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의 일상과 호사

잘~잤다! 나무 위에서

정우성

2박3일의 스웨덴, 한 대의 전기차

미러큐브는 외관의 모든 면이 거울로 된 방이다. 숲을 보호하기 위해 한 그루의 나무도 베어내지 않고 지은 트리 호텔의 풍경.

미러큐브는 외관의 모든 면이 거울로 된 방이다. 숲을 보호하기 위해 한 그루의 나무도 베어내지 않고 지은 트리 호텔의 풍경.

종일 운전하다 마침내 호텔에 도착했는데 좀 묘한 분위기였다. 영화 <미드소마>의 배경에 겨울을 섞으면 이런 느낌일까. 사방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빛나는 침엽수림이었다. 땅에는 얼음이 두꺼워서 아장아장 걷지 않으면 아찔하게 미끄러졌다. 유난히 해가 빨리 떨어지는 숲속에 조명조차 많지 않아 갑자기 암흑 같기도 했다. 한없이 자연에 가까워서 더 낯설었던 스웨덴에서의 첫날 밤, 호텔 관계자가 웃으며 말했다.

“몇몇 방들은 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올라갈 수 없어요. 저희가 드린 더플백에 꼭 필요한 짐만 따로 챙겨주시겠어요?”

피곤해 죽겠는데 가방을 열어서 짐을 다시 싸야 한다고? 방인데 올라가야 한다고? 캐리어는 못 올라간다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룻밤에 제공되는 물의 양은 딱 3ℓ였다. 1.5ℓ 페트병 두 개 분량의 물이 세면대 위에 기다란 링거병처럼 설치돼 있다고 했다. 더 낯선 건 화장실이었다. 변기 커버를 열면 물 대신 종이 필터가 장착돼 있었다. 볼일을 본 후 커버를 덮고 연소 버튼을 누르면 약 600도의 열로 배설물을 소각하는 연소식 화장실이었다. 물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었다.

볼보 순수전기차 EX30

볼보 순수전기차 EX30

씻는 물은 하룻밤에 3ℓ만 허용되고 변기는 ‘화르륵’ 연소 방식
모든 게 자연과 함께인 이곳, 전기차조차 친환경 그 이상

북회귀선에서 남쪽으로 약 60㎞ 떨어진 스웨덴 마을 하라즈. 우리는 트리 호텔(Tree Hotel)에 막 들어선 참이었다. 배정받은 방의 이름은 UFO였다. 정말이지 침엽수림 나무 위에 불시착한 UFO 같았다. 얇고 견고해 보이는 금속 사다리를 타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육중한 나무 해치를 열고 올라가야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캐리어를 들고 방으로 올라가는 건 과연 불가능한 구조. 동그랗고 작은 방에는 다섯 명이 잘 수 있는 침대와 작은 테이블, TV와 플레이스테이션까지 알차게 준비되어 있었다. 샤워실이 없는 대신 약 5분 거리에 있는 사우나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사다리를 내려와 사우나룸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톤이 낮은 방울소리를 들었다. 동행하던 호텔 관계자가 말했다.

“가까이에 순록이 있다는 뜻이에요. 소리를 들어보니 매우 가까이에 있네요. 아마 내일 아침에 나오면 순록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북유럽식 사우나와 오가며 냉욕을 즐길 수 있는 얼음풀장.

북유럽식 사우나와 오가며 냉욕을 즐길 수 있는 얼음풀장.

잠에 들려는 와중에도 방울소리가 도로롱 도로롱 했고, 이른 아침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었더니 예닐곱 마리의 순록 가족과 만날 수 있었다. 귀엽고 신기했지만 전날 저녁에 먹었던 순록 고기가 떠오르기도 했으니…. 북유럽의 순록은 아시아의 소와 비슷하다. 일을 하고 식량이 되고 옷이 되기도 한다.

나무 위에 불시착한 비행체와 같은 UFO방.

나무 위에 불시착한 비행체와 같은 UFO방.

트리 호텔의 모든 방은 나무 위에 있었다. 한 그루의 나무도 베어내지 않고 적어도 4m 이상의 높이에 지었다. 숲과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2010년, 북유럽의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5개의 방을 지은 것이 시작이었다. UFO는 2011년에 지은 작품이고, 지금은 총 8개의 방이 있다. ‘미러큐브’라는 이름의 방은 정육면체의 모든 면이 거울이었다. 거대한 새 둥지처럼 지은 방도 있었다. 미러큐브의 숙박료는 약 80만원. UFO 룸은 약 70만원이었다. 숙박료는 계절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https://treehotel.se/).

