

데뷔 9년차인 래퍼 탐쓴(본명 박정빈)이 지난달 16일 대구 대명동의 작업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나고 자란 대구에서 활동하며 지역색이 담긴 음악을 만들어왔다. 문재원 기자

음악은 흐른다. 경계는 없다. 한국의 음악이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외려 단단한 것은 내부의 경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이미 아득한데, 문화 인프라의 격차는 한층 현격하다.

전국의 문화시설 10개 중 4개는 수도권에 있다. 매년 열리는 공연의 절반 이상은 서울에서 한다. 음악을 하기 위해 상경했다는 이야기는 비수도권 출신 뮤지션들의 흔한 사연이다. 어떤 뮤지션들은 비수도권에 남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음악에 임하는 진정성이나 실력을 의심받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하게, 즐겁게 음악하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나고 자란 고향의 이야기를 곡에 담고, 연간 주행거리 5만km를 채우며 전국의 관객을 만난다. 경향신문 신년 기획 ‘서울 밖 뮤지션들’에서는 K팝이 위세를 떨치는 2023년 현재 비수도권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을 소개하고 로컬 인디 신을 들여다본다. 첫 회는 ‘대구광역시-힙합’ 편이다.


①‘대구 대표’ 래퍼 탐쓴

새해를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저녁, 대구 남구 대명동의 인디 음악 공연장인 ‘클럽 헤비’ 안은 모처럼 열기로 가득찼다. 대구 언더그라운드 힙합 공연인 ‘랩 다이브(RAP DIVE) VOL.3’의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2020년 시작돼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이 공연에서는 호스트인 탐쓴을 비롯해 코튼마우스, 시준, 레이쿠, 드리머 등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래퍼가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났다. 베테랑 래퍼 마이노스, 딥플로우도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대구 힙합의 부흥과 로컬 기반 래퍼들이 자신의 음악을 선보일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인 공연의 기획자는 래퍼 탐쓴(30·본명 박정빈)이다. 힙합과 홍대가 동의어처럼 받아들여질만큼 힙합 뮤지션의 활동 무대가 한 곳에 집중된 가운데 탐쓴은 나고 자란 대구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를 지난달 16일 대구 대명동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3년 만의 단독 콘서트를 서울 홍대에서 열고 돌아온 그는 “즐겁기도 하고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탐쓴은 올해로 활동 9년차를 맞은 베테랑 래퍼다. 어린 시절 미국 래퍼 에미넴의 노래를 듣고 힙합에 빠진 그는 2015년 EP 앨범 ‘블론드’로 데뷔했다. 지난해 7월 15곡을 담아 발매한 4집 정규앨범 ‘코리안 셰프’을 비롯해 이미 수십 장의 앨범을 냈다.

래퍼 탐쓴이 지난해 12월 서울 홍대의 한 클럽에서 연 3년 만의 단독 콘서트에서 랩을 하고 있다. 탐쓴 제공

래퍼 탐쓴이 지난해 12월 서울 홍대의 한 클럽에서 연 3년 만의 단독 콘서트에서 랩을 하고 있다. 탐쓴 제공

탐쓴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대구’라는 지역색이다. 그는 데뷔 이래 ‘053’, ‘다다랜드’, ‘동성로에 나갈 때까지’ 등 고향 대구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가사 뿐 아니다. 대구 사투리를 그대로 녹인 ‘사투리랩’은 탐쓴 음악이 지닌 개성 중 하나다. 4집 정규 앨범 수록곡인 ‘영’에서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고민을 진한 사투리 가사로 풀어냈다. ‘물론 내도 내가 정답인진 몰라 / 캐도 아리까리 한거대신 확실하이 GO다 (중략) / 영원히 질리 읍데이 이카믄 / 내 직함은 MC요 053의 주역’

탐쓴이 ‘대구 대표’라는 타이틀을 처음부터 반긴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싫었어요. 동성로에 가도 아무도 저 모르잖아요(웃음). 그런데 (존경하는 래퍼이자 같은 대구 출신인) MC 메타, 마이노스 형이 저에게 ‘네가 대구에 남아 음악한다는 것만으로도 대구 대표라 할 수 있다’고 해줬어요. 그랬더니 제 마음도 바뀌더라고요. 스스로를 멋없게 얘기하지 말자고요. 그때부터 대구에 관한 곡도 적극적으로 쓰게 됐죠.”

