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만 의기양양…젠트리피케이션에 멍든 ‘서핑 성지’ 양양

심윤지 기자

작년 3.935% 올라…강원 도내 최고
고도제한 완화·2030 입소문 영향
3.3㎡당 7000만원 넘는 매물까지

상인들 “인건비·임대료 감당 벅차”

‘서핑의 성지’라 불리는 강원 양양군 현남면 죽도해변. 여름 성수기에 비하면 한적한 편이었지만 지금도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해변 바로 앞에는 20~30층 높이의 고층 건물이 줄지어 들어서 있고, 공사가 진행 중인 곳도 상당수였다. 대부분은 2020년 이후 지어진 생활형 숙박시설이다.

하지만 투자 수요가 급격히 몰리며 치솟은 땅값, 수요를 웃도는 과잉 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양양지역 주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6일 국토교통부 ‘2022년 연간 지가변동률’에 따르면 지난해 양양군 땅값은 전년 대비 3.935% 올라 속초시(3.674%)를 제치고 ‘강원도 땅값 상승률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서울 자치구 중 땅값이 가장 많이 상승한 서초구(3.982%)에 육박하는 수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땅값 상승률이 강원도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던 양양은 2016년 이후 속초시와 도내 1위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양양 땅값 상승은 서핑 문화가 태동한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돼 최근 몇년 사이 그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2017년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2020년 낙산도립공원 해제에 따른 고도제한 규제완화 등이 ‘개발 호재’로 작용하며 투자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양양이 2030세대 사이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을 탄 뒤에는 클럽이나 술집 같은 유흥시설도 줄줄이 들어섰다.

노승법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양양군 지회장(물치공인중개사 대표)은 “서핑 수요가 많은 인구해변 쪽은 3.3㎡당 땅값이 5000만원에 육박한다. 최근엔 3.3㎡당 7000만원이 넘는 매물도 나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가 나쁜 지금 상황에서는 ‘거품’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가격”이라고 했다.

투자 수요는 아파트 규제를 피하면서도 소자본 투자가 가능한 생활형 숙박시설로 몰려들었다. 경향신문이 양양 인구·죽도 해변 인근을 돌아본 결과 7곳 이상 생활형 숙박시설이 분양 중이었는데, 분양가의 1000만~1200만원 ‘마이너스피’ 매물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부동산 상승기 2~3년간 집중적으로 공급됐다가 금리 인상 이후 시장의 외면을 받은 매물들이다.

이러한 건물들은 인근 땅값과 임대료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해변에 자리 잡은 서핑숍들은 연세 또는 월세로 임대 계약을 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양이 서핑으로 전국적 명소가 됐지만 대부분 관광 수요는 여름에 몰려 있는 반면, 임대료와 인건비는 연간으로 발생되다 보니 사업성이 좋지 않다. 일각에서는 치솟는 비용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하는 곳들도 나오고 있다.

죽도해변에서 서핑숍을 운영하는 A씨는 “개업한 3년 전보다는 2배, 처음 개업을 고민했던 10년 전보다는 20배가 뛰었다”며 “하루하루 오르는 땅값을 보면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핑숍을 시작한 이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일(서핑)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는 건데 그것도 옛날이야기가 된 것 같다”며 “인건비와 임대료를 감당하기도 벅차 고민”이라고 했다.

양양이 난개발이 아닌 지역 발전의 모범 사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존 지역 상권과 주민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꾸준한 관광 수요가 유입되는 것이 관건이다. 서핑 목적 외의 관광객,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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