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상한 아파트공화국” 佛 줄레조 교수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이죠.”

“한국에는 아파트가 왜 이렇게 많죠”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대답한다. 보통 한국인이라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공리(公理)다. 과연 그럴까.

줄레조교수는 “한국이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한 ‘주택이 유행인 나라’ ”라고 했다. 사진은 31일 한강 원효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서울 이촌동 지구 아파트 단지. /남호진기자

줄레조교수는 “한국이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한 ‘주택이 유행인 나라’ ”라고 했다. 사진은 31일 한강 원효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서울 이촌동 지구 아파트 단지. /남호진기자

1993년 한국을 찾은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40·마른 라 발레대 교수)는 ‘아파트의 나라’ 한국에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빈민주택의 통칭인 아파트가 한국에선 어떻게 부의 상징일까. 어떻게 ‘주택이 유행인 나라’가 생겨났을까. 유럽에서 실패한 ‘공동주택’에 대한 세계적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이상이 한국에서 실현된 것일까. 그는 서울의 아파트를 연구, 박사논문을 쓴 데 이어 최근의 연구성과를 담아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을 출간했다.

줄레조가 우선 문제삼는 것은 ‘인구밀도와 아파트의 상관관계’에 대한 통념이다.

좁은 땅에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 벨기에에서는 도시 집중화가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이어지지 않았다. 90년대 이후 서울 강북의 아파트 증가는 인구밀도 상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서울 신공덕동은 오히려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인구밀도가 낮아졌다.

줄레조는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더 많은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라며 “통행로, 소방로를 효율적으로 구상하고, 수도나 전기의 조직망을 개선한 3, 4층 건물로의 재개발은 왜 대안이 될 수 없느냐”고 반문한다.

줄레조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숱한 면박을 들으며 면접조사한 한국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로 ‘깨끗함’을 든다는 것. 여기서 ‘깨끗함’은 ‘더러움’의 반대가 아니다. ‘오래돼 값어치가 떨어졌다’의 반대말로, ‘최신의’ ‘새롭다’의 의미라는 것을 한참 뒤에 이해했다.

그는 여기서 ‘새 것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를 읽는다. 와우아파트 때만 해도 대다수 시민이 혐오한 아파트가 70년대 갑자기 ‘첨단주택’으로 탈바꿈하고, 신도시·뉴타운에서 보듯 ‘신’ ‘뉴’라는 접두사가 무한 반복됐다. 줄레조는 냉대받던 아파트가 명품으로 자리잡은 이유를 권위주의 산업화 이래 정부, 재벌, 중산층의 ‘3각 특혜동맹’에서 찾는다.

70년대 ‘주택건설 200만호!’ ‘주택건설 180일작전!’ 등 구호를 내건 정부는 훈장 수여와 각종 혜택으로 대기업 건설사의 참여를 독려했고, 중산층을 아파트로 결집시켰다. 대기업은 정부의 든든한 파트너가, 손쉽게 집 장만하고 돈까지 번 중산층은 확실한 표밭이 됐다. 아파트는 상품, 재테크 수단으로 변모했고 한국인들은 “도시가옥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무심한’ 국민”이 됐다. 여기에 부의 분배나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한 ‘국민주택’의 개념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는 ‘아파트의 현대성’에서도 한국인들의 모순된 인식을 읽는다. 한국인들은 ‘현대적’이라고 하는 아파트에서 살면서 한옥을 트집잡는 이유로 든 신을 신고 벗는 것, 상을 옮기는 일을 여전히 수행한다는 것이다. 현대성 신화는 “현실로서의 아파트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현대적 주택’에 대해 만들어 낸 ‘이미지’가 인기를 끈 결과”인 셈이다.

아파트 문화를 성찰한 변변한 연구조차 없는 한국 현실에서 한 이방인의 주도면밀한 관찰은 “미학적 기준에 반하는 도시경관” “지리학에 반하는 도시” 한국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듯하다.

〈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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