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국민車로 등극한 영국의 영웅 ‘오스틴 세븐’

안광호 기자

영국은 모터스포츠 강국으로 꼽힌다. 모터스포츠의 선진 문화가 공고한 유럽의 나라 중에서도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아주 오래 전에는 어땠을까. 19세기 말 미국과 독일 등에서 증기기관차를 넘어 가솔린 엔진의 자동차들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때 아직도 영국의 도로 위에는 자동차가 아닌 마차가 교통수단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자동차 후진국이나 마찬가지였던 영국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 대중화’라는 큰 선물을 가져다 준 차가 있다. 바로 오스틴 세븐(Austin 7)이다.

1905년 오스틴 설립, 정비소·렌터카 등 현대적 기법 최초 도입 = 오스틴 세븐은 당시 영국의 일반인들은 꿈꿀 수 없던 ‘사치품’ 자동차를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생활용품’으로 바꿔놓은 차다. 값싸고 실용적이며, 조그마한 이 차는 영국의 승용차 시대를 열었고 나아가 전 세계 자동차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1922년 대중에 공개된 오스틴 세븐 모델.

1922년 대중에 공개된 오스틴 세븐 모델.

영국 태생의 오스틴 설립자 허버트 오스틴(Herbert Austin, 1866~1941)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호주에서 사업을 하던 삼촌을 따라 영국을 떠났다. 호주에서는 자동차 부품을 포함한 기계류를 생산하던 울슬리(Wolseley)라는 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했다. 1889년 울슬리가 영국으로 공장을 이전하자 오스틴은 영국으로 되돌아왔다.

1923년형 오스틴 세븐 투어러.

1923년형 오스틴 세븐 투어러.

이곳에서 부품 불량률을 낮추는 등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초고속 승진을 해 최고책임자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때 오스틴은 유럽과 미국에서 자동차 열풍이 거세다는 사실을 알고 자동차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895년 삼륜의 2인승 자동차를 첫 제작한 그는 1900년엔 1기통의 4륜자동차를 만들어 전국경주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즈음 울슬리는 다른 회사에 경영권이 넘어갔고 새로운 오너와 불화를 겪었던 오스틴은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포드의 모델 T. 포드가 만든 세계 최초의 대량 생산 자동차로, 저렴한 가격과 내구성으로 자동차의 대중화 트렌드를 이끌었다.

포드의 모델 T. 포드가 만든 세계 최초의 대량 생산 자동차로, 저렴한 가격과 내구성으로 자동차의 대중화 트렌드를 이끌었다.

오스틴은 1905년 영국 롱브릿지에 자신의 공장 ‘오스틴모터컴퍼니(Austin Motor Co. Ltd.)’를 세웠다. 그의 작품으로는 직렬 4기통 엔진을 갖추고 출력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텐(Ten), 트웬티(Twenty), 서티(Thirty) 등이 있었다. 특히 주요 도시에 최초의 쇼룸과 정비소, 렌터카 시스템 등을 만들어 통합서비스를 하는 선진기법도 적용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과 마찬가지로 대포와 군용차 생산에 집중하면서 사세를 키워나갔다. 하지만 전쟁 이후 불경기가 겹쳤고 새롭게 시장 판로를 개척하려던 트럭과 트랙터의 판매는 저조했다. 회사의 위기였다.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신차 출시가 유일한 해법이었다.

오스틴 트웰브는 오스틴이 세븐 전에 내놓은 싸고 실용적인 또다른 소형차 모델이다. 사진은 1928년형 오스틴 트웰브 쿠페.<br /><출처: (CC)Malcolma at Wikipedia.org>

오스틴 트웰브는 오스틴이 세븐 전에 내놓은 싸고 실용적인 또다른 소형차 모델이다. 사진은 1928년형 오스틴 트웰브 쿠페.
<출처: (CC)Malcolma at Wikipedia.org>

포드 ’모델 T‘ 경쟁모델 구상, 독일·미국 등에서도 조립 = 당시 여전히 자동차는 서민들에게 사치품이었다. 이들에게는 주로 모터사이클이나 사이드카(이륜차 옆에 장착하는 차량)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오스틴은 싸고 실용적이며 단단한 소형차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특히 미국의 도로를 점령하며 당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포드 ‘모델 T’에 대적할만한 걸작이 필요했다. 1922년 기존 모델에 쓰이던 직렬 4기통에 최고출력 12마력짜리 엔진을 사용한 트웰브(Twelve)를 내놓았다.

