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코로나 한파 버텼는데…고금리에 희망마저 짓눌렸다

박채영 기자

코로나 때 대출받은 자영업자 5인,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빚으로 코로나 한파 버텼는데…고금리에 희망마저 짓눌렸다

엔데믹 이후 금리·물가 치솟아
5명 중 4명, 아직도 빚에 허덕

원리금 부담에 개인회생 신청
가게 접고 알바로 생계유지도
“정부, 저리로 대출받으라더니
은행 6~7% 이자장사 눈감아”

정부 대환대출·신용사면 정책
까다로운 규정에 효용성 의문
“이렇게 어려운 시절은 처음”

“카페 시작할 때 받았던 대출은 3000만원밖에 안 됐어요. 직원들 월급, 월세, 재료값, 공과금 등 한 달에 나가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은 안 나와서 돌려막고 돌려막다 보니 빚이 금방 불었죠.” A씨(46)는 경남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그는 2022년 7월 참여연대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를 버티는 과정에서 1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았다”고 밝혔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A씨는 대출을 얼마나 갚았을까.

경향신문은 코로나19 시기 대출을 받았던 자영업자 5명을 인터뷰했다. 참여연대가 2022년 7월 발간한 ‘1000조원 소상공인 부채, 문제점과 개선방향’ 이슈리포트에 사례자로 등장했던 4명과 경향신문이 2022년 10월 인터뷰했던 1명이다. 약 1년 반 만에 근황을 전한 소상공인 5명 중 대출을 모두 갚은 사람은 단 1명이었다. 4명은 여전히 대출을 갚는 중이었다. 매달 나가는 원리금을 감당하지 못해 개인회생을 진행 중인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19 뒤에 닥친 고금리, 고물가에 가게를 접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베테랑 자영업자도 있었다.

빚내 버텼더니…고금리·고물가에 타격

빚으로 코로나 한파 버텼는데…고금리에 희망마저 짓눌렸다

코로나19를 거치며 1억원의 대출을 받았던 A씨는 현재 신용불량자다. 대출은 1억5000만원까지 불었고, 원리금을 감당못해 지난해 3월 새출발기금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일상 회복 후 카페 매출이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수백만원의 대출 원리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버틸 수 없었다. 새출발기금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A씨는 “대출 1억5000만원 중 6000만원에 대해선 채무조정 승인이 났는데 나머지 9000만원은 소식이 없어 기다리고 있다”며 “카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은행에 가면 그냥 대출이 나올 정도로 신용이 좋았는데 지금은 카드도 못 쓰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가족 계획도 틀어졌다. A씨는 “코로나19 전에 난임 시술을 받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 포기했다. 이제는 너무 늦은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빚으로 코로나 한파 버텼는데…고금리에 희망마저 짓눌렸다

소상공인들은 일상 회복 후 금리와 물가가 오르면서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자영업을 해온 베테랑 자영업자 B씨는 지난해 10월 4년간 운영하던 파스타 가게를 접었다. 하루 15~16시간씩 식당일에 매달렸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식당을 정리하면서 돌려받은 보증금 2000만원은 대출금을 갚는 데 썼다.

B씨(47)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1억원 넘는 대출을 받았는데 식당을 정리한 지금도 8000만원가량의 대출이 남아 있다. 현재 배달일을 하며 빚을 갚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때 2%대 저금리 대출이라고 해서 받았는데 현재 금리는 6~7%다.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책으로 대출을 받으라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은행들이 이자장사를 하게 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빚으로 코로나 한파 버텼는데…고금리에 희망마저 짓눌렸다

전북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C씨(44)는 두 번째 개인회생을 진행 중이다. C씨도 코로나19를 거치면서 1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는 “매장 영업이 금지됐을 때는 12시간 일하고 1만4000원어치 판 날도 있었다. 사채까지 썼다”고 말했다.

C씨는 2022년 3월 법원에서 회생인가 결정을 받아 10월까지 대출 일부를 갚았다. 하지만 변제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법원으로부터 개인회생 폐지 결정을 받았다. 이후 C씨는 지난해 10월 회생인가 결정을 다시 받아 두 번째 개인회생을 진행 중이다. 매달 98만원씩 38개월 동안 약 4000만원을 갚아야 한다.

C씨는 “개인회생을 하면서 원리금 일부를 탕감받아 감사하지만 여전히 버겁다”며 “매출이 잘 나와 월 450만원을 찍는다고 하면 이 중 100만원이 변제금으로 나간다. 여기에 월세 160만원, 공과금 60만원, 재료값 100만원이 나가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C씨는 “물가가 너무 올라 재료값도 많이 든다. 우유 1ℓ가 1900원이었는데 요즘은 2500원”이라고 했다.

빚으로 코로나 한파 버텼는데…고금리에 희망마저 짓눌렸다

전기료, 수도세 등 공과금 부담도 커졌다. 서울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D씨(48)는 “24시간 운영하는 헬스장은 공과금 오른 타격이 크다. 3년 전과 비교해 20~30%는 더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고금리·고물가에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소상공인은 증가하고 있다.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6%로 1년 전 0.26%를 기록했던 것에 비해 2배 넘게 높아졌다. 대출을 갚지 못한 소상공인 대신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이 갚고 있는 대출금액도 늘고 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신보 대위변제액은 1조7126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5076억원)에 비해 3배 넘게 증가한 규모다.

지원책 쏟아지지만 ‘그림의 떡’

정부는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해 대환대출이나 신용사면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이자 환급을 해주는 정책도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빚을 지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체감하는 정책 효용성은 개인별로 편차가 컸다.

빚으로 코로나 한파 버텼는데…고금리에 희망마저 짓눌렸다

E씨(33)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피자 가게를 접고 여행사로 업종을 바꿨다. E씨는 지난해 12월부로 6000만원의 대출을 모두 갚았는데, 지역신보의 대환대출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다. E씨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여행사가 잘되면서 빚을 빠르게 갚아나갈 수 있었다”며 “금리가 연 7~8%였는데 지역신보 2%대 금리로 낮춰주는 대환대출을 지난해 2월에 받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D씨는 “정부 정책에서 도움받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D씨는 현재 2억5000만원의 대출이 있다. 코로나19 때 받았던 대출 8000만원 중 3000만원을 갚았지만 헬스장을 확장하면서 헬스기구 리스(임대)로 2억원을 더 빌렸다. D씨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대환대출을 알아봤지만 받지 못했다. D씨는 “캐피탈에서 운동기구 리스를 받았는데 금리가 연 8~9%”라며 “저금리로 대환대출을 받고 싶어 알아봤는데, 운동기구 리스는 대상이 안 된다고 해서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식당을 폐업하고 배달일을 하는 B씨도 대환대출을 알아봤지만 대상이 아니었다. B씨는 “연체하지 않고 원리금을 꼬박꼬박 갚았더니 신용등급이 높아서 받지 못했다”며 “규정이 너무 까다롭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에야 소상공인 대환대출 대상을 개인신용평점 744점 이하 저신용자에서 개인신용평점 839점 이하 중신용자로 넓혔다. B씨는 “20년 동안 장사를 했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절은 없었다”며 “장사꾼이니까 또 장사를 하겠지만 지금은 환경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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