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끝장토론

“미래세대 부담? 공포 수준 아니다” vs “감당할 인구가 너무 적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오건호 내만복 정책위원장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vs재정안정론’ 끝장토론

주간경향은 국민연금을 두고 수년간 이어져 온 ‘소득대체율 인상론’과 ‘재정안정론’의 끝장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소득대체율 인상론 측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왼쪽)와 재정안정론 측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 지난 10월 4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논쟁을 벌였다.  서성일 선임기자

주간경향은 국민연금을 두고 수년간 이어져 온 ‘소득대체율 인상론’과 ‘재정안정론’의 끝장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소득대체율 인상론 측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왼쪽)와 재정안정론 측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 지난 10월 4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논쟁을 벌였다. 서성일 선임기자

[주간경향] 국민연금 개혁은 올해에도 물 건너가는 것일까. 연금개혁의 시간표가 다시 미뤄질 조짐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기한을 내년 5월까지 연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기 없는 연금개혁 속성을 감안할 때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나 본격 논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연금 개혁은 2007년 이후 번번이 무산돼왔다. 지난 16년간 정부와 정당들은 전문가들의 논쟁 뒤에 숨은 채 뒷짐만 져왔다. 정부와 정당이 각자의 입장을 내놓고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회피하는 동안 전문가들의 열띤 논쟁은 대중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주간경향은 국민연금을 두고 이어져 온 ‘소득대체율 인상론’과 ‘재정안정론’의 끝장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소득대체율 인상론 측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재정안정론 측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 지난 10월 4일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논쟁을 벌였다.

■ 국민연금 개혁해야 하는 이유는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생각부터 양측이 다른 것으로 안다. 왜 개혁이 필요한지를 각자 말해달라.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하 오) “국민연금이 지속가능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고강도 재정안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최근 5차 재정계산서도 확인됐다. 현재 젊은 세대들이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이유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에게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물론 공적연금의 존재 목적이 노후소득 보장인 만큼,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제도개혁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 적절할지는 서로 이견이 있다. 서로 잘 논의해 앞으로 조정이 되길 바란다.”(재정계산은 현 보험료와 연금액을 유지할 때 기금이 언제 소진되는지 등을 보여주는 계산으로,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하도록 돼 있다. 올해 5차 계산에선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기금이 2055년 소진되고, 그해 걷어서 그해 연금액을 충당할 경우 미래 청년세대 보험료율은 최대 35%까지 오른다는 결과가 나왔다-편집자 주)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하 주) “국민연금이 도입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노후소득 보장 기능이 너무 심하게 부족하다. 평균급여액이 약 60만원이다. 초고령화 국면에서 노후빈곤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그간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초고령사회에선 노후소득을 획기적으로 보장해야만 살 만한 사회가 된다. 게다가 2030년에서 2050년 사이 국민연금을 받게 되는 사람들의 보장수준은, 보험료를 내는 기간은 더 늘어나는 데도 오히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7년 급여삭감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소득대체율은 은퇴 후 받게 될 연금액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2.5%다. 일하던 시기 100만원을 벌었다면 은퇴 후 연금액으로 42.5만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40년 가입 기준이다. 보험료 납입기간이 40년보다 짧으면 실제 대체율 수준은 더 낮아진다. 대략 1년당 1%씩 낮아진다고 보면 된다. 현 소득대체율 42.5%는 조금씩 줄어 2028년 40%에 도달하게끔 돼 있다. 이번 토론에서는 편의상 소득대체율을 40%로 놓고 대화했다-편집자 주)

-재정계산 결과를 보면, 미래 청·장년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로 여겨진다.

“재정계산은 팩트가 아니라 추정일 뿐이다. 현재 시점에서 미래라는 과녁에 화살을 던지는 것과 같은데 성장, 고용, 소득, 인구 등의 변수에 따라 과녁은 계속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이 자주 쓰는 ‘2055년 기금 고갈된다’는 등의 표현은 타당하지 않다. 추정을 팩트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재정계산 결과로 흐름은 볼 수 있다. 미래 생산세대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노인이 인구 40%를 넘는 사회에서 국민연금 지출이 GDP의 약 11%가 되는 것이 비상식적인가 싶다. 그 시기 노인들이 받아갈 연금액을 온전히 청·장년 개인들이 보험료로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분담 구조를 어떻게 짤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풀어야 할 문제다.”

