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포유류 보호 요구하는 수출 장벽…선제적 조치로 넘어야”

이창준 기자

미국, 고래·물개 위협하는 어획 규제…국내 수산업 피해 막을 방안은

130개국에 상응하는 보호 정책 요구
한국, 별도 법안 없이 협상 진행 중
땜질처방 아닌 근본적 대책 필요
시민 92% “생태계 지켜야” 공감대

미국 해양포유류보호법(MMPA)

해양포유류의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을 줄이기 위해 1972년 제정했다. 미국은 2017년 법을 개정해 해양포유류를 보호하지 않는 방법으로 잡은 수산물의 수입을 2023년부터 제한키로 결정, 자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해양포유류를 보호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동등성 평가’를 진행 중이다.


국내 수산물의 대미 수출도 확보하고, 해양포유류 보호도 강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내 수산물의 대미 수출 제한 여부가 판가름날 시점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정부가 내년부터 개정된 수산물 수입 규제 시행규칙을 적용키로 하면서 고래나 물개 등 해양포유류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획득한 수산물은 수입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수산업계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측과 적극적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협상 경과를 비롯해 내부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단순히 수출이 막히는 경제적 피해를 막기 위해 미국 기준에 대한 ‘허들 넘기’식 정책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해양포유류를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미, 수출국에 동등한 조치 요구

미국의 해양포유류보호법(Marine Mammal Protection Act)은 고래 및 돌고래를 비롯해 물개와 물범, 북극곰 등 해양포유류의 부상이나 사망을 줄이기 위해 1972년 제정된 법안이다. 이 법안은 해양포유류의 포획뿐 아니라 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해양포유류의 행동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미국은 2017년 이 법의 하위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미국으로 수산물을 수출하는 모든 국가에도 동일한 보호조치를 이행할 것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대미 수출국은 이에 상응하는 해양포유류 보호 프로그램을 수립, 이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동등성 평가’를 4년마다 받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수산물의 어획 과정에서 다른 해양포유류의 우발적 사망이나 부상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조치가 적용되는 국가는 전 세계 130여개국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조치는 당장 내년 1월 시행된다. 당초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5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코로나 등 영향으로 1년의 유예기간을 더 두기로 했다. 해당 조치가 시행되면 국내 수산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동등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대미 수산물 수출액이 연간 최대 2억3000만달러가량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국내 수산물의 연간 해외 수출액 중 10.4%에 해당하는 액수다.

■ 정부 대응 “공개 어렵다”

정부는 대미 수산물 수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NOAA 측과 성실히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양포유류 보호를 위해 어떤 추가 조치를 취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협상 과정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 말 NOAA에 국내 해양포유류 혼획(어업 활동 중 섞여 포획되는 것) 저감조치 계획 등에 대한 일부 자료 제출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미국 측이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지 몰라서 섣불리 정부 입장을 공개하기 어렵다”며 “다른 국가에서도 (제출 서류 등을) 물어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공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지난해 5월 좌초·표류·불법 포획한 고래류의 위판이나 공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를 개정 시행했는데, 이 같은 내용 일부가 미국 측에 소명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결과는 올해 12월 발표될 것으로 예측된다.

■ 시민사회 “한국도 별도 법안 필요”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미국의 조치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그치지 말고 보다 주체적으로 해양포유류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양포유류 보호를 경제적 관점으로만 접근해 규제를 피하기 위한 땜질식 조치를 시행할 것이 아니라 해양생태계 보호 측면에서 근본적인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정부가 해양포유류 보호를 위한 별도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독 법안을 보유한 미국 외에도 영국이나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이 실효성 있는 해양포유류 보호 조치를 확대해 나가는 것과 달리 국내 해양포유류 보호 조치는 야생생물법·해양생태계법·수산업법·수산자원관리법 등에 파편화된 상태로 담겨 있고, 그마저도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규정이 없거나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 인식 차원에서도 역시 정부가 해양포유류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것으로도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시민환경연구소의 해양포유류 및 해양보호법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1500명 성인 남녀 중 ‘국내 해양포유류 보호가 잘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9.0%에 불과한 반면 46.5%는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응답자 중 ‘국내에서도 별도의 해양포유류보호법이 시행돼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92.3%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응답자 절반이 넘는 50.5%(중복 응답)는 해양포유류를 위협하는 방식의 어업뿐 아니라 수산물 유통까지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박선화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은 “정부 고시 개정안은 혼획으로 잡은 고래의 유통을 허가하는 등 국제사회 기준이나 시민들의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며 “해양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양포유류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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