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달러 맞서 수입물가를 방어하라…각국 ‘역환율전쟁’ 속으로

이윤주 기자

경기침체 우려 속 달러 강세 가속

변동성 완화 위해 외환시장 개입

슈퍼 달러 맞서 수입물가를 방어하라…각국 ‘역환율전쟁’ 속으로
역(逆)환율전쟁

수출경쟁력 제고와 이를 통한 경기 부양을 위해 각국이 자국통화 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리는 환율전쟁과 달리, 고물가 시기에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춰 자국 통화 약세를 제한하려는 정책 대응 방향.


‘슈퍼 달러’의 독주가 세계 경제에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 1300원’ ‘달러=유로 패리티(parity·등가)’ ‘달러인덱스 20년 만에 최고치’ 등의 지표가 현재 달러화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물가와 긴축, 그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지는 국면에서 미국 이외 국가에서는 달러 강세로 인한 고환율과 수입물가 상승까지 방어해야 하는 숙제를 겹으로 떠안게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년간 나타났던 환율전쟁과는 반대되는 ‘역환율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고환율과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8일 국제금융센터의 분석을 보면 유로화,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평균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최근 108.072까지 상승해 2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높아졌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인 물가 오름세가 본격화한 데다, 올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월부터 시작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달러화 강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연준이 한 번에 정책(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하면서 미국의 금리가 높아지면서 고금리를 좇아 자금이 이동하고, 경기침체 우려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까지 겹치자 달러화를 찾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달러화 사용 국가에서는 자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입물가가 더 비싸지기 때문에 안 그래도 급등하는 물가를 더 자극할 여지가 커진다. 원자재값 상승에 환율효과까지 겹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커지고, 올해 들어 주요국의 외환시장 개입 조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자료를 공개한 32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11조9000억달러에서 올 5월 말 11조3000억원 규모로 감소한 걸로 나타나는데, 상당 부분 외환시장 개입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선경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홍콩, 싱가포르, 인도, 태국 등 다수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 순매도 개입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부분 환율 변동성을 완화하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1달러=1유로’ 20년 전으로…빚 많은 신흥국, 연쇄 부도 우려

1300원대 원화 약세에도 수출국 경기 둔화 ‘무역수지 최악’
한·미 통화스와프 필요성엔 미 긴축 정책으로 가능성 낮아

유로화 0.9달러까지 하락 전망…그리스 이탈리아 등 충격파
라오스 -25%·터키 -21%…신흥국 통화 가치 5% 이상 하락

슈퍼 달러 맞서 수입물가를 방어하라…각국 ‘역환율전쟁’ 속으로

■ 하반기 원·달러 1300원선 웃돌 듯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8.7원 내린 달러당 1317.4원에 거래를 마쳤다. 1320원선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최근 7거래일 연속 달러당 1300원선 위에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간 달러당 1050~1250원선에서 움직여 왔으나 최근 추세를 크게 이탈해 있다.

보통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수출국의 경기가 둔화하는 조짐이 뚜렷하고 환율 상승 효과까지 겹치면서 수출 경기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최종 상품을 팔더라도 중간재 수입가격이 워낙 높아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또 달러 외에 엔화, 위안화 등 대부분 경쟁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어서 원화만 약세 효과를 누리기도 어렵다. 딱히 수출에도 원화 약세가 득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입 금액은 증가하는데 수출 증가세는 둔화하면서 무역 적자폭은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 무역수지는 103억56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 적자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에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선 위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원화에 불리한 환경으로 올 4분기 평균 달러당 1320원대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환율 방어를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미국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을 때는 위기 국면에서 미국도 돈을 푸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이 긴축을 하면서 스와프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유로존, 전쟁 충격에 분절화 우려

유로화 가치는 20년 전 수준까지 떨어져 달러화와 등가를 뜻하는 ‘패리티’ 수준에 근접했다. 유로존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에너지 공급난이 심각한 상황인 데다, 경기 둔화 우려로 미국처럼 강하게 물가 대응을 하기도 어렵다.

시장에서는 유럽의 동절기 에너지 수급 상황에 따라 유로화당 0.9~0.95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가 지난 11일 노르트스트림1 가동을 중단하면서 천연가스 공급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미국은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금리 인상을 감내할 정도로 경기 회복세가 괜찮은 반면, 유럽은 당장 에너지가 끊기면 전방위적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 천연가스는 유로존 에너지원의 24%를 차지하고, 산업과 가정용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경기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11.79% 절하됐다. 김찬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럽중앙은행(ECB)이 7월부터 금리 인상에 나서고,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경기 하방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유럽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은 보다 빨리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각국마다 경제 상황이 다른데도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를 쓰는 구조적 문제가 유럽의 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 동일한 기준금리를 적용받는데, 각국의 재정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취약한 국가를 중심으로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제금융센터는 “ECB가 11년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서더라도, 유로화 가치를 지지하는 효과는 크지 않고, 국가 간 분절화 우려를 자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70% 수준인 반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비중은 각각 194%, 151%에 달한다.

■ 취약 신흥국, 연쇄 부도 우려

특히 부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신흥국의 경우 국가 부도 도미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달러로 돈을 많이 빌린 정부나 기업의 빚 부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달러화 강세 여파로 지난달 말 기준 다수의 신흥국 통화 가치가 올해 초에 비해 5% 이상 하락했다. 라오스(-25.5%), 터키(-21.4%), 아르헨티나(-17.7%), 이집트(-16.4%) 등 일부 국가는 하락폭이 특히 컸다. 스리랑카는 지난 5월 510억달러(약 67조5750억원) 규모의 국가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졌다. 이들 취약국의 경우 코로나19 발생 이후 취약성이 심화된 데다, 고물가로 정책 여력도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외화 유동성이 부족할 경우 대외지급능력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결국 전 세계가 ‘슈퍼 달러’의 충격을 받고 있지만 적어도 올해까지는 이 같은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게 대체적 전망이다. 미국의 물가가 잡히고, 연준의 금리 인상이 안정되는 시점에야 달러 독주가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미국 달러 강세를 멈출 만한 요인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어서 달러의 고공행진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야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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