스웨덴에서 내내 운전했던 차는 볼보가 상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는 순수전기차 EX30이었다. 지난 11월 최초로 공개했던, 볼보가 만든 가장 작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자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모델이다. 사양에 따라 코어와 울트라로 나뉘는데 보조금을 감안하면 둘 다 4000만원대에 살 수 있다는 게 큰 화제였다. 하지만 이 미래적인 차를 이해하는 데 진짜 필요한 건 볼보와 EX30을 둘러싼 스웨덴의 일상과 문화가 아니었을까. 볼보의 뿌리는 스웨덴에 있으니까, 스웨덴에서의 거의 모든 경험에 EX30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었다. 가장 거대한 화두는 역시 트리 호텔에서 체험한 것 같은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볼보는 EX30을 순수전기차 전환의 분수령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볼보가 만든 자동차 중, 수명주기 내 가장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도록 설계했다. 25%의 재활용 알루미늄과 17%의 재활용 강철, 17%의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적극적으로 썼다. 인테리어도 과감하게 혁신했다. 재활용 데님, 재활용 플라스틱, 아마(flax) 기반 합성 섬유,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니트 소재, 북유럽 숲에서 얻은 바이오 소재와 페트병 소재를 활용해 새롭게 만든 ‘노르디코(Nordico)’까지.

언뜻 보면 그냥 플라스틱과 천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고급스럽다’ 생각해 온 소재인 가죽, 크롬, 원목과는 매우 다른 느낌일 것이다. 누군가는 ‘원가 절감’ 운운할 수도 있지만, 그건 시대를 잘 모르는 사람의 인상평일 것이다. 거대한 자본을 투자해 신소재를 개발하고 더 넓은 범위에 활용하며 널리 알리는 일. 요즘의 자동차 회사들은 친환경 소재 개발의 전선에 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을 향한 시선은 소재를 넘어 감각적인 차원에까지 닿아 있다. EX30의 선루프는 거대하다 못해 지붕 전체가 뚫려 있는 것처럼 광활하다. 빛이 귀한 나라 스웨덴에서도 빛과 따스함을 실내로 들이기 위해 창을 최대한 널찍하게 낸다. 우리가 트리 호텔을 떠나 머물렀던 두 번째 호텔, 악틱 배스(Arctic Bath)의 객실들이 그렇게 지어져 있었다.

스웨덴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악틱 배스의 숙소.

스웨덴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악틱 배스의 숙소.

악틱 배스(https://arcticbath.se/)는 2018년, 스웨덴 하라드 지역 룰레강 위에 지은 호텔이다. 말 그대로 12개의 객실 중 6개의 객실은 강 위에 떠 있다. 천고가 높고 창이 큰 방 안으로 한낮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강으로 이어진 덱이었다. 3월의 룰레강은 두껍게 얼어 있었지만 여름에는 그대로 뛰어들어 수영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숲 쪽 방들은 정말이지 거대한 규모의 통창을 갖춘 복층 구조의 객실이었다. 한쪽으로 숲, 다른 한쪽은 강이 차분하고 압도적인 규모로 시야를 가득 채웠다. 물과 숲과 하늘이 제각각 거대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대자연이었다.

이 호텔에선 스웨덴의 자연환경을 만끽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제공하는데, 이날 체험한 건 냉욕이었다. 동그랗고 작은 규모지만 깊이가 4m나 되고 가장자리가 도톰하게 얼어 있는 얼음풀장과 북유럽식 사우나를 안내에 따라 오가며 즐기는 방식이었다. 사우나에서의 테라피 세션에서 넉넉하게 땀을 빼고 얼음 냉탕에서 5초 정도 머물기를 3회 정도 반복했을 때, 두 번의 환승과 종일 이어진 운전으로 쌓인 여독이 싹 가시고 새로운 하루가 열리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감각. 사우나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14~18도 사이의 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차가움을 넘어 피부가 쭈뼛 서고 근육이 수축하며 누가 뼈까지 마사지하는 것 같은 감각. 심지어 감각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강렬한 몇 초를 지나고 나면 새로운 컨디션을 만날 수 있는 스웨덴식 마법.

해 질 녘과 한밤중, 동틀 무렵엔 그 광활한 하늘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늘이 낼 수 있는 색이 이렇게까지 다채로웠나. EX30의 엠비언트 라이트는 총 다섯 가지. 각각 스웨덴의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웨덴 서쪽 해안 군도의 일몰 즈음(Archipelago), 6~8월의 따뜻한 여름빛(Mid Summer), 환상적인 오로라(Northern Light), 한낮의 침엽수림(Forest Bath)…. 여기에 악틱 배스에서 목격했던 그 다채롭고 깊은 석양빛(Nordic Twilight)까지.

내연기관 시대의 자동차는 국적에 따른 성능 차이가 관전 포인트일 수 있었다. 이제 좀 다른 시대가 열리는 중이다. 상향 평준화된 성능의 전기차 시대. 브랜드의 국적에 따른 초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각자의 뿌리를 깊게 인식하는 문화 콘텐츠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우성의 일상과 호사]잘~잤다! 나무 위에서

▲정우성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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