“재정계산이 미래의 수치를 알아맞히는 작업이 아닌 것은 맞다. 그 대신 ‘구조’를 보는 것이다. 특정 시점에서의 지출과 수입의 구조를 봐서 재정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불균형이라면 불균형의 규모를 보는 것이다. 미래의 국민연금 재정이 매우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현세대와 달리 미래세대의 재정부담이 무척 커진다는 계산 결과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주 교수가 말한 고용, 소득, 인구 등의 변수를 다양하게 넣어도 이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인상한다고 해도 미래의 연금지출액은 GDP의 11% 수준이며, 개인이 이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정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고 말한다.  서성일 선임기자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인상한다고 해도 미래의 연금지출액은 GDP의 11% 수준이며, 개인이 이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정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고 말한다. 서성일 선임기자

미래세대 개인이 모두 부담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성격을 고려하면 조세 투입을 못 할 이유가 없다. 현재 부과 대상이 GDP의 30%를 안 넘는다. 플랫폼 기업 등에도 부담을 지워야 한다.

■ 미래세대 부담, “심각하다” vs “과장이다”

-‘미래세대 부담이 심각하냐 아니냐’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것 같다.

“현재의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했을 때 70년 후 국내총생산(GDP)의 9%가량이 연금액으로 지출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70년 후 GDP의 약 11%를 지출하게 된다. 지금도 노인 세대를 위한 공적연금에 GDP 11% 이상을 지출하는 나라들이 꽤 있다. 이 정도를 그리 공포스러워 해야 하나. 시장에서 일하지 못하는 인구에 적정 소득을 보장해 소비할 수 있게 해서 경제균형을 이뤄나가는 것 그게 복지국가고 복지 자본주의다. 미래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떠넘긴다고 얘기하는 것은 과장이다.”

“먼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더 낮추자는 입장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지금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하자는 입장이고, 그럴 경우 말한 대로 70년 후 미래세대가 GDP 9%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처할 환경이 무척 어려울 거다. 연금액 지출에 GDP 11% 이상 지출하는 서구 국가들 얘기를 했는데, 20세기 중후반의 서구와 비교할 때 한국의 노인부양비는 매우 높아지는 구조다. 초저출생 때문이다. 서구 국가들의 GDP 10%와 미래 한국사회의 GDP 10%를 감당하는 인구 규모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훨씬 적을 것이다. 게다가 그 세대는 그해 걷어서 그해 지출해야 하는 건강보험과 기초연금 등의 부담도 훨씬 커질 전망이다. 미래세대가 GDP 9% 지출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연금액 지출은 GDP 2%다.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소득대체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지나친 연기금 적립 역시 문제이므로 그 속도와 폭을 조정해야 한다. 70년 후 GDP 9~11% 지출이 큰 부담이냐 아니냐에 대한 얘기를 이어나가겠다. 공적연금 지출을 줄여주는 것이 과연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일까. 부모가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보내기 어려워지면 자녀의 사적이전(생활비를 드리는 것) 부담이 늘어난다. 은퇴 이후가 불안해 사적연금 시장에 기대는 이들도 많아질 거다. 아울러, 연금액이 낮아 노후빈곤에 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기초연금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 부담도 늘어난다. 사회연대의 원리에 입각한 국민연금이 더 많은 사람의 노후를 제대로 보장하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모두의 부담을 더는 길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개인들이 GDP 11%를 전부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금재정 패러다임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 새로운 재정 패러다임, 가능할까

