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2030 ‘자낳세’ 보고서

주식 투자 포기 못해요, 그때도 지금도 유일한 ‘동아줄’이니까

박채영 기자

(상) 2년 전 젊은 동학개미들…2년 뒤, 달라졌나요?

2020년 30.8% 오른 코스피
작년 24.89% 하락 ‘롤러코스터’
약세장에 뼈아픈 손실 경험

“주식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투자로 계속 자산을 불려 나가야 그나마 집을 산다든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모씨(31)는 개인투자자가 대거 주식 시장에 뛰어든 2020년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동학개미 운동’이 한창이던 그때 직장생활을 갓 시작한 박씨는 월급의 70~80%를 주식에 투자했다.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2020년 1년 동안 30.8% 올랐던 코스피는 2022년에는 24.89% 하락했다. 박씨의 주식도 딱 그 정도 떨어졌다. 마이너스가 찍힌 계좌를 보기 싫어서 주식앱에 들어가는 빈도도 줄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다. 여윳돈은 주식 계좌 대신 인터넷은행 파킹통장에 쌓아둔다.

그럼에도 박씨는 “앞으로도 주식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2020년 “적금으로 어느 세월에 돈을 모으냐”고 했던 그는 2023년에도 “월급만으로는 내 집 마련을 꿈꾸기 힘들다. 주식은 어찌 됐건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2020년 10월 창간 70주년 기획 ‘자낳세’(자본주의가낳은세대) 보고서를 4회에 걸쳐 보도하고 20·30대의 투자열풍을 조명했다.

경향신문은 2020년 10월 창간 70주년 기획 ‘자낳세’(자본주의가낳은세대) 보고서를 4회에 걸쳐 보도하고 20·30대의 투자열풍을 조명했다.

2020년 경향신문은 ‘2030 자낳세(자본주의가 낳은 세대) 보고서’를 통해 박씨를 비롯한 20·30대가 ‘주식 투자에 뛰어든 이유’를 조명했다. 당시 경향신문이 만난 20·30대 투자자들은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빨리 불어나는 시대에 사는 세대에게 투자는 필수”라는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자낳세’들은 대체적으로 주식에 쏟는 돈도, 시간도 줄어든 흐름을 보였다. 인생 처음 맞는 약세장에 “스스로를 주식 천재로 생각했던 착각이 깨졌다”는 20대 투자자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자낳세의 대부분은 “계속 주식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소득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이들의 절박함은 변하지 않았다.

“주식 천재인 줄 알았는데…마이너스”

2023년 주식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자낳세의 대부분은 손실을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이어졌던 초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서 주식 대신 은행으로 자금을 옮긴 자낳세도 있다.

2년 전 한 대학교의 투자동아리 회원이었던 이모씨(26)는 현재는 금융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전공은 경제·경영과 상관없는 어문학 계열이었지만, 2020년 주변의 권유로 투자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대학생 때보다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이씨도 지난해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이씨는 “2020년에는 아무거나 사도 다 올라서 제가 주식 천재인 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시장에 자금이 들어와서 그랬던 건데 내가 착각을 했던 것 같다”며 “투자에 있어서 훨씬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했다.

교사 최모씨(31)도 최근 주식 투자에서 10% 정도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최씨는 2019년 인터넷에서 ‘슈퍼개미’ 성공 사례를 보고 흥미가 생겨 주식을 처음 시작했다. 한창 장이 좋았던 2020년에는 220만원을 넣어서 2배 수익을 낸 적도 있는데, 지금은 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주식 계좌가 파랗게 변하면서 주식에 대한 관심도 식었다. 2022년 초에 한번 손절매를 하면서 주식 투자 규모를 절반 정도 줄였고, 한창 주식에 관심이 많을 때 챙겨보던 주식 유튜브나 기사도 덜 보고 있다. 최씨는 “주식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바쁘기도 해서 요즘은 주식을 관심 있게 보고 있지는 않다”며 “한동안은 적금 들던 것을 주식 계좌에 넣어뒀었는데, 지금은 금리가 높아져서 다시 예·적금으로 돌렸다”고 말했다.

“노동 소득만으로는 살 수 없어”
주식에 쏟는 돈·시간 줄었지만
계속 ‘투자’하겠다는 의지 여전
금리 상승에 예·적금 선택도

“여전히 월급만으론 살 수 없는 세상”

“극단적으로 말하면 제가 평생 벌 수 있는 돈이 딱 보이거든요. 투잡을 뛸 것이 아니라면, 자산을 플러스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어요.”

