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남은 ‘가을 추석’ 세기말엔 ‘여름 추석’이 온다고요

김기범 기자
연도별 폭염일수와 온열질환자 발생 추이. 노란색은 최고기온 33도, 주황색은 35도, 빨간색은 37도 이상인 날의 수. 검은 실선은 온열질환자 수. 한국환경연구원 제공.

연도별 폭염일수와 온열질환자 발생 추이. 노란색은 최고기온 33도, 주황색은 35도, 빨간색은 37도 이상인 날의 수. 검은 실선은 온열질환자 수. 한국환경연구원 제공.

추석 당일인 10일과 다음날인 11일 전국의 낮 최고기온은 23~28도, 아침 최저기온은 13~21도 분포를 보이겠다고 기상청은 9일 예보했다. 예년보다 이르게 찾아온 탓에 최고기온이 다소 높긴 하지만 대체로 활동하기 적당한 기온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앞으로 한반도에서 살아가게될 미래세대들도 이처럼 야외활동하기에 딱 좋은 기온 분포의 추석 명절을 맞이하는 것이 가능할까.

과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이번 세기말 추석은 더 이상 가을이 아닌 여름, 그것도 폭염 속에 맞이하는 명절이 될지도 모른다. 가을밤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의 의미가 무색해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9일 한국환경연구원이 지난 7월말 펴낸 KEI포커스 ‘폭염의 발생 시기, 강도, 복합 기상 요소를 고려한 영향 기반 대책 필요’를 보면 한반도 최고기온을 전망한 시나리오 가운데 최악의 시나리오(SSP585)에서는 21세기 말에는 1년 중 3개월 이상이 폭염 기준 이상인 33도 이상으로 기온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여름이 1년 중 3개월인 것이 아니라 여름 중에서도 어린이·노약자는 물론 성인도 활동하기 어려운 폭염이 1년의 4분의 1에 달한다는 얘기다. 환경연구원은 환경 분야의 정책 연구와 환경영향평가 검토 등 업무를 수행하는 국무조정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이다.

국내의 계절 길이 변화. 한국환경연구원 제공.

국내의 계절 길이 변화. 한국환경연구원 제공.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현재의 여름인 6~8월에는 매일 같이 폭염이 찾아오고, 4~5월과 9~10월에도 지금의 한여름 같은 날씨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야외활동이 어려워질뿐 아니라 농수축산물을 재배, 양식, 사육하고, 수확하는 일도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 농민들이 재배하는 벼의 경우 30도 후반대의 기온이 지속될 경우 제대로 영글지 못할 위험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1년 중 9일은 전국의 최고기온 평균이 무려 39.8도를 넘어설 것으로 나타났다. 39.8도는 대부분의 사람이 야외활동을 하는 것이 어렵고, 실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바람직한 온도다. 게다가 최고기온 평균이 39.8도라는 얘기는 그보다 높은 온도, 즉 40도가 넘는 극한 폭염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환경연구원은 극한 고온의 강도만이 아니라 빈도와 지속기간도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1세기 말이라고 하면 약 70~80년 뒤의 일이고, 아직 먼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국내의 여름은 꾸준히 길어져 왔고,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다. KEI포커스에 따르면 국내의 여름은 지난 109년 동안 20일 길어졌다. 최근 30년 대비 최근 10년 동안 여름이 시작한 날짜는 6일가량 빨라졌다. 특히 올해는 기상 관측 이래 처음으로 6월에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열대야란 밤에도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즉, 기온이 낮아지지 않아 잠들기 어려운 밤이 6월에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의 전국 최저기온 평균은 18.3도로 평년 대비 1.5도 높았다. 전국 최고기온 평균은 27.2도로 평년보다 0.5도 높았다. 이는 역대 가장 높은 최고기온이기도 했다.

이처럼 여름이 길어지고, 극한 폭염이 늘어나는 것은 온열질환자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온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일사병이나 열중증 등 온열질환을 겪는 이들이 증가하게 된다. KEI포커스에 따르면 33도 이상에서는 최고기온이 1도 증가할 때마다 하루 온열질환자의 수가 1.5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해 동안 하루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어가는 날은 지난 49년간 5.3일 증가했다. 최고기온이 같더라도 습도가 높고, 일조시간이 길면 온열질환자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기상청이 폭염 기준을 최고기온뿐 아니라 습도까지 고려한 체감온도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평년 대비 전국 최고기온 평균이 2.8도 높았던 지난 7월초 국내의 온열질환자 발생 수는 과거 10년보다 11.5배 많았다. 지난 7월1~7일 사이 발생한 전국의 온열질환자 수는 62명이었다. 과거 10년 평균은 약 5.4명이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극한 폭염은 온열질환뿐 아니라 뇌졸중, 심장마비, 정신질환 등 다양한 건강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환경연구원은 “(국내의) 폭염 대비 체제는 체감기온 33도, 35도 정도에 맞춰져 있어 40도 이상의 극한 이상 고온 현상이 발생할 경우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며 “폭염으로 인한 영향은 개인 차원에 한정되지 않고, 노동력 손실, 농작물 피해로 인한 물가 상승 등이 일으키는 산업계 피해, 국가 차원의 사회경제적 피해로 전이되므로 체계적 대응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연구원은 이어 “폭염으로 인한 영향을 사회 경제시스템 전체 영역에서 파악하고, 주택의 단열 개선, 노동환경 개선, 취약계층 복지 지원, 전력 예비율과 공급체계의 안정성 확보 등 기후위기 적응역량을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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