-미래의 청·장년 세대 개인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장기적으로 조세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국민연금엔 소득재분배 성격이 있다(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낸 만큼 연금액을 받는 구조가 아니다. 평균소득보다 적게 번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얹어주는 하후상박 구조다. 물론 절대적인 연금액은 고소득층이 높지만, ‘낸 보험료 대비 연금액’의 비율은 저소득층이 더 높다-편집자 주).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성격을 고려하면 조세 투입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자본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도 있다. 지금은 기업과 개인이 보험료를 5:5 부담하는데, 기업 부담을 65~70%로 올릴 수도 있다. OECD 평균이 대략 그 정도다. 아울러 보험료 부과 대상소득이 GDP의 30% 이하로 26%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테면 사실상 ‘사용자’ 역할을 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에 보험료 부담을 지워야 한다. 프랑스는 자산소득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개인소득과 대기업 법인세에 사회보장세를 부과한다. 장기 미래에 가능한 재정 패러다임 변화를 지금 구체적으로 얘기하긴 어렵다. 미래에 부가 어떤 방식으로 창출될지 그 변화를 미리 예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보험료 이외 재원 투입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미래세대의 지출 부담은 지금 명확하게 수치로 확인이 되는데, (소득대체율 인상론 측이 말하는) 충당 방안은 아직 범주 수준이다. 저는 소득대체율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소득대체율 ‘유지’ 역시 미래세대 부담이 크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늠을 해봤다. 현재 보험료 부과대상이 GDP의 3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마치 70%라는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국민계정에 분배 GDP 구성을 들여다보면 추가 부과대상으로 삼을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부과대상을 현 30% 수준에서 40% 수준으로 높이고 보험료율 15%로 인상해도 재원은 여전히 매우 모자라다. 결국은 법인과 자본에다 과세하자는 주장인데 부족액을 충당할 만큼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미 기업과 자본소득에 대해서 과세를 하고 있다. 자동차든 로봇이든 부동산이든 결국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로 거둬질 거다. 여기에 횡재세 정도가 추가될 수 있다. 과세를 강력히 한다고 해도, 여전히 부족할 것이다. 나아가 혹시 충분한 재원이 나온들 그걸 소득대체율 인상에 따른 부족액을 메우는 데 쓰는 게 맞느냐는 또 다른 논점이 있다.

-무슨 뜻인가.

“현재 가입자들은 보험료가 너무 낮다 보니 낸 것에 비해 과하게 많이 받게 돼 있다. 낸 것보다 ‘더’ 받는 만큼을 미래세대에 빚지고 있는 거다. 이걸 현세대가 보험료 인상으로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그다음 조세 투입도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저는 보험료율 15%까지는 점진적으로 인상하되, 그 이후에도 재정이 어렵다면 그때는 국고 투입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그 돈이 ‘소득대체율 인상’에 우선적으로 쓰이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긴 노동시장 중심부의 노동자들이 대체율 인상의 혜택을 가장 크게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입기간이 짧아 소득대체율이 실질적으로 낮은 불안정 노동자들을 위해 재정이 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고 본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현세대가 미래세대 부담을 방치해선 안 되며, 소득대체율 인상은 자칫 노동시장 중심부에 대한 혜택만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성일 선임기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현세대가 미래세대 부담을 방치해선 안 되며, 소득대체율 인상은 자칫 노동시장 중심부에 대한 혜택만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성일 선임기자

국민연금 보험료가 너무 낮다 보니 계층 간 역진성 문제가 생긴다. 고소득자가 덜 받는 만큼 저소득자가 더 받아가는 게 아니다. 모두가 낸 것보다 더 받아가며 그 돈이 미래세대에서 온다. 기간이 길고 임금이 높을수록 순혜택이 크다.

소득대체율 인상, “고소득층에 더 유리” vs “사회보험 특성 이해해야”

-소득대체율 인상이 어떤 효과를 낼 것이냐에 대한 논의로 이어가자. 재정안정론 측에서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실질적인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안다.

“국민연금 급여는 결국 소득비례, 가입기간 비례다. (연금액을 일제히 높이는) 소득대체율 인상의 효과는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장기간 고용된 노동시장 중심부에 집중될 것이다.”

그 주장은 사회보험이 정의롭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역시 소득비례다(더 많이 벌던 사람이 더 많은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뜻이다-편집자 주).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을 50%에서 60%로 올리는 것은 임금이 높을수록 혜택이 크니 정의롭지 않은 것인가. 국민연금의 급여나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나 본질적으로 ‘기존 소득의 대체’ 기능을 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그게 그 제도의 목적이다. 게다가 다른 사회보험과 달리 국민연금에는 강력한 재분배 요소가 들어가 있다.

