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끊기자 심화된 양극화…서민소득만 ‘뒷걸음질’

반기웅 기자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상인들이 TV를 켜놓고 일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상인들이 TV를 켜놓고 일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양극화 속도가 다시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지나면서 고소득층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진 반면 중산층과 서민들의 주머니는 헐거워 졌다. 윤석열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고 투자주도성장을 채택하면서 이는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간 정부는 대기업·고소득층 감세와 긴축재정을 추진하며 이들의 투자로 경기가 살아나는 낙수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한국은행 등 주요기관들은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조정하고 있다. ‘상저하고’가 될 것이라는 경제전망은 어느새 ‘상저하중’ 혹은 ‘상저하저’로 바뀌고 있어 하반기 중산·서민층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질 가능성이 크다.

25일 통계청이 낸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1148만원)은 1년 전보다 6.0% 늘었다. 같은 기간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107만6000원)은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하는 데 그쳤다. 5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은 5개 분위 가운데 가장 높았다. 상대적으로 경제형편이 가장 좋은 5분위 가구의 벌이가 더 빨리 늘었다.

전체 소득에서 세금·연금·사회보험료 등을 뺀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보면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진다. 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85만8000원으로 1.3%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5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886만9000원)은 4.7% 늘었다.

이에따라 소득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월평균 흑자액은 374만4000원으로 흑자율은 42.2%에 달했다. 가계 흑자액은 벌어들인 돈에서 모든 생활비용을 빼고 순수하게 남은 돈이다.

반면 소득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흑자액은 마이너스 46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47.2% 줄었다.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이 감소했다.

저소득층은 먹고사는데 급급했다. 소득이 적은 1분위 가구는 주거·수도·광열(30만500원)에만 전체 소비 지출(131만9000원)의 23% 가량을 쏟아 부었다. 이어 보건(18만4000원), 음식·숙박(14만4000원)에 지출했다. 임대료와 연료비, 병원비 등 생계를 유지하는데 대부분의 돈을 쓴 셈이다. 반면 5분위 가구는 교통(84만4000원), 음식·숙박(68만7000원), 교육(58만4000원), 오락·문화(38만2000원) 순으로 소비 비중이 높았다.

이진석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5분위 가구는 교통이나 음식·숙박, 교육처럼 필수는 아니지만 선택적인 성격이 짙은 지출이 늘었고, 1분위는 주거·수도·광열, 보건과 같은 필수 성격의 지출이 늘었다”며 “지출 비중을 봤을 때 양 분위 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소득분배 지표는 크게 악화됐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과의 격차를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은 6.45배로 1년 전보다 0.25배 포인트 상승했다. 5분위 배율은 낮을수록 분배 상황이 좋다는 의미다.

앞으로의 소득 분배 흐름도 좋지 않다. 당장 인건비·원자재·이자 비용이 커지면서 영세 자영업자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정부 지원마저 중단되면서 중산층 자영업자들이 저소득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 과장은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손실보상금, 방역지원금으로 자영업자를 지원했는데 올해는 정부 지원 영향이 줄면서 자영업자들이 소득 하위 계층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경기 상황을 낙관하며 뾰족한 대책을 내지 않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고 공공요금 인상 이슈도 있어서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추경이든 저소득층 지원 확대든 정부 재정이 적시에 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대기업 감세·긴축 정책 기조를 선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은 교수(충남대 경제학)는 “양극화 심화는 정부가 부유층 감세와 긴축, 대기업 지원 확대에 몰두하면서 취약계층은 외면한 결과”라며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분배 악화 추세는 이대로 고착화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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