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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한국 온 난민들의 ‘인권 현실’

에티오피아 난민신청자인 요다노스(28)의 체류기간 연장 등 불허 결정통지서 용지가 너덜너덜 찢어지고 해어져 있다. 3개월마다 체류 연장 도장을 받아야 하는 이 낡은 종이 한 장이 난민신청자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신분증이다. 찢어지면 재발급받으면 되겠지만 법무부는 종이 한 장 재출력해주는 것에 인색하다.

에티오피아 난민신청자인 요다노스(28)의 체류기간 연장 등 불허 결정통지서 용지가 너덜너덜 찢어지고 해어져 있다. 3개월마다 체류 연장 도장을 받아야 하는 이 낡은 종이 한 장이 난민신청자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신분증이다. 찢어지면 재발급받으면 되겠지만 법무부는 종이 한 장 재출력해주는 것에 인색하다.

지난 11일 서울 상도동에 있는 난민지원센터 ‘피난처’에 에티오피아 난민 2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에티오피아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반정부 활동을 펼치는 ‘Ginbot7’의 회원들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연다. 에티오피아의 현실을 한국에 알리는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카사훈(47)과 타리쿠(33)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탄압을 피해 2012년 한국에 왔다. 하지만 난민 자격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차와 방법은 까다로웠다. 언어장벽과도 싸워야 했다.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난민지원센터인 피난처와 무료법률지원 변호사의 도움에 의지해야 했다. 난민인정 심사와 기각, 재인정 심사를 거쳐 지루한 법정 소송까지 이어졌다. 천신만고 끝에 입수한 에티오피아에서의 활동자료 덕분에 2015년에야 난민인정을 받았다. 꼬박 3년이 걸렸다. “강제로 쫓겨나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그때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로 뭉쳐서 지난 11일 에티오피아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반정부 활동을 펼치는 ‘Ginbot7’의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에티오피아의 정치 현실을 한국에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서로 뭉쳐서 지난 11일 에티오피아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반정부 활동을 펼치는 ‘Ginbot7’의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에티오피아의 정치 현실을 한국에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7년째 난민인정 심사와 소송을 진행 중인 야레드(39)의 부친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야레드는 2011년 정부 초청으로 부친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방문 일정이 끝났지만 반정부 시위를 해왔던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야레드는 자신 때문에 고국에 있던 여동생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나중에야 접했다. 가슴이 아팠다. 에티오피아에 남아 있던 부인 아디스알렘(29)은 2년 전 남편이 있는 한국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열 살 난 아들은 결국 고국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경기도 포천에 둥지를 틀었다. 1평 남짓한 월세방이었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아서 행복했다. 막노동과 야간 공장 일을 하며 생계를 해결했다.

희망을 향해 지난 9일 에티오피아 난민 카사훈씨의 3살난 딸인 지포라가 집에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지포라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에티오피아다.

희망을 향해 지난 9일 에티오피아 난민 카사훈씨의 3살난 딸인 지포라가 집에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지포라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에티오피아다.

그러다 한 달 전쯤 부인이 취업비자 없이 일하다 출입국사무소 단속에 걸렸다. 일주일 동안 갇혀 조사를 받았다. 출입국사무소는 그에게 벌금 100만원을 부과했다. 부부는 저축해 놓은 돈이 한 푼도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였다.

소식을 접한 동료 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벌금을 대신 내주었다. 그렇지만 아디스알렘은 난민신청자에게 주는 G1비자를 결국 출입국사무소에 빼앗겨야 했다. G1비자가 없이는 난민인정 재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생계를 위한 일마저 할 수가 없다.

“한국에 온 대다수의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고국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출입국사무소에서 열리는 난민심사 인터뷰 시간은 단지 10분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어찌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외쳐도 보지만… 지난 20일 에티오피아 난민 주최로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난민이 ‘난민들은 국가와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담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외쳐도 보지만… 지난 20일 에티오피아 난민 주최로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난민이 ‘난민들은 국가와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담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난민들은 차별과 무관심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피난처’의 오은정 간사는 “난민들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치와 신념을 위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언어소통과 우리의 인식부족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며 “이들의 인권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난민의날이었다. 난민은 정치·종교적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새 세계로도 진입하기가 어렵다. 집, 마을, 국가는 물론 인간관계마저 잃었다. 그들은 경계 밖에서 대기 상태에 머물며 문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한다. 한국은 1994년부터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했으나 난민법은 2013년 제정됐다. 지난해까지 신청자는 2만2792명이었으나 인정자는 3%인 672명에 불과했다. 지난해엔 7524명이 신청했으나 1.54%인 98명만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세계 난민인정률은 3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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