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족관의 ‘고래쇼’…우정을 가장한 ‘인간을 위한 쇼’ 였다

최명애 | 환경지리학자

미국 해양동물 테마파크 ‘시월드’

범고래쇼가 열리는 ‘샤무 스타디움’은 야구장 비슷했다. 잠실 야구장을 3분의 1 잘라 세워놓고, 그 안에 대형 수조를 갖다 놓은 것 같았다. 바로 여기가 그 유명한, 혹은 악명 높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해양동물 테마파크 시월드다. 범고래(killer whale)로 하루 두 번 쇼를 한다. 범고래는 몸길이 5~9m, 몸무게 4~7t의 대형 고래로, 몸에 검고 흰 얼룩이 있다. 영화 <프리윌리>에 나온 바로 그 고래다. 시월드 올랜도는 2010년 그 범고래들 중 한 마리가 조련사를 익사시킨 사고의 현장이기도 하다.

낮 쇼를 30분 앞둔 12시. 상인들이 팝콘과 콜라와 함께 타월도 팔았다. ‘조련사도 범고래도 물 튀기기를 두려워하지 않아’ 앞쪽에 앉으면 흠뻑 젖는단다. 무대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시월드의 자연보전 노력을 홍보하고 있었다. 시월드가 다친 동물, 불쌍한 동물을 다 구조해 잘 보살펴서, 6만마리에 달하는 시월드 해양동물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영상물 제목은 ‘비하인드 더 신’. 이건 내가 알고 있는 비하인드 더 신과 좀 다른데. 시월드가 범고래쇼를 하려고 야생에서 범고래를 잡아서, 그것도 새끼만 골라 어미로부터 떼어서 데려오지 않았나. 스크린에 안내문이 떴다. “지금 50555로 구조(save) 유료 문자를 보내시면 야생의 해양동물을 다 구할 수 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2000여명의 관광객은 팝콘을 던지거나 콜라를 쭉쭉 빨면서 범고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파란 트레이너복을 입은 조련사가 무대에 등장했다. 조련사는 엄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그 어떤 우방국에서라도 군복무를 한 분들은 일어나 주십시오.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휴대전화라도 찾는 것처럼 우물쭈물 주섬주섬 일어났다. 박수와 환호 속에서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스크린에 띄웠다. 전역 군인들이 왜 하필 범고래쇼장에서 박수를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랬다. 부모 형제 잠든 동안 이 분들이 나라를 지켜 주셔서 우리가 범고래쇼를 볼 수 있게 됐나보다.

스크린은 어느새 어린 소녀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어릴 적 아빠를 따라 야생에서 범고래를 본 소녀가 자라서 고래관광선의 가이드가 되었고, 전혀 다른 직업 노선이기는 하지만, 시월드의 조련사도 됐다. 방긋 웃는 소녀의 영상 위로, 범고래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올랐다. 진짜다. 집채만 한 진짜 범고래다. 한 마리, 두 마리, 엄마를 따라온 새끼까지 다섯 마리의 범고래가 유유히 쇼장을 한 바퀴 돌았다. 환호하는 관중과 함께, 내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나왔다. 저렇게 크고, 탄력있고, 에너지 넘치는 것이 세상에 있다니.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30분이 지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서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훈련된 범고래들이 점프를 선보이고 있다. 시월드의 ‘샤무 쇼’는 고래를 이용한 상업적 스펙터클의 최전선이자 야생동물 공연을 둘러싼 동물복지 논란의 ‘뜨거운 감자’다.    최명애 제공

훈련된 범고래들이 점프를 선보이고 있다. 시월드의 ‘샤무 쇼’는 고래를 이용한 상업적 스펙터클의 최전선이자 야생동물 공연을 둘러싼 동물복지 논란의 ‘뜨거운 감자’다. 최명애 제공

■범고래쇼의 탄생

세계 최대 해양동물 테마파크 시월드가 문을 연 것은 1964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다. 이미 1860년대부터 어떻게든 고래를 수족관에 가둬보려고 여러 사람이 애썼지만, 본격적인 의미의 고래 수족관과 고래쇼는 1938년 플로리다의 ‘마린 스튜디오’가 돌고래를 훈련시켜 쇼를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90종의 고래 가운데 수족관이나 쇼 형태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동원되는 것은 대개 3종이다. 큰돌고래가 가장 흔한데, 과천 동물원이나 울산 생태체험관에 있는 고래도 바로 이 종이다. 벨루가라고 부르는 북극 흰고래도 종종 전시된다. 몸 길이가 3~4m로 작은 편이고, 대리석처럼 빛나는 몸피와 카나리아 같은 소리를 가진 고래다. 지난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폐사한 고래가 바로 벨루가다. 범고래는 몸집이 크고 활동반경이 넓어 수족관에서 키우기가 쉽지 않다. 국제고래보호단체인 ‘고래와 돌고래 보전(WDC)’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12곳의 수족관에서 56마리의 범고래를 사육하고 있다. 시월드가 이 중 절반을 갖고 있다.

