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연이 ‘두둥실’ 뜨니 전기차가 ‘완충’…어떻게?

이정호 기자

네덜란드 스타트업, 신개념 풍력발전 개발

60㎡ 연 끌고 올라가는 연줄에서 전력 뽑아내

고정식 대형 바람개비 불필요…기동성 높아

석유 넣는 기존 소형 발전기 대체 기대

대형 연을 하늘에 띄워 전기를 생산하는 ‘카이트 파워 호크’ 시스템의 모습. 전기자동차 등 전력이 필요한 각종 장비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충전할 수 있다.  카이트 파워 제공

대형 연을 하늘에 띄워 전기를 생산하는 ‘카이트 파워 호크’ 시스템의 모습. 전기자동차 등 전력이 필요한 각종 장비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충전할 수 있다. 카이트 파워 제공

‘카이트 파워 호크’ 시스템의 일부인 대형 연의 비행 고도를 얼레가 통제하고 있다. 연이 하늘로 솟구칠 때 생기는 연줄의 움직임을 통해 전기를 만든다. 일반적인 풍력발전기처럼 고정식 바람개비가 필요 없다. 카이트 파워 제공

‘카이트 파워 호크’ 시스템의 일부인 대형 연의 비행 고도를 얼레가 통제하고 있다. 연이 하늘로 솟구칠 때 생기는 연줄의 움직임을 통해 전기를 만든다. 일반적인 풍력발전기처럼 고정식 바람개비가 필요 없다. 카이트 파워 제공

#스코틀랜드의 한 외딴 기상관측기지 실내 한구석에 연구원 3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기지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어두컴컴하다. 연구원 가운데 한 명이 “석유가 떨어져 갑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한다. 실내조명을 켜고 난방장치를 돌릴 소형 발전기 연료가 바닥 난 것이다.

기온이 영하 65도까지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강추위가 닥친 기지 외부 환경 때문에 이들은 어둠 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크다. 운명을 예감한 듯 연구원 중 한 명이 “인류를 위해”라고 조용히 말한다. 그러고는 손에 든 잔 속의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는다.

2004년 개봉한 미국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이다. 저위도의 온기를 추운 지역으로 수송하는 해류 시스템이 기후변화로 망가지면서 감당 못 할 강추위가 닥친 가상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문득 ‘외딴곳에서 전등을 켜고 난방장치를 돌릴 방법이 석유를 넣는 소형 발전기밖에 없는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 인류가 전기를 활용한 기계문명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은 10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에 대한 답은 “안타깝게도 그렇다”이다. 전력 공급망 바깥에 있는 곳에서 전기를 만들고 사용할 방법은 지금도 마땅치가 않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바람을 이용해 간편하고 지속적으로 전기를 일으킬 기술이 개발됐다. 이 기술의 핵심은 대형 연이다.

‘소형 아파트 넓이’ 공중 비행

네덜란드 스타트업인 카이트 파워는 최근 연을 공중에 띄워 전기를 생산하는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고안한 전력 생산 시스템의 이름은 ‘카이트 파워 호크’이다. 카이트 파워 호크는 풍력을 이용해 전기를 만든다. 하지만 들판에 고정식 바람개비를 꽂아 작동시키는 일반적인 풍력 발전기와 작동 원리나 모양새는 크게 다르다.

카이트 파워 호크의 핵심 부품은 바람개비가 아니라 연이다. 질기고 가벼운 유리 섬유로 만들어졌다. 겉모습은 낙하산과 비슷하다.

연의 면적은 한국의 소형 아파트와 유사한 60㎡이다. 연치고는 매우 크다. 이런 연을 바람에 실어 상승시키면 최대 길이 352m짜리 연줄이 얼레에서 풀려 하늘로 솟구친다.

카이트 파워 호크는 이렇게 연줄이 힘차게 올라가는 일이 일반적인 풍력발전기에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일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고안했다. 하늘을 향해 풀리는 연줄 때문에 뱅글뱅글 돌아가는 얼레를 카이트 파워 호크 내부에 장착된 회전식 기계 부품인 터빈과 연결했다. 터빈은 발전기와 연계돼 전기를 생산한다.

카이트 파워에 따르면 연줄이 풀려 하늘로 올라갈 때는 최대 40㎾(킬로와트)의 전기가 발생한다. 완전히 풀린 연줄을 감을 때에는 모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10㎾의 전기를 소모한다. 이런 ‘풀림’과 ‘감김’이 반복되며 결과적으로 약 30㎾의 전기가 지속적으로 순생산된다.

하늘에 뜬 연의 비행 자세는 특수 센서가 자동 결정한다. 이를 통해 연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꾸준히 머문다. 사람이 일일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오지에서 전기 만들 ‘치트키’

카이트 파워 호크에서는 풍속이 초속 5m, 즉 깃발이 가볍게 펄럭일 정도가 되면 전기를 얻을 수 있다. 초속 10m, 즉 강물에 잔물결이 일어날 정도가 되면 최대치의 전기를 뽑아낼 수 있다.

생산한 전기는 발전기 옆에 놓인 가로 3m, 세로와 높이는 각각 2.5m인 대형 리튬이온배터리에 보관한다. 최대 용량은 400kWh(킬로와트시)다. 전기 자동차 약 5대를 완전히 충전할 수 있다.

이 같은 카이트 파워 호크의 능력을 종합하면 전력 공급망이 미치지 않는 외딴곳, 즉 섬이나 산간 지역에서 연만 띄우면 전기차 충전은 물론 가전제품이나 조명기구 가동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주요 설비인 배터리(7.5t)와 발전기(9.6t)를 실을 대형 화물차 2대만 있으면 어디든 옮겨 다니면서 전기를 만들 수 있다. 길이가 수십m가 넘는 바람개비를 땅에 고정식으로 박아둬야 하는 기존 풍력발전기보다 훨씬 기동성이 뛰어나다.

특히 지금은 오지에서 전기를 쓰려면 석유를 넣는 발전기를 가져가 돌리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데, 그런 상황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석유가 떨어질까 봐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풍력은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친환경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카이트 파워는 공식 자료를 통해 “바람만 불면 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낮에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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