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 소설가

자유도 많으면 체해, 난 자유인이기보다는 무중력 상태

사진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사진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웃을 때 순한 주름 짓는 그는, 음악뿐 아니라 연기·라디오 진행까지
수십년 변신에 변신 거듭하지만 정작 삶의 변화를 싫어한다는데

김창완을 만나러 가는 날, 가을비가 내렸다. 그러니까 첫 질문이 “비 좋아하세요?”가 된 건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장진주사(將進酒辭, 술 한잔 권하다)’의 삶을 사느라 운전도 안 한다는 풍문 속의 이 남자는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는 날씨가 딱 두 개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과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날. 13년째 아침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김창완은 자전거를 타고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멘트를 직접 쓰는 그는 내게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제일 놀란 건 학교 갔는데 어떤 아줌마가 내 이름 불렀을 때였어요. 가족이 창완아~ 하는 건 늘 들었는데 골목에서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니까 너무 놀랐죠. 가끔 자전거 타고 가다가 마라톤 하는 사람을 보면 등에 이름이 붙어 있잖아요. 그럼 내가 그걸 보고 ‘누구야’ 하고 불러요. 그럼 정말 너무나 놀라더라고. 크하하하.” 그가 웃었다. 순한 주름들이 밀려 올라왔다.

■ 그에게 날씨란, 자전거 탈 수 있는 날과 탈 수 없는 날

- 라디오 멘트 여전히 쓰세요?

“오늘은 뭐했냐면 어제 회의가 있어서 세종로 뒷길을 가는데 빵집하고 순두부집 있는 근처에서 중년 남자가 찾아오더니 인사를 하면서 다짜고짜 그래험 내쉬의 ‘시카고’를 틀어줄 수 있느냐고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요즘에 매체가 많이 있지만 낯선 사람이 디제이 만났다고 음악 청하는 장면이 참 정겨웠어요, 라디오는 라디오만의 풍경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오프닝이었어요. 안 쓸 때도 있어요. 오늘은 없습니다, 이렇게.”

- 하늘, 꽃, 바람처럼 자연에 대한 얘길 많이 하시던데. 자연에도 관심이 많고요.

“대부분 아침에 하루를 뉴스로 열기 쉬운데, 사실 뭐 큰일 난 거 아니고서야 그 아침이 그 아침 아니에요, 늘? 근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뉴스에 목말라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아침이 엄청난 신비인데 그런 것들을 새처럼 주워서 가져가려는 거죠. 뭐랄까, 나는 자연보호도 사람이 살려니까 자연을 보호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벌이나 꽃을 위해서 필요한 거지. 우리가 자연보호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꿀벌이나 산토끼가 건강검진을 받겠어요? 새도 엄청나게 수명의 차이가 있거든요. 엄청 오래 사는 새가 있는가 하면 수명이 짧은 새도 있어요. 물고기도 그렇고. 그런 걸 인간이 감정을 넣어서 슬퍼하고 해석하면 안돼요.”

- 술 마시고 싶어서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신단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그건 아니에요. 자전거뿐만이 아니라 무엇이 무엇을 위해서라는 말이 별로 안 좋은 거 같아요. 자전거는 그냥 자전거일 뿐이지. 걷는 것조차도.”

- ‘그냥’이란 말을 해서 생각났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잉여’라는 말을 많이 쓰는 거 아세요? 주말에 할 일 없이 <개콘> 보고 방바닥 보는 걸 ‘그냥 잉여적으로 살았다’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자기계발이나 스펙 쌓기 없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대한 강박과 자학이 있는 것 같아요.

“정확히 심리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자기 보호본능이 있는데 자기를 잉여라는 말로 깎아내리는 것 같아요. 자길 폄훼하면서 오히려 위로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을지 몰라요. 잉여가 주는 부정적 느낌으로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노력이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얼핏 하게 되는데, 말 하나로 자기를 위로하고 자기를 구제해낼 수 있고 자기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너무 자신을 간단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인간은 그거보다 훨씬 복잡한 존잰데.”

- 복잡할 때 산울림 노래를 들으면 위안받는 기분이 들어요. 누군가 다감하게 읽어주는 편지나 시 같은 느낌이죠. 소설도 쓰셨잖아요?

