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또 또…인천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 사망

박준철 기자
지난달 인천 주안역에서 전세사기 첫 사망자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 인천 주안역에서 전세사기 첫 사망자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이 3명째다. 숨진 20~30대 청년들은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등 생활고를 겪어왔다. 정부가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 중인 경매 절차 중단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17일 오전 2시12분쯤 미추홀구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A씨(31)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숨진 A씨는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손 글씨로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숨진 A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혼자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A씨는 2019년 9월 전세보증금 7200만원을 주고 전세 계약을 했다가 2021년 9월 임대인 요구로 1800만원 올린 9000만원에 재계약했다.

A씨가 살던 아파트는 지난해 6월 전세사기로 60가구가 통째로 경매에 넘어갔다. 이 아파트는 2017년 준공돼 전세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여야 최우선변제금 27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A씨는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대책위)는 “A씨는 전세사기 피해로 인해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A씨 집 앞 쓰레기봉투에는 수도 요금 체납을 알리는 노란색 경고문 등이 버려져 있었다.

전세사기 피해자 B씨(26)도 지난 14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B씨는 2019년 입주할 때 전세금 6800만원에 계약했으나 2021년 재계약 때는 9000만원으로 2200만원을 올려줬다. 2019년 당시 1억8000만원 근저당이 설정된 B씨 집은 지난해 경매에 넘어갔다.

낙찰자가 나오더라도 A씨가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보증금은 3400만원에 불과한 상황이다. B씨도 수도요금을 못 냈으며 어머니에게 “2만원만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 전세사기로 피해자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17일 인천 미추홀구의 해당 세대 앞에서 같은 아파트 입주민이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인천 전세사기로 피해자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17일 인천 미추홀구의 해당 세대 앞에서 같은 아파트 입주민이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17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가 살던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 쓰레기봉투 안에 수도 요금 독촉장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제공

17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가 살던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 쓰레기봉투 안에 수도 요금 독촉장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제공

지난 2월 28일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도 전세보증금 7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C씨(38)가 숨졌다. C씨는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은행에서도 대출연장을 받지 못하는 등 막막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대책위는 미추홀구에서만 전세사기 피해가 2800가구를 넘는다고 밝혔다. 이중 800여가구가 이미 경매로 넘어갔다.

이들 전세사기 상당수는 ‘인천 건축왕’과 관계가 있다. 인천과 경기도 등에 2700채를 소유한 인천 건축왕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가구 전세 보증금 125억원을 세입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대출 연장이나 긴급주거 지원 등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는 지난 2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긴급주거지원 주택 238가구를 마련했으나 이날 현재 입주율은 3%(8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긴급주거가 원룸으로 비좁은 데다 기존 주거지에 멀리 떨어져 있어 입주를 꺼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하루 하루 숨이 넘어가는 사람들인데 당장 이들의 피해 회복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대책의 초점이 돼야 한다”며 “국토교통부 등이 경매 중지 등을 한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미 대책위원장도 “전세사기 피해자가 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경매 중지와 함께 임차인에게 피해주택에 대한 우선 매수권을 부여하고 낙찰대금을 저리로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전세사기 첫 사망자인 C씨의 49제를 맞아 18일 오후 7시 인천 주안역에서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들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칭)’도 발족할 예정이다.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자 인천시와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5시 인천 미추홀구청에서 유관기관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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