“사회보험의 특성과 국민연금의 재분배 요소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국민연금엔 보험료가 너무 낮다 보니 생기는 계층 간 역진성의 문제가 있다(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 더 유리하다는 뜻-편집자 주). 무슨 얘기냐면, 지금 국민연금에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긴 하지만 고소득자가 덜 받는 ‘만큼’을 저소득자가 더 받아가는 구조가 아니다. 모두가 낸 것보다 더 받아가는데, 그 돈은 미래세대에서 오는 것이다. 낸 보험료보다 더 돌려받는 만큼을 ‘순혜택’이라고 하는데, 가입기간 길고 임금 높을수록 순혜택 절대액이 커진다. 즉 미래세대 부담으로 귀결되는 순혜택의 이득이 노동시장 중심부 고소득자들에게 집중된다는 얘기다. 이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 제기다.

“국민연금에서 각자 낸 보험료와 급여의 수익을 따지며 계층 간 역진성(고소득층에 유리한 성격) 얘기하는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제도는 각자 계정에 돈을 쌓고 자기가 낸 돈에 상응해 급여를 받는 제도가 아니다. 총량적으로 수입(보험료)과 지출(연금액)을 맞춰가는 제도이며 장수에 대응하는 제도이므로 수명에 따라 보장 총량이 달라진다. 개별 수익을 중심으로 연금제도를 보는 것은 공적연금의 본질과 어긋난 접근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계층별 수익을 따진다고 하더라도, 오 위원장의 문제 제기는 일정 수준 이상의 보험료 인상으로 해소된다. 이것은 소득대체율 인상을 가로막을 근거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득대체율도 인상하되 거기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재분배성이 강하게 설계할 것이냐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보험료 인상과 더불어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면 보험료 인상의 효과가 상쇄된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 세대의 부담으로 귀결되는 혜택이 노동시장 중심부에 집중되는 문제를 풀지는 못한다. 국고지원을 적극 얘기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저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입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렇게 나눠서 얘기했으면 좋겠다. 국민연금 부족액을 위한 국고지원, 크레딧 제도와 보험료 지원사업을 위한 국고지원으로 말이다.”

-국고를 투입하더라도 무엇에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이냐에 대한 얘기인 것 같다.

“뭘 먼저 하고 뭘 나중에 한다는 식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장 수준은 그냥 무슨 짓이든 다 해야 하는 수준이다. 소득대체율 인상과 가입기간을 늘려주는 조치가 같이 가야 하는 것이지, 우선을 따질 일이 아니라고 본다. 크레딧 제도는 군복무, 출산 등 사회적 공헌을 한 이들에게 가입기간을 늘려주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은 급여산식을 바꿔서 적용하는 폭넓은 조치인 반면 크레딧 제도는 일정한 공헌을 한 사람을 타켓팅한 제도다. 그리고 질병이나 장애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사회적 공헌을 못 하는 이들도 많다. 두 기제는 대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울러 취약계층 보험료 지원사업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제를 뒤로 미루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소득대체율 인상과 결합할 때 이런 조치의 보장성 강화 효과는 더 커진다. 또 중심부 노동자들 얘기를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은퇴 이후 소득절벽이란 위험에서 벗어나 있나. ‘소득대체율 인상하면 이 사람들만 혜택 봐요’라고 하면서 마치 이들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별 기득권도 없는데.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고객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고객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퇴직연금은 연금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나