그의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탐쓴은 2020년 가수 아이유가 부른 엠넷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랜드’ 주제곡 ‘인투 디 아이랜드’ 작사에 참여하며 작사가로도 데뷔했다. 그가 대구 생활을 소재로 만든 싱글 ‘다다랜드’(2020)를 눈여겨 본 대형 소속사가 협업을 제안했다.

탐쓴이 지난해 7월 발매한 4번째 정규 앨범 ‘코리안 셰프’. 탐쓴 제공

탐쓴이 지난해 7월 발매한 4번째 정규 앨범 ‘코리안 셰프’. 탐쓴 제공

탐쓴의 어린 시절 활발했던 대구 인디 힙합 신의 규모는 차츰 줄고 있다. “제가 어릴 땐 랩다이브 같은 시리즈 공연이 많았어요. ‘오빠들 보자’면서 공연을 보러오는 여고생 팬들도 많았고요. 제가 군대 간 사이에 이런 공연들이 사라졌더라고요. 다들 서울로 떠난 거죠.”

뮤지션들이라고 수도권 쏠림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음악, 특히 힙합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는 인식은 커지기만 했다. 지난해 1월 발매한 싱글 ‘역전포차’에는 이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겼다. ‘대한민국 진짜 지방시는 죽나 / 그거 요새 메이커 이름이다 카더라.’

탐쓴이라고 상경 생각을 안해 본 것은 아니다. “홍대에서 술만 마셔도 인맥이 생긴다”고 할 만큼 서울의 풍부한 인적·물적 인프라는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탐쓴은 음악을 위해 대구에 남았다. 그는 “대구 본집에 살면 작업에 드는 비용이 절반은 줄어든다. 그 돈으로 앨범을 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신 서울에 한 달에 두 번씩은 간다. 홍대의 다른 뮤지션들과 만나 랩을 하고 교류하며 실력을 키웠다. 동료 래퍼들과 만나며 ‘영적 교감’도 한다. 음반 작업 환경이 디지털화 되면서 기술적으로 어디서든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대구에 남게 된 이유가 됐다.

뮤지션으로서 비수도권에 있다는 것은 때론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교류할 수 있는 동료들이 적어 고립감을 느끼는 반면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그는 “서울의 과포화된 음악가들 사이에 껴서 인맥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에 고민하기보다 순수하고 유유자적하게 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래퍼 탐쓴이 지난 16일 대구 남구 대명동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래퍼 탐쓴이 지난 16일 대구 남구 대명동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탐쓴은 이제 누가 뭐래도 대구 힙합신의 중심이다. 1~2세대 래퍼들이 상경하며 생긴 빈 자리는 이제 탐쓴이 채웠다. 래퍼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랩을 가르치고, 최근에는 K2 공군부대에서 랩 강의를 하기도 했다. 2020년에 시작한 랩 다이브도 로컬 힙합신을 다지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요즘 새로 랩을 시작하는 친구들은 주로 <쇼미더머니> 지원영상으로 데뷔를 하죠. 어쩔 수 없는 변화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갖춰진 무대에 서고 관객과 부대끼는 경험을 했으면 해서 만들었어요.”

탐쓴은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문화를 위한지는 모르겠고 저를 위한 것”이라며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신이 없으면 저도 없는 거잖아요. 돈 안 된다고 아무도 안하면 제가 설 무대도 없어지고 ‘대구에 힙합 없구나’ 하면서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오지도 않을 거고요. 이 터전을 가꿀 유일한 사람이 나라면 해야죠. 뮤지션으로 살려면 내가 뛰어놀 공간이 필요하니까요.”