직장인 오모씨(31)는 지난해 주식에서 10~15% 손실을 봤다. 이미 2020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폭락장을 겪은 오씨에게 2022년은 인생 두 번째 하락장이다. 코로나19 직후 주식 시장이 폭락하면서 ‘손실이 확정되는 것이 무서워서 못 팔았던 경험’도 해보고, 밈 주식으로 하루 만에 몇백만원을 날려보기도 했다.

투자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오씨는 퇴직연금을 포함한 상당부분의 자산을 여전히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오씨는 “코로나19 때도 버티고 지금도 주식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안 할 것 같지는 않다”며 “직장에서 벌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고,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수단이 투자밖에 없다. 설령 주식 투자를 안 하더라도 부동산이라든지 어떤 식으로든 투자를 계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자영업을 하던 정모씨(36)는 코로나19 사태로 가게를 접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정씨도 지난해 주식 투자로 20~30% 마이너스를 봤다. 하락장에 손실을 만회하려고 물을 타다 보니 주식 투자 규모는 2년 전보다 늘었다. 전 재산의 20% 정도는 주식에 들어가 있다.

정씨도 “큰돈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투자는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월급쟁이는 아무리 많이 벌어도 월급쟁이지 않냐. 물론 수익이 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월급만 받으면서 평생 살 수는 없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다시 하다 보니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현범씨(31·가명)는 다시 만난 자낳세 중 유일하게 “앞으론 주식을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한 사람이다. 강씨의 직업은 장래에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기대해볼 수 있는 의사다. 지금은 페이닥터로 일하고 있다. 2020년에는 주식 투자를 위해 일주일에 사흘만 병원에서 일했던 열정적인 초단타 투자자였다. 최근에는 주식 투자를 그만두고 주 5일을 근무하고 있다.

2020년 “의사라는 일은 의미가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만 봤을 때는 월급 상승에 한계가 있다. 반면 자본소득은 내가 잘하면 한계가 없다”고 말했던 그는 2022년 “일상에 지장이 생길까 봐 주식을 깔끔하게 털고 나왔다”고 말했다. 강씨는 “그때는 일보다 주식으로 더 많이 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장이 바뀐 것 같다”며 “남에게 받는 월급만으로 살기 어렵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본업에서 하고 싶은 일도 생겼고 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서 개원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소득 기대할 수 있는 의사는
주 5일 근무하며 업무에 전념
“일상에 지장 생길까봐 안 해”

우리가 가진 건 시간뿐, 투자는 계속할 것

2년 전 “한국에서는 월급만으로는 못 살아간다”고 말하는 대학생이었던 박윤희씨(28·가명)는 2년 후 “월급을 받아본 후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말하는 사회 초년생이 됐다.

2020년 한 대학교 투자동아리 회원이었던 박씨는 2022년 초 외국계 기업에 취업했다. 박씨는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월급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라며 “직장에 다니면서 그만큼 고정비도 많이 들어서 저축으로는 살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월급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요즘의 2030세대와 선배 세대와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했다. 박씨는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고소득 직장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가 같이 돈을 10년 모으면 강남에 집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턱도 없는 상황”이라며 “막연한 결혼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월급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사회초년생 이모씨도 주식 투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부모님에 대해 답답함이 있다. 이씨는 “부모님은 주식 투자를 부정적으로 보시고 제가 금융투자업계 취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가 많으셨다”며 “부모님 세대는 고금리, 고성장 시대에 살아서 굳이 원금 훼손 위험이 있는 주식을 하지 않아도 집도 사고 애도 낳고 잘 사셨다. 그러다보니 ‘뭐하러 위험하게 주식을 하냐’고 생각하신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주식, 채권, 원자재, 가상통화에 고루 투자하는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로 올해도 수익을 봤다는 조모씨(30)에게 투자는 ‘밥 먹듯이 해야 하는 것’이다. 자산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 세상에서 젊은 사람들이 가진 무기는 시간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최근 금융 외에도 부동산으로 투자 범위를 넓혔다. 강연을 찾아 듣는 등 부동산 공부를 한 뒤 전 재산의 60%에 더해 대출까지 받아서 아파트를 샀다.

조씨는 “지난 5년 집값이 올랐다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옛날 신문을 봤더니 그때는 더 심했다. 1990년 목동 아파트가 연초 5000만원에서 연말 9000만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보면 목동 아파트 9000만원은 엄청 싼 것”이라며 “젊은 사람이 가진 건 수명밖에 없고 토지는 한정돼 있다. 집을 사두면 당연히 언젠간 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