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자’ 사회보험료 감면·실업급여 자격 완화를

권재현 기자

(3부) 대안을 찾아, 그리고 도발적 제안들… ④ 사회안전망 구축 더 촘촘히

경향신문이 제안하는 네번째 대안은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한번 미끄러지면 안전망에 걸리지 않고 끝까지 추락하고 마는 ‘미끄럼틀 사회’에서 일자리는 복지라기보다 생명줄이다. 노동자들이 대기업 정규직으로 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탓이 크다. 사회안전망이 확실하다면 대기업, 정규직 대신 다른 인생의 선택도 가능하다. 어느 곳에 안전지대를 두껍게 쌓을 것인지 해법은 수없이 논의됐다. 이제는 구슬을 실로 꿰는 일만 남았다. 경제정책 역시 고용을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고용없는 성장’ 시대의 성장동력은 ‘고용’ 그 자체에 있다.

“4대 보험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단, 회사가 제시하는 급여에는 보험료는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가입하면 급여가 줄어듭니다.” 지난 8월 초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파견노동체험을 하기 위해 찾은 인천 부평역 부근의 한 파견업체 직원은 취업을 원하는 20대 청년들에게 4대 보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파견업체가 제시한 급여는 190만원, 월 28일, 매일 12시간씩 일하는 조건이다. 설명을 듣던 청년들이 “가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휴대폰 부품 납품업체의 파견근로자로 월 180만원을 받는 허인숙씨(40·여·가명)도 사회보험 가입은 생각도 안 해 봤다. 한 푼이라는 더 벌어야 하는 허씨에게 질병이나 상해는 차치하고 실직 이후는 물론 미래를 걱정할 여유는 없다.

상시 1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4대보험 가입이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이나 파견근로 현장 같은 곳에서는 사용자나 피고용자 모두 이를 피한다. 사용자는 책임 회피 목적으로, 피고용자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눈 앞의 현실 때문에 무너진다.

시장에서 미끄러져 추락하는 노동을 감싸안아 패자부활에 나서도록 하는 안전망의 확충은 가장 주요한 고용해법의 하나이다. 가장 밑바닥에 깔리는 것은 4대 보험이다. 실업과 저임금의 일자리를 반복하는 근로빈곤층에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은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실직할 경우 생계지원을 받고 재취업과 자립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불안정 노동층일수록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러스트 | 김상만 기자

일러스트 | 김상만 기자

고용전문가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보험료 감면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교원대 김혜원 교수는 “기준금액 이하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영세 사업주를 대상으로 사회보험료를 감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67.2%인 반면, 비정규직은 42.1%에 그쳤다.

실업급여 수급 자격 완화 방안도 필요하다. 지금은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실직 이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무해야 한다. 또 이직할 때도 본인의 귀책 사유가 아니어야 하며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고 있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이런 이유로 취약계층이 수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지난해 4월 현재 전 직장에서 상용직이었던 실직자는 37%가 실업급여를 받는 반면 임시직과 일용직 중 실업급여를 받는 비중은 각각 7.2%, 2.3%에 불과했다. 실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의 50%를 최대 8개월간 주는 실업급여 지급기간과 급여수준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 노동자들은 실업시 최대 4년까지 실업 전 임금의 80% 수준에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 사이의 사각지대에 제2의 안전망을 추가하는 방안도 시급하다. 영세 자영업자나 실업급여 수혜기간이 지난 실직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정부 재정을 통해 지원해주는 안전망이다.

특히 대리운전이나 퀵서비스 기사, 간병인 등 10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법적 자영업자 신분이어서 4대보험 가입이 제한적이다. 이 중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등 4개 업종을 제외하면 산재보험조차 받을 수 없다. 일본은 지난해 제1 안전망인 사회보험과 최종안전망인 생활보호(기초생활보장제도) 사이에 제2의 안전망을 만들었다. 주택수당과 취업훈련 생활비를 대출해주되 취업하면 대출금 상환을 면제해주는 ‘취업안정자금융자’ 제도다.

문제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재원 마련이다. 사실 한국의 사회복지비용 비중은 극히 낮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9%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0%다. 재정전문가들은 사회복지 확충을 위해 특별회계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사회복지세를 신설한 뒤 이를 복지확충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특별회계 방식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다. 재원은 세입 및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 우선 세출면에서는 4대강 사업 같은 토목예산 등의 비중을 줄이는 한편 예비타당성조사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세입의 경우 증세가 불가피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세수는 GDP대비 4.4%로 OECD평균(9.4%)에 비해 5%포인트 낮다. 진보신당 등은 상위 5%를 상대로 한 증세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부유층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점에서 합리적이지 못하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사회복지세의 경우 상위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부유세 방식보다는 중간 계층이 공공재원 마련에 참여하면서 부유층의 책임이행을 압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 실장은 사회보험의 혜택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노사가 부담하는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인하대 윤진호 교수는 “덴마크는 실업수당 마련을 위한 목적세인 노동시장세를 포함해 소득의 50%를 조세로 부담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선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서의동·권재현·김지환(경제부), 전병역(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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