“사실 난 문학에 별로 관심 없어요. 그리고 뭘 해도 불안하고 자신 없고 늘 자기에게 불만이고 염세주의자인 사람이에요. 오늘도 여기 오기 전에, 잠도 덜 깬 얼굴로 거울을 보니까 긁다 말았는지 이마에 뭐가 허연 게 묻어 있고, 눈곱 같은 게 붙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세수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물로 눈만 이렇게. 푸하하. 눈만 씻다가 사전의향서를 써야 한다는 걸 생각해냈죠. 나한테 인공심폐술 하지 마라 이런 거 말이죠.”

- 인공심폐술요?

“그저께 상갓집에 갔다 와서 더 그럴 거예요. 젊을 때, 습작처럼 쓴 시 중에, ‘죽음을 박차처럼 차고 다닌다’란 시가 있어요. ‘박차’가 뭐냐면 구두 뒤축에 톱니모양처럼 붙은 건데 그걸로 말을 치면 말이 막 달리는 거예요. 청춘의 나를 달리게 하는 게 꼭 그 박차 같았어요. 근데 그 박차가 하필이면 내겐 죽음이었던 거예요. 죽음의 힘으로 청춘을 산다는 게 좀 그렇지. 늘 그런 분위기였어요.”

■ 동생 잃은 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처음 느껴

- 누구도 준비 없이 맞는 게 죽음이란 생각이 들어요. 2008년도에 동생을 잃는 슬픔을 겪으셨어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셨나요?

“모월 모일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는 게 큰 변화죠.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사는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몰랐던 거지.”

- 뭔가 새로운 걸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신 거예요? 가수, 디제이, 연기자, 뮤지컬 작곡까지 정말 많은 일들을 하셨어요. 음악계의 전설이었던 산울림의 김창완이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연기와 음악이 같다와 다르다 사이에서 고민을 참 많이 했다”란 얘길 읽은 기억이 나네요.

“요즘은 많이 같아졌어요. 10년 주기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상당히 흡사하다고 생각했다가 10년 지나니까 어우 이건 너무 다른 일인데? 하다가. 이쪽 손이 하는 걸 다른 손이 모르게 완전히 다른 일로 했어요. 최근에 와서는 다시 아! 이 일이 많이 다른 일이 아니다란 느낌이에요. 이런 인터뷰도 옛날에는 인터뷰이, 인터뷰어 입장으로 사정이 다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인터뷰를 하거나 당하거나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이것저것 그냥 심심해서 하는 거예요.”

- 배우 오지혜씨와의 인터뷰를 읽다가 한참을 웃었던 게 돈 많이 벌어서 술 많이 사먹으라고 얘기한 대목이었어요. 술을 그렇게 좋아하면 간이 견디기 힘들지 않나요?

“술 먹지 말란다고 안 먹지 않을 건데 병원 검사 같은 건 안 해요. 나는 요즘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하고 자기 병명을 아는 게 대단해 보이지 않아요. 저는 과학을 믿어요. 과학을 믿기 때문에 몸이 얼마나 복잡한지도 잘 알아요. 통증을 정 못 견디면 병원에 가겠지만 크게 처치를 원하지 않아요. 처치해서 된다면 되고 안되면 안되는 거지 뭐.”

- 현재의 삶에 만족하세요?

“나의 실수, 편견, 부족함까지 내가 나를 못마땅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 그것도 최선의 삶에 다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싹 빼면 자기 삶이 완벽해질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런 허접스러움과 못마땅함이 포함될 때 그제야 그 삶이 완성되는 거예요. 세상에 편견이 사라지고, 오해가 없으면 생이 완벽해질 것 같아요? 아닐 거예요. 예를 들어 여기 사랑 프로그램이 개발됐다고 해봅시다. 이걸 매번 업데이트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지게 그 프로그램을 깐다고 생각해봐요. 그런데 제 생각엔 그 프로그램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면 반드시 ‘질투’라는 요소를 넣을 것 같아요. 그래야 비로소 사랑이 완벽해지니까요. 그렇게 가장 고도로 프로그래밍된 게 지금 모두의 삶이라고요. 뭣 하나 빼거나 더할 게 없어요. 내가 성질이 무지하게 급해요. 근데 그것도 나고, 내 삶이에요.”

■ 연기·음악 10년 “그냥 심심해서 하는 거에요”

- 1977년도에 1집 나오고 나서 1년 동안 무려 4개의 앨범이 나왔어요. 그 4개의 앨범이 한국의 100대 명반에 다 들어가 있어요. 3일 동안 뮤지컬곡 14개를 작곡한 적도 있는데 성질이 급해서 그렇게 많이 만든 건 아닐 텐데요.

