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벌레 살충을 멈추라”는 곤충학자···“벌레는 죽어야 마땅한 존재?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생명체!”

윤기은 기자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곤충학자 정부희 박사(60)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다영 PD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곤충학자 정부희 박사(60)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다영 PD

‘사랑벌레’(러브버그·우담털파리)가 수도권 서북부에 떼 지어 자리를 잡았다. 방충망, 방 안 천장, 베란다 바닥 곳곳에 엉덩이를 마주 댄 채 붙어있는 사랑벌레는 사람들에게 ‘혐오스러운 존재’로 비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알코올이 함유된 섬유향수를 뿌리기’ ‘흰색 통에 물과 기름을 섞어 유인하기’ 등 갖가지 사랑벌레 퇴치법이 올라왔다. 각 지자체에는 벌레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쇄도했고, 아직 벌레가 나타나지 않은 몇몇 지자체들은 ‘선제 방역’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모두가 사랑벌레 퇴치에 열을 올리는데, “살충을 그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곤충의 보금자리>, <곤충의 살아남기> 등 ‘한국판 파브르 곤충기’를 펴낸 곤충학자 정부희 박사(60)이다.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한 정 박사는 주부로 지내던 중 야생화를 관찰하다 곤충에 꽂혀 2002년 곤충분류학 석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5년 후 곤충분류학 거저릿과(딱정벌레목 곤충) 분류 및 생태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수료했다.

딱정벌레, 나비 등 다양한 곤충이 사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6일 정 박사와 만났다. 인터뷰 도중 개미들이 자신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정 박사는 “얘들아 안녕”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정 박사는 지난달 말 출간한 저서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에서 벌레를 ‘공기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산 밑에 있던 집에 수시로 드나들었죠. 밥을 먹다 국에 벌레가 떨어지면 건져냈고, 마루에 오면 슥 밀어냈습니다. 계속 함께 있는, 싫지도 좋지도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곤충’이라는 말보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듣던 ‘벌레’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곤충은 다리 3쌍, 더듬이 2개가 있는 생물을 가리키는 공식 생물학 용어이지만 이보다 더 넓은 범위의 하등동물을 가리키는 벌레는 공식 학술 용어가 아니다.

정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벌레를 ‘공생’이 아닌 ‘박멸’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며 슬퍼했다. 도심에 출몰한 벌레 떼에 대응하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랑벌레가 나타난 지금도, 2020년 서울 은평구 일대 공원에 대벌레가 나타났을 때도 사람들은 지자체에 방역 민원을 넣었고, 지자체는 벌레 떼를 즉사시켰다. 그는 말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고요. 사랑벌레는 사람에게 물리적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질병을 옮기지도 않아요. 잠시 우리 집에 실수로 들어온 것일 뿐입니다. 정 보기 싫으면 빗자루로 쓸어내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그는 “인간이 최고이고, 생태계를 통제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며 “방역을 하면 곤충이 당장 눈 앞에서 사라져서 좋을 것 같지만,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 그 부정적 영향은 인간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한 종류의 생물만 없애는 살충제는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충제를 뿌리면 다른 생물도 같이 죽는다. 살충제로 인해 죽은 생물을 먹고 사는 2차, 3차 포식자들의 생존도 위협받는다. 땅 속, 하천으로 흘러들어간 살충제는 생물체의 유전자 변형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성북구 러브버그 대응 선제방역 발대식이 열린 5일 서울 성북구 성북천에서 한 방역 봉사자가 ‘러브버그 선제방역’을 하고 있다./문재원 기자

성북구 러브버그 대응 선제방역 발대식이 열린 5일 서울 성북구 성북천에서 한 방역 봉사자가 ‘러브버그 선제방역’을 하고 있다./문재원 기자

은평구 등 지자체는 방역 시행 홍보 게시글에 사랑벌레가 진드기 박멸이나 환경정화에 도움이 되는 ‘익충’이라고 알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벌레를 마냥 부정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인식 전환이 이뤄진 것”이라면서도 “벌레를 익충과 해충으로 나누는 것도 인간이 세운 상대적 개념”이라고 했다. 그는 “해충의 정의는 사람의 건강이나 먹는 것 등에 문제를 일으키는 벌레”라며 “하지만 곤충 입장에서 그 용어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고, 곤충들은 자신의 생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기후위기의 시대, 정 박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때마다 곤충 개체 수가 적어지는 것을 체감한다. 주 2회 정도 산으로, 정원으로 곤충 관찰길에 나서는데, 올해는 버섯에 사는 ‘버섯 곤충’을 거의 못 봤다고 했다. 올림픽 공원에서도 5년 전쯤엔 호랑나비가 보였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곤충 서식지는 산림 개발과 둘레길 신설 등에 의해서도 파괴되고 있다.

정 박사는 벌레와 인간이 공생하려면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사랑벌레에 대해 “생태현상 중 하나”라며 “생태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귀한 장면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거나 사랑벌레가 나타난 곳에 안내판을 세워 사람들을 안심시키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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