시월드가 개장한 1960년대는 고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성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조련사와 돌고래의 ‘우정’을 다룬 TV쇼 <플리퍼(Flipper)>가 미국의 안방극장을 장악했고, 유리창 너머로 고래를 볼 수 있는 돌고래 수족관이 미국과 유럽 전역에 빠른 속도로 생겨났다. 고래의 지능과 독특한 생태는 연구자들을 매혹시켰고, 미디어는 고래를 ‘우아한 거인(Gentle Giants)’의 이미지로 재생산했다.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봐도 뭔가 좀 대단한 것 같은 거대 생명체. 그게 고래였다. 고래, 그것도 대형 고래를 이용해 쇼를 선보이기에 이보다 좋은 때가 없었다. 시월드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서 잡은 범고래 ‘샤무’를 이용해 1966년 쇼를 시작했고, 그 뒤 50년간 ‘샤무 쇼’는 시월드의 간판 상품이 됐다. 조련사가 점프하는 범고래의 코 위에서 두 팔을 활짝 펼치면 관객들은 몸을 떨며 환호했다. 인간이 자연을 저렇게 길들일 수 있구나, 인간과 고래가 ‘우정’을 나눌 수도 있구나. 한동안 샤무 쇼의 제목은 ‘믿으라!(Believe!)’였다.

돌핀 코브의 돌고래 먹이주기 체험.

돌핀 코브의 돌고래 먹이주기 체험.

■‘보전’이라는 이름의 착취

그 ‘우정’은 한 종의 다른 종에 대한 일방적 착취에 기반한 것이었다. 야생에서 포획하거나 수족관에서 번식한 범고래는 시월드에서 ‘샤무’로 다시 태어난다. 각자의 이름이 무엇이든, 어느 파크에서 공연하든, 시월드의 범고래는 모두 ‘샤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야생에서 범고래는 5~7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며 물범과 생선, 때로는 다른 고래까지 사냥한다. 수족관의 샤무는 격리된 공간에서 생선을 받아 먹으며 점프하고 물보라 일으키는 법을 배운다. 범고래는 30~50년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샤무의 평균수명은 13년이다. 무엇보다도 가시적이고 가슴 아픈 차이는 1m에 가까운 등지느러미다. 야생 범고래의 등지느러미는 꼿꼿이 솟아 있지만, 샤무의 그것은 모두 구부정하게 휘어 있다. 좁은 수조에 적응해 살면서 콜라겐 분비가 줄어들어 생긴 변화다. 시월드의 수조가 올림픽 규격 수영장 9개 크기라지만, 하루 최대 160㎞를 헤엄치는 대형 고래를 사육하기엔 충분치 않다. 영리하고 사나운 야생동물인 범고래는 ‘생선’을 매개로 ‘샤무’로 길들여진다. 훈련의 채찍과 당근도, 쇼 노동의 대가도 생선이다. 조련사들은 월급이라도 받겠지만, 범고래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은 생선과 휘어진 등지느러미뿐이다.

생선으로 맺어진 조련사와 범고래의 위태위태한 ‘우정’은 2010년 2월 조련사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파열했다. 수컷 샤무 ‘틸리컴’이 수석 조련사 댄 브랜쇼의 머리채를 물고 수조 밑바닥으로 끌고 간 것이다. 그 후 미국 직업안전위생관리국은 안전을 위해 조련사들이 물속에 들어가 범고래와 쇼를 벌이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듬해 7월부터 선보이는 시월드의 새 샤무 쇼, ‘원 월드’에서 조련사들은 더 이상 범고래와 헤엄치지도 않고, 범고래에 올라타지도 않는다.