“어린이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가 대단했어요. 하룻저녁에 가사를 다 쓰고 20곡 정도를 감독이랑 여관방에서 정리했죠. 사나흘쯤 걸렸을 거예요. 집중력이 있다고 봐야겠지.”

- 당장 내일 스케줄은 죄다 헷갈리고, 며칠 후 일도 못 외우고 남은 빈 공간 안에 작품들을 넣는 건가요?

“그 빈 공간에는 술을 넣어요. 내가 음주 자아도취의 5단계 알려줄게요. 1단계, 난 똘똘해. 2단계, 난 매력 있어. 난 매력 있기 땜에 내가 대시하면 다 넘어올 거야. 3단계, 난 부자야. 이때 지갑이 막 열려요. 하하. 4단계, 천하무적. 싸움질을 해요. 이거 영국에서 조사한 거예요. 5단계, 투명인간. 난 이 단계도 가봤어요. 이게 음주 자아도취 5단계인데 이 스텝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술은 과학이기 때문이에요. 에틸알코올이 만들어내는 심리 신체적인 변화. 정확해요.”

술은 과학, 음주 자아도취 5단계서 벗어날 수 없어

- 술 먹고 곡도 쓰세요?

“써본 적이 있어요. 근데 연주도, 곡도, 말이 안돼요. 좋은 작품은 아이디어나 문학적인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그게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건 희생이에요. 박완서 선생님 글이나 모든 좋은 글들을 만나면 뭉클한 느낌이 있는데, 거기엔 희생이란 요소가 있어요. 잔혹극이든 희극이든 다 그래요.”

-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를 듣다가 내가 문득 외로운 거란 걸 알게 됐어요. 내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거잖아요.

“그 노랠 만들 당시 내게 가장 큰 위로는 노래였어요. 비닐장판에 딱정벌레 어디로 가는지 알까, 아마 모를 거야, 걸음도 잊은 채 평생 헤맬 거야, 라고 썼던 노랫말이, 기타소리가, 내게 위로가 됐어요. 그렇게 하나마나한 글을 써놓고 내가 스스로 자족했던 거지. 지금도 나를 위로하는 건 노래예요. 동생의 죽음에 위로가 됐던 것도 그렇고.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란 노래. 최근에 발표한 노래로는 ‘금지곡’이 좋아요. 제목이 ‘금지곡’이에요. 들려줄게요. (그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노래를 들려주었다. 더 잘 들려주기 위해 컵 안에 휴대폰을 넣어가면서! 그리고 그림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 정물의 주제가 영원한 삶이에요. 죽은 시체지만 그림 안에 영원히 살아 있는 거예요. 이게 당시 정물화풍의 하나였는데 스틸 라이프 시리즈인 거죠. 산해진미로 식탁에 올라와 있는 게 다 죽음을 상징하는 거야. 죽음으로 떡 벌어지게 차려져 있다는 거예요. 얼마나 섬세하게 죽음으로 삶을 찾아 넣었는지 봐요. 옛날 산울림의 서정하고 다른 정서로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직 시작은 안 했지만.”

-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를 읽으니,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되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아름다움이 보이는 나이라고 해야 하나.

“아름다움이라…. 벌이 꿀 찾는 거 아닌가. 아름다움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의미 부여를 많이 하고 착한 사람 신드롬처럼 아름다움 강박증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진화론적으로 우리는 악취 풍기는 쪽보다는 향기로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어 있을 거예요.”

- 여전히 모르는 건 모르는 채 담아두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우리 애가 가르쳐준 거예요. 아이랑 같이 자전거를 타는데 산길에서 타면 도랑도 있고 굉장히 무서워요. 근데 걔는 잘 타요. 나는 잘 못 건너가겠는데. 하루는 그 도랑 앞에 멈춰서 어떻게 건너가냐고 했더니 애가 그러는 거예요. 언어학 책을 봤는데 사람의 언어능력이라는 건,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담아둘 수 있는 거래요. 모르는 단어를 모르는 채로 넣어둘 수 있는 능력이란 거죠. 뭔 소리냐고 했더니 여기가 위험한지 아닌지를 미리 판단하면 자전거에서 내리게 된대. 하지만 그걸 위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난 훌러덩 넘어지더라고. 하하. 그 다음에 혼자 갔을 땐, 그냥 자전거에서 내렸어요.”