세븐(Seven) 역시 트웰브와 같은 해인 1922년 세상에 공개되었다. 696㏄ 직렬 4기통의 세븐은 이듬해 747㏄로 업그레이드했다. 4기통 수냉식 엔진에 4륜 브레이크, 그리고 지붕과 유리가 있었다. 내구성도 튼튼했다. 값이 싸고 실용적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출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에서는 ‘100만인의 차’라는 호평을 내놓기도 했다. 세븐의 출시는 모터사이클이나 사이드카의 인기를 위협했고 결국 세븐의 등장으로 이들은 얼마못가 시장에서 점차 모습을 감췄다.

오스틴 세븐은 쉽게 조립이 가능하다는 특성으로, 해외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출시되며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프랑스의 로젠가르트 LR2. <출처: (CC)Croquant at wikipedia.org>

오스틴 세븐은 쉽게 조립이 가능하다는 특성으로, 해외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출시되며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프랑스의 로젠가르트 LR2. <출처: (CC)Croquant at wikipedia.org>

세븐은 특히 포드의 T모델처럼 구조가 단순해 정비가 쉬웠다. 이 덕분에 영국을 벗어나 타국에서도 쉽게 조립이 가능했다. 세븐은 프랑스에서는 ‘로젠가르트(Rosengart)’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는 ‘BMW 딕시’, 미국에서는 ‘벤텀(Bantam)’, 일본에서는 ‘닷선(Datsun)’으로 팔리기 시작하며 이른바 대박을 쳤다.

BMW 딕시. <출처: (CC)Thomas doerfer at wikipedia.org>

BMW 딕시. <출처: (CC)Thomas doerfer at wikipedia.org>

영국 수출물량의 절반 차지, 1939년까지 29만대 판매 = 세븐은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민수용차 생산이 중단된 1939년까지 총 29만여대가 팔리며 영국의 국민차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형차로 등극했다. (이 기간 중 영국에서 수출된 자동차 물량의 절반 가량이 세븐이었다고 한다.) 세븐은 오스틴을 갑부에 자리에 올려놓게 되는데, 세븐을 1대 생산할 때마다 전 세계에서 2파운드의 로열티가 들어왔다고 한다.

재밌는 사실은 세븐의 엔진 설계를 20세도 안된 젊은이가 맡았다는 점이다. 오스틴은 회사의 경영위기 파해법으로 세븐을 구상할 때 18세 청년 스탠리 엣지(Stanley Edge)의 도움을 받았다. 오스틴은 자신의 시골집에서 이 청년과 당구대를 작업대 삼아 세븐을 개발했다고 한다. 또한 이 엔진의 마력은 7마력이 아닌 10마력에 달했으며, 세븐이라는 이름도 당시 엔진 출력으로 부과되던 자동차 세금제도에 따라 7파운드의 세금을 내서 붙여졌다고 한다.

오스틴모터컴퍼니는 1952년 모리스의 모회사인 너필드와 합병, BMC로 재탄생한 후, 후에 ‘미니’로 불리게 되는 새로운 디자인의 소형차를 출시하는데, 당시 출시명이 ‘오스틴 세븐’이었다. <출처: BMW코리아>

오스틴모터컴퍼니는 1952년 모리스의 모회사인 너필드와 합병, BMC로 재탄생한 후, 후에 ‘미니’로 불리게 되는 새로운 디자인의 소형차를 출시하는데, 당시 출시명이 ‘오스틴 세븐’이었다. <출처: BMW코리아>

그렇다고 세븐이 완벽한 자동차라고 하기에는 단점도 많았다. 앞·뒤 차축을 묶는 프레임이 없다보니 진동이 심했고 회전시에도 차가 쉽게 기우뚱거렸다. 또한 무거운 클러치 페달로 조작이 쉽지 않은데다 진동의 영향으로 브레이크 케이블이 늘어져 제동이 어려웠다.

아무튼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러 매력적인 요소를 갖춘 세븐은 전 세계적으로 모델 T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특히 경주에도 곧잘 출전했는데, 당시엔 많은 레이서들이 구조가 간단한 세븐을 쉽게 개조했다고 한다. 오스틴이라는 브랜드를 영국의 대표 메이커로 알린 세븐의 개발자 오스틴은 1939년 세븐의 생산이 중단된 이후인 1941년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오스틴 세븐(1923) 제원

엔진 형식 : 0.7ℓ 직렬 4기통 / 배기량 : 747㏄ / 최고속도 : 84㎞/h / 최대출력 : 10.5hp·2400rpm / 전장 X 폭 : 4115㎜ X 1600㎜ / 휠베이스 : 1905㎜ / 총 중량 : 432㎏ 디자이너 : 허버트 오스틴·스탠리 엣지 / 생산년도 : 1923~1939년 / 총 생산대수 : 29만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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