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대상이 아니라 소비 주체로

조미덥 기자
정보격차해소운동본부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들이 2017년 7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마트, 롯데쇼핑, 이베이코리아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보격차해소운동본부 홈페이지

정보격차해소운동본부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들이 2017년 7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마트, 롯데쇼핑, 이베이코리아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보격차해소운동본부 홈페이지

장애인소비자운동은 장애인이 주도적으로 나서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운동이다. 장애인이 보호·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게 하는 자립생활 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김종인 나사렛대 휴먼재활학부 교수는 “국내외적으로 장애인의 탈시설운동을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시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시설에 한번 들어가면 장애인이 대상화돼 장애당사자의 능력 개발이나 발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이 뭐든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 핵심에 장애인소비자운동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장애인소비자운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장애인 스스로 소비자로서 권리찾기에 익숙치 않다. 8일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민원을 접수하는 대표기관인 한국소비자원이 연간 접수하는 소비자 상담 건수는 약 70만건이다. 반면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에 올해 1~7월 접수된 상담은 788건에 불과했다. 등록장애인 인구 비율이 5%임을 감안해도 매우 적은 숫자다.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상담센터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장애인들이 소비 생활에 느끼는 불편이 크면서도 그냥 감내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향신문에 가전제품 사용의 어려움을 얘기했던 뇌병변장애인 정용기씨는 취재에 응한 이유로 “장애인들이 그냥 참고 지내면 안된다. 자꾸 불편하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같은 기관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기술은 계속 발달하는데, 이 기술이 장애인의 제품·서비스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엘리베이터는 서울에 지하철을 놓기 전부터 있었지만, 지하철역 대다수에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 최근의 일이다. 통신 기술이 발달해 영상통화가 가능해졌지만 청각장애인들은 AS(애프터서비스) 센터에 영상통화를 걸어 수어통역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기술이 오히려 소외감을 주기도 한다. 무인단말기(키오스크)가 보편화되면서 시각장애인이 혼자 결제할 수 있는 가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장애인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으면, 기부와 봉사활동만 하지 말고, 장애인이 소비자로서 자사의 제품·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정부 정책도 큰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아직 장애인에게 보조금을 주고 평생교육센터에서 케어(보호)해주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장애인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술과 시스템을 갖추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소비자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1990년 장애인법(ADA)이 시행된 후 기업들이 거액의 손해배상을 피하기 위해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기 시작했듯이, 한국에서도 이 법을 개정하고 활용하면서 장애인 소비자의 권리가 조금씩 강화되고 있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극장에서 영화 볼 권리에 대한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시각장애인들은 2017년 온라인 쇼핑몰 이용에 차별을 받고 있다는 소송을 제기해 올해 2월 1심에서 승소했다. 이밖에 다수의 장애인들이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진정을 제기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6월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무인단말기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장애인 접근성을 갖추도록 한 규정이 새로 들어갔다. 내년에 정부의 세부 규정이 나오면, 이 규정을 근거로 무인단말기, 스마트폰 앱에 접근성을 갖추도록 요구하고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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