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니시다 기타로에서 비롯한 교토 철학은 일본 군국주의의 혓바닥이 됐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올 가을 개최하는 세계아리랑축전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아리랑 열창은 국내외에 유명합니다. 해외 초청의 문학제에서 시낭독이나 기조연설 뒤에 으레 아리랑을 불러서 청중을 울린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고은=나는 장차의 나라 이름을 아리랑공화국이라 짓고 싶고, 사실 내 아호의 하나가 ‘아리랑’이기도 하지. 아리랑은 내 밥이고 꿈이야. 아리랑도, 베토벤도 내 영혼의 매체이지. 음악은 영혼의 단백질이야.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음악시간이 싫었는데 2학년부터는 좋아했어. 뭐랄까, 낙후된 목구멍이 좀 틔었다 할까.

김형수=이 에피소드는 인간의 소리가 복잡한 신호체계나 심층문법의 도움이 없이도 내면을 실어 나르는 ‘야성적 자연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그래서 음악이 인간에게 내재된 ‘생물학적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고은=그렇기도 하겠네. 나는 음악 쪽보다 회화 쪽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의 그 순수 시간예술을 기피하고는 생은 생이지 않을 것이네. 플라톤이 음악 쪽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림 쪽인데, 아니 공자도 니체도 청각의 미학자 아니던가.

김형수=음악을 순수 시간예술로 정의하시다니! 이사도라 덩컨이 “아무도 바다의 운동이 옛날에는 어떠하였고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바닷가에 서서 물어보지는 않는다. 어떤 자연의 고유한 운동은 영원히 그 자연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선생님께서 몸에 음악을 지녔음을 알게 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고은=나뿐 아니라 인간의 음악성은 태생으로서의 인간성이지. 젖 뗄 무렵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시아버지나 남편 없는 자유의 시간에 “기차는 떠나간다. 보슬비를 헤치며… 정든 땅 뒤에 두고 떠나는 임이여…”를 부르는 것을 들은 뒤 삼촌들의 육자배기나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이나 ‘타향살이’ 말고는 바로 학교에서 배우는 음악시간의 노래로써 내가 듣는 자가 아니라 부르는 자가 될 수 있었네.

김형수=저도 들은 적이 있지만 가창력을 살 만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하하. 그럼에도 선생님은 분명히 인간의 감정이 리듬에 의해 만들어지고 리듬을 타고 조직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런 노래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

고은=그런데 그 노래가 다 일본 노래이고 일본 군가이기 십상이었어. 일본 국가 ‘기미가요’와 ‘우미유카바’ 그리고 그 밖의 사이조 야소(西條八十)라는 유명한 작사자의 군가들이야말로 전시교육의 중요한 과목이었어. ‘우미유카바’는 “바다에 가면 물에 잠기는 시체가 되고 산에 가면 풀에 묻힌 시체가 되더라도 대군주님의 곁에서 죽겠나이다.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김형수=섬뜩하네요.

고은=이런 자폭적인 노래를 어린아이들은 입에 달고 다녀야 했어. 일본 국가 ‘기미가요’는 해방 뒤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 곡에 맞춰 불렀던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과는 달리 “돌멩이 하나가 바위가 될 때까지”라는 욕망의 확대로 강조되지. 애국가는 백두산이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 동해물이 다 말라버리는 시간이라는 현재의 소진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 같은 장구한 시간으로서의 ‘영원토록’이 이렇게도 상반된다 그 말일세. 소멸의 시간과 확대의 시간은 다르지.

김형수=청각적 촉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습니다. 흔히 가락에 담겨 율동하는 어휘들은 속뜻을 가려듣기가 어려운데 말입니다. 한데, 소멸은 탄생을 낳지만 확대재생산은 낡은 현상을 지연시킨다는 지점에 이르면 이야기가 또 철학으로 넘어가는데요.

고은=몇 년 전 국제환경문학학회의 일본대회가 오키나와 류큐대학에서 열렸고, 그 뒤 일본 가나자와대학에서 열렸는데 나는 미국 시인 게리 스나이더와 함께 단골손님으로 기조강연을 했어. 두 번째인 가나자와에서 나는 우리 애국열사 윤봉길이 상하이 홍구공원 현장에서 붙잡혀 호송되어 그곳 가나자와 육군 대병영 안에 수감되었다가 처형된 현장을 둘러보았지.

김형수=강물이 울퉁불퉁한 밑바닥 때문에 높낮이를 갖듯이 제국의 가요도 일본의 심층에 있는 것을 무늬 놓겠지요?

