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

임지선 경제부 차장

‘먹고살 거리’ 찾아 사람 계속 몰려
악순환에 서둘러 브레이크 걸어야
한동훈 ‘세종시 이전’을 서울서 발표
개발만 강조 ‘균형발전’ 고민은 적어

얼마 전 부산 갈 일이 있어 부산 출신 친구에게 현지서 뭘 먹으면 좋을지 물었다. “서울에서 먹어. 부산에서 성공하면 다 서울로 가.” 웃자고 한 말이지만 여운이 길었다.

한국만큼 수도권에 ‘다닥다닥’ 밀집해 사는 나라도 없다. 수도권 집중 문제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데이터들은 ‘경각심’을 일깨운다.

수도권 인구수가 나라 전체의 절반을 넘은 건 2019년이었다. 통계청 집계 기준, 지난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주민등록을 한 인구는 2601만명이었다. 전체의 50.7%. 지난 한 해 동안 수도권으로 들어온 사람은 4만7000명이었다. 7년 내리 수도권에서 나간 사람보다 들어온 사람이 많았다. 2019년(8만3000명), 2020년(8만8000명)에는 한 해에만 8만명이 넘게 수도권으로 유입됐다. 그중에서도 1980~199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몰려들었다. 이들의 수도권 거주 비율은 약 55%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수도권은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12%밖에 안 된다.

수도권으로 사람이 집중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살 거리’가 있어서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일자리가 없고, 사람이 없고, 생산 여력이 없다. 뫼비우스의 띠다. 젊은 세대는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만난 지역 기업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받을 수 있는 연봉의 최소 1.5배는 줘야 사람을 그나마 데리고 올 수 있다”고 했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의 신간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일자리와 젊은 세대와 지역경제의 악순환을 세세히 보여준다. 그는 ‘외환위기 때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울산이 생산기지로 전락했다고 진단했다. 엔지니어링 등 ‘연구’와 ‘구상’을 하는 기능은 모두 수도권으로 떠났다는 것. 이른바 ‘천안 분계선’이다. 지역 내 대졸자는 늘었지만 사무직 일자리는 없다. 생산직 일자리는 정규직을 뽑지 않는다. 울산의 20~29세 청년 고용률은 20년째 하락하고 있다. 연구소만 옮겨가는 게 아니라 아예 공장까지 수도권으로 간다.

여러 수치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2015년을 기점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수도권 기여도가 50%를 넘어섰다. 한국은행은 비수도권 지역이 전국 경제성장률에 기여하는 비중이 2015년 이후 2022년까지 3%포인트 이상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수도권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은 2022년 70.1%로 2015년보다 18.5%포인트 늘었다.

이대로 두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악순환은 저절로 개선되지 않는다.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답답한 건 숫자와 사례가 내뿜는 경고를 들어야 할 사람들이 귀를 닫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최근 총선 과정에서 보인 한 장면은 그래서 잊을 수가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국회를 ‘세종시’로 완전히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서울시’에서 발표했다. 선거용이라는 비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선거용이라고 해도 균형발전의 의지가 담겼다면 환영한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국가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큰 틀의 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더라면 발표 장소는 ‘서울’이 아닌 ‘세종시’였어야 한다. 세종시에 국회 예정 부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세종시 어진동이라는 동네에는 풀이 무심히 자라고 있는 허허벌판에 ‘국회 이전 예정 부지’라는 팻말이 꽂혀 있다.

내용 면에서도 ‘지역소멸’을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2200자 남짓한 발표문에 ‘개발’이라는 단어는 4번이나 등장하지만 ‘균형발전’ ‘지역경제’는 딱 한 번 나온다.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발표하면서 여의도의 ‘75m 고도제한’을 풀겠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국가 균형발전을 말하고 싶은 건지 서울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하는 건지 헷갈린다. 발표 직후 서울시는 “고무적”이라고 환영했다.

경향신문은 3년 전 강원 강릉 지역 고교 졸업생의 이후 거주지를 추적해 보도한 적이 있다. ‘강릉 소녀’ 기획으로 회자되는 기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강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카페 아니면 공무원’이라는 자조였다. 이젠 ‘음식도 다 서울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선거는 끝났다. 누가 이겼든,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서 지금은 부지깽이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임지선 경제부 차장

임지선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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