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인플레이션 (3)

물가와의 전쟁 성공 사례…‘인플레 파이터’의 대명사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이윤주 기자

1970년대 말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서

단숨에 4%P 금리 인상

3년간 긴축 끝에 물가 상승률 10%P 낮춰

[돌아온 인플레이션 ③] 물가와의 전쟁 성공 사례…‘인플레 파이터’의 대명사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40년 만에 가장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체감 중인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코로나 이전까지 크게 6차례의 고물가 상황을 경험했다. 앞선 6차례의 물가상승기를 촉발시킨 원인을 분석해보면 고유가와 공급 부족, 수요 증가, 통화정책, 재정정책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시작된 현재 미국의 일곱 번째 물가상승기는 이 모든 요인이 거의 다 중첩돼 있는 상황이다.

지난 23일 국제금융센터의 ‘미국의 과거 인플레이션 에피소드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6년 7월부터 약 2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돌았다. 1947년 3월에는 물가상승률이 19.7%까지 치솟았다. 2차 대전 종전 후 가격통제가 사라지고, 공급 부족과 이연된 수요가 맞물리면서 물가가 크게 뛰었다. 전쟁 중 급증한 재정적자와 통화량도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됐다. 1950~1951년 한국전쟁 기간에도 1년가량 물가상승률이 5~6%대를 기록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은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정권에나 국민에게나 인기 있는 정책이 아니다. 가파르게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회수하면, 물가는 안정되지만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서민의 삶도 타격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성장을 포기하기 어려운 정권 입장에서 강도 높은 긴축은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물가와의 전쟁’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뚝심 있는’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것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강력한 긴축을 이끌었던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긴축정책이다. 볼커 전 의장은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 금리를 가파르게 끌어올려 지금까지도 ‘인플레 파이터’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그는 2018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오늘 1달러로 살 수 있는 만큼을 내일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통화정책의 근본적인 의무”라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분기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평균 4.8%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경기 호황과 확장적 거시정책 기조는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단초로 작용했다. 당시 닉슨 정부는 다소 높은 물가를 용인하면 낮은 실업률을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확장적 정책을 유지했다. 물가보다 고용을 우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불어닥친 두 번의 석유파동은 미국 경제를 단숨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몰아넣었다. 곧바로 에너지와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다.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고 실업률은 높아졌다. 1973년 4월부터 1982년 10월까지 미국의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대부분 5%를 넘겼고, 1980년 3월에는 최고인 14.8%를 나타냈다.

1979년 8월 연준 의장에 취임한 볼커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그는 1979년 10월6일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4%포인트나 올리는 조치를 단행했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연 18% 가까이 수직상승했다. 주식과 집값이 폭락했고 기업들의 파산이 잇따랐다. 하지만 물가를 잡기에는 그것도 부족했다. 볼커는 1981년 기준금리를 21.5%까지 올렸다.

긴축의 대가는 혹독했지만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볼커의 의지가 강력했다. 기업이 파산해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빚더미에 앉게 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201㎝의 장신이었던 볼커는 늘 권총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위협에 시달렸다.

3년간의 고통스러운 긴축 끝에 점점 반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돈들이 금리를 좇아 은행으로 향했고, 시중 유동성이 줄어드니 물가도 잡히기 시작했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고, 석유 증산이 이뤄지면서 원유 가격이 급락, 2차 오일쇼크가 막을 내린 것도 도움이 됐다. 1980년 3월 14.8%까지 올라갔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2년 4%까지 내려왔다. 볼커는 1987년까지 8년 동안 연준 의장을 지냈다. 후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볼커의 기반을 토대로 미국 경제의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 걸프전쟁과 2008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미국은 또다시 물가상승기를 경험했으나 비교적 짧은 기간에 둔화됐다. 권도현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향후 물가 경로를 전망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현재 여건은 과거 모든 고물가 사례들과 유사성을 갖고 있으며, 상방 위험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며 “결국 총수요를 억제하고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기 위한 강한 통화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그 과정에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는 것이 앞으로 연준의 도전과제가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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