고은=그곳은 일본에서 ‘안의 일본’이라 해서 태평양 쪽의 밖이나 겉이 아니라 동해 쪽의 안이고 속이 되지. 일본 근대후기 막부시대 조선통신사가 귀로에 들르는 특수지역이어서 조선 선비들의 시서화를 받으려고 일대의 일본 호사가들이 모여들기도 했어. 그런데 이 가나자와는 일본의 근세 및 현대문학의 선구적인 문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거니와 그보다 더 이곳이 이름난 것은 이곳 출신의 세계적인 선(禪) 학자인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와 일본의 세계적인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畿太郞) 때문이기도 해. 또한 일본의 고승 도겐(道元)의 유골이 그곳의 한 절간에 모셔져 있지. 도겐(道元)의 산수경(山水經)은 오늘날 생태이론의 국제적 담론에서 한 연원을 이루기도 하는데 그 유해 소재를 내가 알게 되었어. 그래서 스나이더를 거기로 끌고 가서 함께 도겐을 떠올리며 거기서 시 낭독 행사도 열었지.

김형수=도겐의 산수경은 참 매혹적인 것 같습니다. 게리 스나이더가 2000년 대산재단에서 행한 서울 국제문학포럼의 발제문에 아주 감동적으로 인용했어요.

고은=니시다는 이른바 일본 경도학(京都學)의 본산 같은 주인공인데 교토대의 현대철학은 독일 관념철학을 육화함으로써 자기의 사상적인 중심을 이루어낸 것이라네. 니시다의 첫 업적 <선(禪)의 연구>는 아직까지도 철학의 한 전범이라 할 만하지. 그 이래로 ‘절대의지의 자각’의 경지를 지나서 여러 분야의 특수문제로부터 근본원리를 구명하는 장엄한 동서융합적 형이상학을 완성하지. 거창하게 말하면 현대의 용수(龍樹·나가르주나)라 할까, 동아시아의 하이데거라 할까. 그 난해한 절대모순이 자기 동일이라니.

김형수=니시다 철학은 중요하다고 들었으나 일본을 알려는 의지가 박약했던 탓인지….

고은=그런데 이런 니시다 철학의 자기 확립 하나가 ‘근대의 초극’이야. 이것은 겉으로는 명치유신 이래 일본 근대화의 가속화가 이윽고 러일전쟁 이래 서구문명의 수혜자나 객체가 아니라 세계열강의 반열에 오른 나머지 그네들의 대동아공영이라는 명제나 대동아전쟁이라는 미국·영국과의 전쟁 명분이 동양 침략을 무찌르는 아시아주의를 표방하는데, 바로 니시다의 근대 초극은 서양 초극을 뜻하는 대동아 전쟁이나 아시아 제국주의를 지탱해주는 이론으로 기여하게 되지. 죽어라고 근대를 추구하다 그 근대를 넘어선다는 수작이지.

김형수=일본 정신의 근저에 있는 사조들과 또 충돌할 수밖에 없군요. 그 흉측한 노래의 거점이 되는 철학일 테니까요.

고은=지금도 니시다가 오고 가던 거리는 ‘철학의 거리’로 명명하는 교토 시내의 그 철학 분위기가 결국 일본 군국주의의 혓바닥이 되고 만 셈이지. 그 규모의 차원은 좀 다르지만 한국 현대철학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박종홍이 박정희 유신체제의 특보로 된 봉건적 출사(出仕)도 엇비슷한지 모르겠네.

김형수=박종홍도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했다 하여 저희 세대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했습니다.

고은=지금도 니시다의 고향 가나자와에는 대일본제국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오는 기념비가 우뚝 서 있고 일본 극우파의 한 성지로 되어 일본의 조선 강점이나 중국 침략과 아시아 각 지역의 유린을 신성한 사명으로 말하는 데 지칠 줄 모르고 있다네. 해방 뒤의 우리 속담에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은 일어선다”던 건 여전히 유효하지. 속담 속에는 지독한 수구적 악취도 숨겨져 있으나 그보다 더 놀라운 미래에의 예시가 꿈틀거려.

김형수=인문학적 이론 틀 같은 인식적·정신적 도구들도 총이나 대포와 같은 물질적 도구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순수 이론도 한 발짝만 헛디디면 곧장 제국주의 도구가 되잖습니까?

고은=전시 일본은 조선은 물론 아시아 전체에 대한 일본 주도의 공간의식을 조작했어. 그것은 16세기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임진왜란에 앞서 조선과 명나라를 침략할 구상을 상당한 기간 진행할 때부터 그 야망의 싹이 자랐어. 그 당시 동아시아까지 진출한 포르투갈의 마카오 세력에게 대륙 침공을 위한 해군력을 제공해 달라, 대륙 이권을 함께 배분하자고 제안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것이 20세기 벽두에 대동아라는 공간으로 실현된 셈이지. 일본은 일본 내지(內地)를 중심으로 한 이 아시아의 구심이고 아시아는 원심의 공간이 되는데 이것을 팔굉일우(八紘一宇)라 했어. 사방사유(四方四維)가 다 한집안이라는 것이지. 일본의 망상은 동남아에서 서남아인 인도까지 먹으려 한 적이 있으니까.