- 김창완이란 사람은 어쩐지 뭘 해도 부자연스럽지가 않고, 뭘 해도 무리한다는 느낌이 없어요.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근데 책에 보면 “나는 실제로 자유로운 사람도 아니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하셨더라고요. 그리고 또 “자유는 조화로움과 다르지 않다. 말은 날개를 달고 비마가 되어야만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갈매기가 더 크고 넓은 날개를 가지고 더 높은 곳을 날아야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말은 초원에서 바람을 마주보고 서 있을 때 자유로운 것이며 갈매기는 분홍색 발을 배 밑에 감추고 바람에 몸을 맡기며 두둥실 떠 있을 때 자유를 타고 있는 것이다”란 말이 있어요. 자유에 대한 무척 인상적인 견해였어요.

■ 매일 소심하고 바쁘게 살면 나처럼 착하게 보여

“과식을 하면 체하잖아요? 내가 자유에 얹혔을 때도 너무 많은 자유가 내 몸을 상하게 했어요. 죽을 수 있는 자유까지를 꿈꾼다면 그건 정신까지 망가진 상태인 거지. 나처럼 성격이 불같고 소심하고, 굉장히 바쁘게 살면 오히려 느긋하고 여유 있어 보여요. 평소엔 엄청나게 바빠요. 보통 2시쯤 잔다 하더라도 6시 반에는 일어나야 자전거로 방송국에 가죠. 오후에 드라마 있으면 촬영하고, 주말에는 공연하고, 이동 중에는 안대랑 귀마개 하고 자고. 그렇게 사는 거예요 매일, 소심하게. 매일, 바쁘게. 그렇게 살면 이렇게 느긋하고 착해 보이고 그렇게 된다니까. 하하. 자가발전 같은 건 없는 거예요. 떠밀려서,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성장이 있는 거지. 자유도 그런 거예요. 많은 자유가 있다고 자유로운 게 아니라니까. 나 스스로 너무 재미있어서, 한다는 건 정말 헛소리라고 생각해요.”

- 자연을 워낙 좋아해서 농가주택 같은 곳에 사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나 자연 안 좋아해요. 도시가 좋지. 겨울에 춥고 여름에 아휴, 난 자연 안 좋아해. 서래마을, 홍대 앞, 술집 있는 데가 좋지. 계곡물 소리 너무 시끄러워. 시끄러운 거 너무 싫어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자연보호는 꽃이나 벌 좋으라고 하는 거지 내가 거기 살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 연기부터 음악까지 그렇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사람이 사람 변하는 건 정말 싫어하나 봐요. 16년 동안 같은 매니저와 일하고 계시잖아요. 두 분, 남매 같아 보여요.

“늘 똑같은 일상을 어릴 때부터 꿈꿨어요. 사건 사고는 안돼요. 일상이 들쭉날쭉하면 오히려 생활이 더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작품도 안되고. 사람들은 실연당하고 힘든 일 생기면 더 많은 영감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나를 움직이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게 나를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주는 사람들. 전 변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언제나 김창완을 ‘가수’라 쓰고 ‘아저씨’라 읽었다. 이 말 못할 친근함의 역사는 산울림의 노래를 좋아하던 내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와 나는 어느 지점에서 생각이 달랐다. 어떤 의문들은 뭉게구름처럼 솟아올랐다. 그러나 안쓰럽게도 우리는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대부분의 것을 배운다. 그날, 술자리에서 나는 김창완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요즘 나는 ‘나’로 시작하는 말이 아니라 ‘너’로 시작하는 말들에 더 관심이 간다. ‘내’가 중요해서 온통 ‘나’로 시작되는 주어만 쓰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그래서 ‘내가 말이야’보다는 ‘너는 말이지’로 서두를 여는 말들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런 내게 늦은 술자리로 이어진 이 인터뷰의 어떤 풍경이 유독 가슴에 와 닿았다. 술을 마시다가 실수로 손가락을 베인 이 남자가 “어우 씨! 아파라!”를 외칠 때, 누군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그의 손에 척척 발라줬다. “이건 뭐, 연고가 아니라 핸드크림이지만 이거라도 발라요, 아저씨.” 16년 된 그의 매니저였다. 그녀가 바로 그의 무중력 상태를 유지시키는 존재라는 건 그 순간 자명해졌다. 그와 헤어지고 술 취해 바라본 새벽 3시의 달은 참 아름다웠다. 내일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방송국까지 출근할 수 있을까? 가을이니 코스모스를 보며 산울림의 ‘너의 의미’를 들어야겠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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