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재난은 연결돼 있다

김한솔 기자

유엔 산하 싱크탱크 보고서

모든 재난은 연결돼 있다

북극 폭염과 텍사스 한파
아마존 산불과 주걱철갑상어 멸종
탄소배출·환경파괴 고리로 이어져

북극 빙하를 녹인 폭염과 미국 텍사스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일으킨 한파, 코로나19와 방글라데시 접경지역에 닥친 사이클론 ‘암판’, 브라질 아마존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에서 중국의 주걱철갑상어 멸종까지. 지난 1년간 전 세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별개의 재난들이 탄소 배출과 환경 파괴를 고리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유엔 산하 싱크탱크의 보고서가 나왔다. 독일 본에 위치한 유엔 산하 환경재해 연구기관인 유엔대학 환경 및 인간안보연구소(UNU-EHS)는 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호 연결된 재해 위험 2020/2021’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

모든 재난은 연결돼 있다

“아무도 섬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우리 모두에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보고서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일어난 10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재난을 분석해 재난과 재난 혹은 개인과 재난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밝혀냈다.

2020년은 전 세계 기온이 기록적으로 높은 해였다. 북극권 베르호얀스크의 기온은 38도까지 올라갔다. 빙하가 녹아 북극을 덮은 해빙의 양은 역대 두 번째로 적었다. 북극의 온도가 높아지자 차가운 공기 덩어리가 모여 있는 ‘극 소용돌이’의 움직임이 불안정해졌다.

극 소용돌이에 갇혀 있던 찬 공기는 그대로 북아메리카 쪽으로 남하했고, 미국 텍사스주에 이례적인 한파가 시작됐다. 갑작스러운 폭설과 한파에 전력 수요가 늘면서 텍사스의 전력망은 무너졌다. 자체 전력망을 가진 텍사스는 다른 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을 수도 없었고, 결국 400만명의 전기가 끊기고 210명이 추위로 사망했다.

어떤 재난은 다른 재난과 결합해 더 큰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남서부 숀도르브 지역에 사는 이들의 절반가량은 빈곤층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자 해외에서 일하던 많은 이들이 수입이 끊겨 본국으로 돌아왔고, 격리 기간 동안 사이클론 대피소에 수용됐다. 1999년 이후 가장 강력한 사이클론인 ‘암판’이 몰아쳤지만 주민들은 격리자들이 모여 있는 대피소를 기피했다. 여기에 사이클론은 6000개에 가까운 1차 건강센터를 망가뜨렸고, 이 지역의 건강관리 시스템을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대유행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암판으로 이 지역에는 100명이 넘는 사상자와 130억달러 이상의 피해, 그리고 49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 지역에서 최악의 식량 손실을 일으키고 있는 ‘사막 메뚜기 떼’도 사이클론과 연결되어 있다. 1㎢를 뒤덮을 만큼 많은 사막 메뚜기 떼는 하루에 3만5000명분의 곡류를 먹어치우고 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사이클론들이 사막 메뚜기 떼 번식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사이클론의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간 메뚜기 떼들의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사이클론의 빈도와 강도는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 주저자인 UNU-EHS 수석과학자 지타 세베스바리 박사는 “사람들은 뉴스에서 재난을 접하면 나와 멀리 있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수천㎞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재난도 서로 관련이 있고,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행동도 연결

재난은 개인의 행동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육식’을 선호하는 개인의 선택은 브라질 아마존 산불의 원인이 됐다. 지난 한 해 동안 불탄 아마존 우림의 면적은 피지섬의 면적보다 크다. 숲이 줄어들자 한때 ‘지구의 허파’였던 아마존은 이제 흡수하는 탄소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내뿜는 배출원이 됐다.

보고서는 아마존 산불의 원인으로 전 지구적인 육식 소비를 들었다. 육식은 어떻게 아마존 산불 증가로 이어질까.

아마존에서 산불은 숲을 농경지로 전환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경지에서 재배된 콩의 77%는 닭 등 가금류의 사료로 쓰인다. 보고서는 “비록 고기가 아마존에서 직접 생산되진 않지만, 세계적 공급망들의 상호 연결을 통해 아마존 파괴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빙하기를 버텨냈던 중국의 주걱철갑상어는 인간의 남획과 대형 댐 건설로 멸종했다. 주걱철갑상어의 자연 서식지인 양쯔강에는 대형 댐이 여럿 건설됐다. 보고서는 “댐이 주걱철갑상어 멸종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주요한 원인”이라며 “2억년 동안 존재했던 주걱철갑상어는 인류의 과잉소비와 개입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2020년 멸종된 것으로 선언됐다”고 했다.

■“문제가 연관, 해결책도 연관”

보고서는 재난의 상호 연결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근본 원인을 도출했다. 인간이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저평가된 환경비용과 의사결정 편익’, ‘불충분한 재난 위험 관리’가 대표적인 3가지 원인이다. 이를테면 온실가스 배출은 북극 폭염을 일으켰고, 텍사스의 한파로 이어졌다. 규제를 피해 비용을 아끼려고 자체적인 전력망을 구축했던 텍사스에는 갑자기 닥친 한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재난 관리 실패로 다수의 사망자를 낳게 되는 흐름이다.

보고서는 이처럼 상호 연결된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난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고서의 다른 주저자인 잭 오코너 박사는 “우리가 전 세계에서 목격하는 재난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또한 개인의 행동과도 연관되어 있다”면서 “하지만 좋은 소식은,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면 해결책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