김형수=아찔합니다.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이 “줄지어 부딪쳐온 동방사상의 물결 하나하나가 국민적 의식과 맞부딪쳐 모래사장에 자국을 남기고 간 해변”이라 수사한 <동양의 이상>이요.

고은=그랬지. 그런 일본 사상계의 지도적인 철학자들이 한결같이 이 같은 일본 내셔널리즘의 강박이데올로기를 제창하고 있는 것이 놀라워. 일본뿐 아니라 그 당시 동북아시아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던 미키 기요시(三木淸)라는 철학자는 중일전쟁을 아무런 사상적 근거도 없이 ‘그것은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고 그것은 피 흘리는 병사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고 그것은 우리 자신이 살아갈 길’이라고 외쳐댔어. 이런 해괴망측한 억지 논리가 미키 철학의 단면이야.

김형수=저도 미키의 <철학입문>을 이와나미 문고로 읽었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광주 금남로 뒷골목 5·18의 흉터 위에서 사회변혁의 열정에 들떠 억지스럽게 해독한 최초의 외국어 서적인데…. 참 무분별했던 것 같아요. 저희 세대가 오해할 만한 철학자로 또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고은=사실 니시다와 함께 교토 철학의 쌍벽이라 할 다나베 하지메(田邊元)의 <종(種)의 논리의 변증법>도 니시다에 질세라 일본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였어. 그는 패전 후 <참회도로서의 철학>이라는 어안 벙벙의 사죄장도 내놓지. 전쟁 후반기 패색이 짙어지는 한 전환점인 저 북태평양 알류샨 열도의 아츠섬 일본군이 미군 상륙을 앞두고 전원 옥쇄를 단행하는데 이 옥쇄가 괌도 사이판도 그리고 오키나와로 이어지지. 바로 이런 시기를 앞두고 다나베는 ‘사생(死生)’ 강좌에 열을 올리는데 이 강좌는 늘 초만원 상태였어. 니시다와 번갈아가며 하는 철학강좌였어.

김형수=사생 강좌란 어떤 내용을 다루던 겁니까?

고은=이 사생관의 강의는 한마디로 자연적인 죽음, 인간적인 죽음과 이런 관념을 뛰어넘는 직접 죽음의 실천적인 죽음을 말하는데 바로 국가를 위한 죽음이 ‘결사(決死)’로 그 절정을 이루었어. 그것이 조선의 당대 명사들의 학병강권의 ‘계몽 강연’으로 옮겨왔어.

김형수=조선 유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당시 도쿄 한구석에서 문익환 청년은 신앙의 길을 찾고, 장준하 청년은 징병 때 무장 탈출할 계획을 세우며 송몽규, 윤동주는 날조된 조직사건의 희생양이 됩니다.

고은=그때가 학생징병제 실시 시기였어. 이런 일이 경도제대 철학이야말로 일본 현대철학의 오만한 긍지인 ‘순철(純哲)’이었고 그들 밖의 사유는 ‘위철(僞哲)’이라 폄하했어. 사실 이런 일본의 정신적 중심권에서 발신된 군국주의 사상은 일본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다음날 조선이나 대만 그리고 만주까지 직송되었지. 사상이 육군의 광기 그것이었으니까.

김형수=도취된 이성 활동이 제도화되는 과정은 인간의 유한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아, ‘눈 내리는 날’ 잠든 곰이 되고 싶다고 했던 시처럼 저도 잠들고 싶습니다. 제도 이전의 상태로 퇴화되어 곰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고은=내가 퇴학과 정학을 면하고 교실에 들어올 수 있었을 때 교장이나 교사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그들의 군모, 군복차림의 엄중한 표정 못지않게 격렬한 구호였어. 그것이 ‘본토결전(本土決戰)’ 혹은 ‘일억옥쇄(一億玉碎)’였던 것이지. 이제 일본 내지나 조선은 다 전쟁터가 된 것이고, 그 전쟁터에서 다 죽을 각오를 가지고 적을 격퇴해야 한다는 절대 명제 이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될 수 없었다네. 우리들 어린아이들도 ‘셋보쿠(切腹)’라는 배 자르는 것을 익히기도 했지.

김형수=전쟁가요가 식민지 아이들에게 흉기였음이 분명합니다. 노래가 칼이었어요.