중간계층, 중산층의 연금액도 충분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결국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 문제 아닌가. 우선순위로 무엇을 둘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득대체 인상도 미래세대 부담이 될 재원 문제 때문에 다른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가입기간이 짧은 불안정 노동자, 저소득층에게 가입기간을 늘려주는 조치(크레딧 제도를 의미. 가입기간을 1년 늘려줄 때 소득대체율 1%씩 늘어난다-편집자 주)를 통해 그들의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을 올려줄 수 있다고 본다. 중상위 계층에게도 소득대체율 인상 대신 다른 대안이 있다. 기업이 매년 임금의 8.34%씩을 퇴직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지난해 한해간 쌓인 퇴직금 적립액이 그해 국민연금 보험료 총액을 넘어섰다. 든든한 연금으로 기능케 할 잠재력이 퇴직금에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현 제도는 퇴직급여 제도이고 퇴직금과 퇴직연금 중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다. 퇴직연금 가입률은 가입대상 노동자의 절반을 약간 넘는다. 퇴직연금은 금융시장을 통해 돌아가는 사적연금으로 재분배 기능이 없고 유족급여, 장애급여도 없다. 국민연금처럼 죽을 때까지, 물가연동으로 실질가치를 보장해주는 그런 질 좋은 연금이 아니다. 퇴직연금에 대해 제대로 된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퇴직연금은 사적연금인 건 맞다. 여러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사용자가 전액 기여(매해 각 노동자의 임금 8.34%를 적립)하는 제도다. 저는 두 가지의 정책 과제를 더하면 퇴직연금도 중상위층이 기댈만한 연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가지는 ‘1년 미만 고용된 노동자’에게도 퇴직금 제도를 적용하는 것, 또 다른 과제는 비자발적 실업기간에도 실업급여를 보장해줘 퇴직금의 중간해지를 엄격히 규제하는 것이다. 네덜란드나 덴마크 등에선 퇴직연금이 노후소득원의 한 축으로 작동한다.”

“네덜란드, 덴마크는 산별협약에 의해 작동하는 퇴직연금으로 성격이 다르다. 한국에는 그런 기반이 없다. 퇴직금을 제대로 된 연금으로 작동하도록 제도를 개혁하는 데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릴 것이다. 가능할지도 불확실하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해도 효과가 나타나려면 지금부터 20년 있어야 한다. 20년이면 퇴직연금의 개혁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다층연금체계로 노후소득보장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본다. 중상위계층에겐 국민연금+퇴직연금, 중간계층은 국민연금, 하위계층에겐 국민연금+기초연금의 체계가 적용되게끔 하자는 것이다.”

“공적 노후보장제도에 대해 이렇게 계층별로 나눠서 접근하는 것은 맞지 않다. 우리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냄으로써 미래의 연금 청구권을 쌓아간다. ‘기여’를 했으니 나중에 생산되는 부의 일정한 ‘몫’을 받아갈 권리가 생긴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초연금은 그런 제도가 아니다. 국민연금의 역할과 사회 상황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는 제도이다, 이것을 미래 노후소득보장 한축으로 확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국민연금에 10년 납입해서 받는 연금액은 기초연금을 합쳐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내년 생계급여 71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기초연금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를 통해 보장받는 최저수준보다 국민연금 보장수준이 훨씬 높아야만 공적연금이 제대로 돌아간다.”

-각자가 생각하는 개혁안은. 간단히 말해서 얼마의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이 적절하다고 보나.

“지난 9월 1일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안을 기본축으로 해서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10년 동안 매해 보험료율을 0.6%포인트씩 올려 15%에 도달케 하자는 방안이다. 여기에 연금수급개시 연령을 2048년에 최장 68세까지 상향하는 안과 기금수익률을 높이는 안을 조합했다.”

2007년 소득대체율을 50%에서 40%로 떨어뜨리는 제도 변화가 있었다. 이것을 50%로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 보험료율은 13% 선을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속도로 그 선에 도달하느냐는 열어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재정계산위 사퇴 뒤 우리의 비전을 보여주는 대안보고서를 준비 중이다(지난 8월 31일 주은선 교수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가 소득대체율 인상론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정계산위의 민간위원직을 사퇴한 바 있다. 재정계산위는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수입·지출, 기금 규모를 계산해 정부에 보험료·연금액 조정안을 제안하기로 한 보건복지부 산하 민·관 합동위원회다. 두 교수는 재정계산위와 별도로 ‘대안 보고서’를 준비 중이다.-편집자 주).”

-좋은 연금개혁을 위한 조건이 있다면.

“정치권에는 연금이 부담스러운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책임 있는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면 자기의 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 중요한 의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됐음에도 아직 안이 없는 것으로 안다. 게다가 국회 연금특위를 내년 5월까지 연장한다고 한다. 총선 전에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을 안 낼 수도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미래를 좌우할 정책에 대해 안을 내고 국민에게 선택을 받는 것이 선거에 임하는 정당의 책임 있는 자세 아닐까.

“연금개혁은 정부가 중심이 되어 끌어갈 수도 있고, 정당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갈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 됐든,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하는 주체들에게 의견을 묻고 제대로 책임을 부여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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