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 전통일까 동물학대일까···동물보호단체 “소싸움 예외로 둔 동물학대 조항 삭제해야”

김기범 기자

동물보호단체 “소싸움 예외로 둔 ‘동물학대’ 규정 개정해야”

지자체 “소싸움은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이자 관광 활성화 위한 볼거리”

소싸움 금지 위해선 일몰제 도입과 싸움소 농가 지원 필요

녹색당과 동물보호단체 회원 등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소싸움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녹색당과 동물보호단체 회원 등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소싸움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거대한 몸집의 황소 두 마리가 경기장에 들어오자 관중들의 고함이 높아진다. 낙지나 장어 같은 동물성 먹이까지 억지로 먹여 살을 찌운 두 마리 소가 서로 뿔과 머리를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버텨내지 못한 한 마리가 고개를 돌려 도망치자 돈을 건 이들의 탄식과 함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생채기가 나고, 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는 소들도 있지만 관중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북 정읍, 경북 청도 등 주로 남부지방에서 이뤄지고 있는 소싸움대회를 둘러싸고 인간의 유희와 도박을 위해 동물을 억지로 싸우게 하는 것은 동물 학대행위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학대의 범위를 규정한 동물보호법에서 소싸움을 예외로 둔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지자체들이 소싸움은 전통문화이자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맞서면서 소싸움대회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동물자유연대와 녹색당 등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보호법 제8조의 소싸움 예외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보호법 제8조는 도박, 광고, 오락, 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명시하여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라는 예외 조항으로 인해 소싸움은 허용되고 있다.

녹색당은 회견에서 이 같은 예외조항에 대해 “‘소싸움은 동물학대가 맞지만, 처벌받지 않는다’는 이상한 명제가 성립되고 있다”며 “뿔 갈기, 시멘트로 채워진 폐타이어 끌기처럼 학대에 가까운 훈련과 동물성 보양식을 먹이는 방식의 싸움소 육성, 싸우기 싫다는 소들을 억지로 싸우게 하는 소싸움대회는 명백한 동물학대”라고 주장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인간의 오락을 목적으로 자연 상태에서는 싸우지 않는 동물에게 싸움을 시켜 고통을 겪게 할 뿐 아니라 초식동물에게 힘을 내도록 한다는 명분으로 동물성 음식을 먹이고, 억지로 근육을 단련하는 훈련까지 시키는 소싸움은 전통이 아닌 시대착오적 악습이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9일 오후 경북 청도군 화양읍 청도소싸움경기장에서 열린 ‘2022년 청도소싸움경기’에서 싸움소들이 뿔을 맞대고 힘을 겨루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9일 오후 경북 청도군 화양읍 청도소싸움경기장에서 열린 ‘2022년 청도소싸움경기’에서 싸움소들이 뿔을 맞대고 힘을 겨루고 있다. 연합뉴스

소싸움대회를 개최하는 지자체은 소싸움이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라고 주장한다. 또 스페인 투우처럼 소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소가 달아나면 경기가 끝나는 점에서 학대도 아니라고 말한다. 소싸움대회가 합법적인 도박과 관광객 유치 등을 통해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도 지자체들이 소싸움대회를 이어가는 이유다. 청도 소싸움대회를 운영하는 청도공영사업공사는 청도소싸움대회 최강자전에서 우권(경마장의 마권에 해당하는 표)으로 수익을 올린다.

소싸움대회를 개최하는 지자체는 모두 11곳(전북 정읍·완주, 충북 보은, 대구 달성, 경북 청도, 경남 창원·김해·함안·창녕·의령·진주)이다. 소싸움이 가장 활발히 열리고 있는 곳은 청도군과 진주시로, 청도군에서는 청도공영사업공사가 상설 소싸움 경기장을 운영하고 있다. 진주시에서는 겨울철을 제외하고 토요일마다 경기가 열린다. 그 외 지역에서는 1년에 한번 또는 두세 번 정도 대회가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소싸움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삼국시대 신라나 백제에서 전쟁에 승리했을 때 벌였던 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고려 말엽에 자생적으로 생겼다는 설이 있다. 주로 남쪽 지방에서 성행한 소싸움은 일제 강점기에 중단됐다가 1971년 진주에서 전국대회가 열리면서 부활했고, 1990년대부터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2010년 2월 18일 경북 청도군 각남면 구곡리에서 청도공영사업공사 직원들이 소싸움대회 개막을 앞두고 싸움소에게 타이어를 끄는 근력운동을 시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2월 18일 경북 청도군 각남면 구곡리에서 청도공영사업공사 직원들이 소싸움대회 개막을 앞두고 싸움소에게 타이어를 끄는 근력운동을 시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1세기 들어서는 소싸움이 동물학대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대회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정읍시에서는 녹색당과 시민들이 축산테마파크라는 이름의 상설 소싸움장 건설을 반대하는 1인 시위 등을 벌이면서 소싸움장 건설이 백지화된 바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는 다수 지자체가 대회를 취소하고, 관련 예산도 편성하지 않았다.

최근 정읍시가 올해 예산에 소싸움과 관련한 금액 2억8515만원을 편성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권대선 정읍녹색당 위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정읍시가 예산을 편성한 뒤 시민들과 함께 소싸움대회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농가들이 싸움소를 기르지 않고 폐업할 경우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조례를 제정하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전통문화라고 반드시 유지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이 같은 민속놀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녹색당 등은 회견에서 “민속 소싸움은 소를 이용해 논, 밭을 갈던 시기만 농사가 끝난 뒤 벌어지는 마을 축제의 일환이었다”며 “싸우기 싫다는 소들을 억지로 싸우게 하고, 돈을 거는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전통문화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1997년 3월 7일 제8회 전국 민속투우대회가 열린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천변에서 900㎏ 이상의 싸움소들이 힘을 겨루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3월 7일 제8회 전국 민속투우대회가 열린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천변에서 900㎏ 이상의 싸움소들이 힘을 겨루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반대 여론도 높아지고 있지만 이른 시일 내에 국회가 법을 개정할 것 같지는 않다. 소싸움대회를 개최하는 지자체들과 싸움소를 기르는 농가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동물보호단체와 녹색당은 일몰제 도입을 통해 농가들에 대비할 시간을 주고, 폐업하는 농가에 보상해주는 방식을 제시한다. 녹색당 등은 회견에서 “현재 싸움소를 키우고 있는 농가와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문제 등으로 인해 소싸움대회를 단시간 내에 없앨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소싸움 예외조항에 대해 일몰제를 적용하고 그 기간 찬반 양측이 함께 대안 마련을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통문화라 할지라도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다면 책과 박물관에 남겨두는 결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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