열악한 사육환경, 노동 착취, 사고 위험에도 시월드가 꾸준히 범고래 사육, 전시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월드가 내세우는 것은 ‘보전’이었다. 영상물에서도, 조련사들의 대화에서도, 시월드는 단순히 쇼만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범고래 보전에 기여하는 곳이라고 강조, 또 강조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였다. 일부 멸종위기종의 경우 동물원이 대체 서식지 역할을 하거나, 동물원 내 번식을 통해 멸종을 막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범고래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국제 멸종위기종은 아니다. 오히려 범고래의 가장 큰 위협 요인 중 하나는 전시 목적의 포획이었다. 시월드는 미국~캐나다 국경에서, 미국 해양포유류보호법이 제정된 1972년 이후에는 아이슬란드에서 범고래를 잡아왔다. 고래 포획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진 뒤로는 자체 번식시킨다. 시월드가 ‘관심 고래’ 틸리컴을 악착같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틸리컴이 이 수족관의 씨범고래여서다. 틸리컴을 아빠로 태어난 범고래가 이미 21마리다. 시월드의 범고래 사육과 번식은 보전 목적보다는 사업 유지를 위한 상업적 목적에 가깝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전’ 내러티브는 허약하기 짝이 없다. 범고래를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보전하자는 것은 말하지 않고, 샤무 쇼는 30분 내내 “자연을 보전하자 우리는 하나”라는 말만반복했다. 여기서 ‘보전’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구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공연용 범고래의 휘어진 등지느러미. 야생 범고래와 달리 좁은 수조 속에서 생활하는 공연용 범고래들은 등지느러미가 휘어져 있다.

공연용 범고래의 휘어진 등지느러미. 야생 범고래와 달리 좁은 수조 속에서 생활하는 공연용 범고래들은 등지느러미가 휘어져 있다.

■제2, 제3의 시월드들

범고래 보전에 고래 수족관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이 무색하게도, 시월드는 지난달 17일 돌연 범고래 번식과 샤무 쇼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월드 샌디에이고는 내년부터, 올랜도와 샌안토니오는 2019년부터 중단된다. 조련사 익사 사고와, 이를 다룬 영화 <블랙피쉬>의 전 세계적 흥행, 이에 따라 범고래 전시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진 탓이 컸다. 시월드의 범고래 수족관은 현재 범고래들이 수명을 다하는 20여년 뒤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월드에 범고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극 콘셉트의 전시실에는 벨루가 3마리가 전시돼 있고, 북극 코끼리도 먹은 걸 토했다 다시 먹으면서 수조 위를 떠다녔다. 돌고래도 많다. 돌고래쇼와 새끼 돌고래 전시실에 각각 10여마리, 일종의 돌고래 터치풀인 ‘돌핀 코브’에도 16마리가 전시돼 있다. 돌고래에게 먹이를 주고 만져 볼 수 있는 체험장인데,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가까이서 고래를 보고 싶어 한다. 특히 그 희귀한 체험이 단돈 7달러인 경우에는 더욱 더. 직원은 30여명의 관광객을 한 줄로 세우고 생선이 든 박스를 나눠줬다. 멸치보다 조금 큰 생선 서너 마리다.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자 돌고래들이 다가와 끽끽대기 시작했다. 내 평생 돌고래의 입속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송곳니처럼 생긴 이빨 사이로 생선을 던져 넣었다. 너무 작고 볼품없는 생선이었다.

범고래쇼의 종식과 무관하게 시월드에서는 여전히 많은 해양동물이 공연에 동원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는 제2, 제3의 시월드가 생겨나고 있다. 시월드는 중동에 진출할 예정이며, 동아시아에서는 빠른 속도로 고래 수족관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래 수족관은 지난 5년 새 3곳에서 8곳으로 늘었다. 시월드의 범고래쇼가 끝난다 하더라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위한 인간의 고래 노동 착취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경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1993년을 마지막으로 고래 수족관이 자취를 감췄고, 칠레와 코스타리카도 고래 수족관을 법으로 금지했다. 우리가 지난 세기의 ‘인간 동물원’을 돌이켜 보며 부끄러워하듯, 다른 동물을 상업적 목적으로 전시하던 시절을 부끄러운 과거로 기억하는 날이 과연 올까. 그때가 오면 시월드의 돌고래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좁은 수조에 가둬서, 강제로 공연시켜서, 그리고 맛없는 생선만 줘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필자 최명애

[콜 미 이슈마엘 - 최명애의 고래 탐험기] (3) 수족관의 ‘고래쇼’…우정을 가장한 ‘인간을 위한 쇼’ 였다

인간과 동물·자연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환경지리학자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 지리학과에서 한국 생태관광의 통치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앞서 경향신문에서 9년간 기자로 일하면서 여행·환경 분야를 취재,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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