고은=일본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명인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역시 파리 유학의 화가이기도 한 위인이지만 대동아전쟁 찬양시의 앞잡이이기도 하지. 반면 시인 가네코 미쓰하루(金子光晴)는 반전의 시인으로 현대일본의 한 양심을 세웠어. 그러나 ‘국가’라는 군국주의 수호 개념이 철학의 궁극 개념이 되고 ‘천황폐하’라는 것이 일본의 다신교 8만여 신들의 신국을 일원화한 유일신이며 현인신(現人神)이 됨으로써 극단적인 종교의 으뜸이 받드는 곳에서의 저항은 사라지고 어용만이 커지고 있었지.

김형수=지금 말씀하신 ‘저항’과 ‘어용’은 8만여 다신(多神)들이 유일한 현인신에게 굴종한 현상을 가리키는 겁니까?

고은=그 신들을 흡수통일한 것이지. 사실 막부시절 첫머리의 도요토미는 자칭 태양이었어. 자신에게 ‘간바쿠(關白)’라는 호칭을 붙여 천황 위의 실질로 삼지. 그래서 한때는 천황 따위의 존재 이유가 극히 희박해졌어. 심지어 천황이 죽은 뒤 새 천황이 천황 행세는 그럭저럭 하지만 즉위식 치를 내탕금이 없는 쪽박신세라 결혼식 없는 부부생활 비슷한 천황 노릇만 한 적도 있었지.

김형수=제국주의는 타자 폭력 이전에 수많은 내부 폭력을 전제로 하는가 봅니다.

고은=사실 도쿠가와(德川)막부는 백성들의 반찬 가짓수도 제한했어. 무, 배추에 간장만 먹기 마련이었어. 실제로 육류는 불교의 불살생계 전통 말고도 백성들의 저항력을 없애기 위한 체력조절 정책으로 금지품목이 된 것이지. 그래서 오늘날에도 일본인의 육식은 한국의 삼겹살 위력 앞에서 초라한 셈이지. 일본 스시라는 초밥도 에도(江戶)시대 하층민 노동자들이 부둣가에서 일하다가 날생선 조각에 밥 얹어 먹던 임시방편이었는데 오늘날 세계 유수의 고급식단으로 둔갑했어.

김형수=역사가 문화화되고 문화가 제도화되는 과정이네요.

고은=일본 황실이 현인신으로 섬겨지거나 일본 국민의 귀의처가 된 것이나 생명을 바칠 때 마지막으로 부르는 이름이 된 것은 명치유신 뒤의 일본 육군의 몇 번의 극우 쿠데타에 의해서 천황집중제의 군국신앙을 굳힌 이후의 행태이지. 그러니까 급조된 전통이라네. 그런데 뒷날 밝혀진 바로는 태평양 해전 일본병 전사자들 일부는 속으로나 겉으로는 마지막 외침은 ‘천황폐하 만세’이기보다 ‘어머니!’던가 아내 이름 ‘사다코!’던가 아들의 이름이었다 하더군.

김형수=이데올로기가 세포의 기억을 이길 수야 없겠지요.

고은=1944년 후반부터 다음해 전반 미국의 보잉 4발 폭격기가 내 고향 푸른 하늘 속을 주저하지 않고 지나가는 그 고공비행이 잦아졌어. 이미 하늘에는 일본의 힘이 전혀 없었지. 내 고향 바닷가 비행장에서는 쌍발 이엽기나 몇 대의 프로펠러 한 개의 전투기조차 납작 엎드려 숨겨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오직 전시 구호만 있는 지상의 분위기도 겉돌기 시작했어.

김형수=어제의 노래는 버려야 하고 오늘의 노래는 얻지 못한, 오직 저항적 잠재력뿐인 소년 시절이었겠습니다.

고은=할아버지는 어쩌다 귀한 배급 술에 취하는 날이면 ‘충무공이 환생할 것이다. 정씨 조선이 열릴 것이다’라며 정감록의 민중심리를 드러내는 일이 내 비밀이었어. 제삿날 밤에도 공습 대비로 기름 먹인 검정 종이를 문짝에 덮어 등화관제를 했어.

김형수=선생님 세대에 반일감정이 그렇게 숙명적일 줄 몰랐습니다. 저희에게는 박정희 시대가 그랬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상투적으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역할론을 언급하지만 사실상 저희들의 유소년기의 모든 찰나들 속에 개입된 군사독재의 음험한 그림자를 그런 언어로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신구세대의 정치적 불화가 정신적 운명으로 남아 있어요.

눈 내리는 날
눈 내린다
마을에서 개가 되고 싶다
마을 보리밭에서 개가 되고 싶다
아냐
깊은 산중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곰이 되고 싶다
눈 내린다
눈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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