■대구 로컬 음악 신의 중심 ‘클럽 헤비’

대구는 비수도권에서 로컬 음악 신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래퍼 탐쓴 외에도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은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열정적인 뮤지션과 오랜 역사의 공연장 등 대구 인디 음악계는 끊임없는 협업을 통해 지역 신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것은 역시 록이다. 펑크 록 밴드인 극렬은 2006년 결성 이후 17년째 활동 중이다. 2013년 데뷔한 또다른 펑크 록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은 국내 유수의 페스티벌은 물론 해외 투어까지 한 실력파다. 2017년 결성한 밴드 이글루를 비롯해 혼즈, 신도시, 전복들, 라이브오, 심상명, 오늘하루, 폴립 등 많은 뮤지션들이 대구에 터를 잡고 있다. 지난해 JTBC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2’에 출연해 주목받은 가수 윤성은 대구 기반 하드록 밴드 ‘아프리카’의 보컬이다.

대구음악창작소에 따르면 대구에서만 최소 40개 팀 이상의 뮤지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북 지역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약 100개 팀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음악창작소 장정호 팀장은 “비수도권 지역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고 말했다.

신의 규모가 큰만큼 전문 매체가 따로 있을 정도다. 2019년 창간한 독립 웹진 ‘빅나인고고클럽’은 대구 지역의 뮤지션이나 예술인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있다. ‘빅나인’은 대구를 뜻한다.

대구에 로컬 음악 신이 형성된 배경 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것은 ‘클럽 헤비’에 대한 평가다. 대구 대명동에 자리한 인디 전문 공연장 클럽 헤비를 빼놓고 대구 로컬 음악 신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클럽 헤비는 1995년 문을 연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구 로컬 음악 신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대구 힙합의 역사는 클럽 헤비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24년의 역사를 지닌 힙합 공연 ‘힙합 트레인’도 클럽 헤비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15일 오후 찾은 클럽 헤비는 아담한 규모의 공연장이었다. 약 148.76㎡(45평) 규모로 스탠딩 200석인 클럽은 긴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듯 했다. 공연장 곳곳에는 그간 클럽 헤비를 거쳐간 여러 뮤지션들과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대구 로컬 뮤지션들의 음반은 카운터 근처 한 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날 클럽 헤비에서는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밴드 혼즈의 첫 정규 앨범 ‘로맨스’ 음감회가 열렸다. 인디 음악 라디오 방송 ‘랏밴뮤’를 통해 중계된 이날 음감회에서 혼즈는 ‘갬블러’ 등 5개의 신곡을 약 50명의 팬들에게 선보였다. 혼즈에서 작사·작곡과 보컬을 맡고 있는 홍시은씨(30)는 “인생 첫 무대가 클럽 헤비였다”며 “공연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한 곳도 헤비”라고 말했다.

‘헤비 누나’라 불리는 클럽 헤비의 신해원 대표는 록 마니아로 공연을 보러 다니다 직접 클럽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대구 로컬 음악 신의 산증인이기도 한 그는 대구 뮤지션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일까요? 대구 뮤지션들에겐 뚝심이 있어요. 한 번 하면 끝까지 밀고 가죠. 관객들의 취향이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죠.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죠.”(웃음)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4인조 밴드 혼즈가 지난달 15일 대구 대명동의 클럽 헤비에서 새 앨범의 음감회를 열고 있다. 또 다른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멤버 배미나씨가 진행을 맡았다. 최민지 기자 사진 크게보기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4인조 밴드 혼즈가 지난달 15일 대구 대명동의 클럽 헤비에서 새 앨범의 음감회를 열고 있다. 또 다른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멤버 배미나씨가 진행을 맡았다. 최민지 기자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