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박하얀 기자    김정화 기자
경남 지역 소도시의 한 호텔에서 일하다 그만둔 권희연씨(가명)가 셔츠와 바지를 입고 조명 아래 섰다. 권씨가 일하던 호텔에선 여직원들에게만 짧은 치마 유니폼을 지급하고 착용을 강요했다.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시리즈는 노동자들이 실제 작업할 때 입는 옷을 착용하고 사진을 촬영했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다른 옷을 입었다. 노동자가 ‘입고 싶은’ 옷 대신 회사가 ‘입히고 싶은’ 옷은 필요 이상의 통제 수단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회사가 임의로 지정한 유니폼이 아닌, 입는 사람의 편의를 고려하면서도 단정한 옷은 불가능하지 않다. 성동훈 기자

경남 지역 소도시의 한 호텔에서 일하다 그만둔 권희연씨(가명)가 셔츠와 바지를 입고 조명 아래 섰다. 권씨가 일하던 호텔에선 여직원들에게만 짧은 치마 유니폼을 지급하고 착용을 강요했다.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시리즈는 노동자들이 실제 작업할 때 입는 옷을 착용하고 사진을 촬영했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다른 옷을 입었다. 노동자가 ‘입고 싶은’ 옷 대신 회사가 ‘입히고 싶은’ 옷은 필요 이상의 통제 수단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회사가 임의로 지정한 유니폼이 아닌, 입는 사람의 편의를 고려하면서도 단정한 옷은 불가능하지 않다. 성동훈 기자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⑤]

모든 작업복에는 계급이 담긴다.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모자를 쓰고, 어느 사원증을 매는가는 그 사람이 사회와 조직에서 어디쯤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업복 중에서도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주로 입는 ‘유니폼’은 독특하다. 회사 이름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유니폼은 구성원에게는 소속감과 자부심을, 고객에게는 신뢰감을 준다. 유니폼은 고객과 직원을 구분하고, 평상복과 작업복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하지만 성별과 계급에 따라 차이를 둔 유니폼은 기능적·상징적 유용성을 넘어 필요 이상의 통제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시리즈의 마지막은 유니폼에 대한 이야기다. 앞선 회차에서 다룬 작업복의 문제들은 사측의 무관심이나 너무 적은 피복비 책정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았다. 유니폼은 달랐다. 회사는 유니폼에 관심이 많았지만, ‘입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을 주로 고려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유니폼이 회사의 이미지를 상징한다는 건 결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항상 단정해 보이는 이들의 유니폼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어봤다.

땀 차는 재킷, 딱 붙는 치마…누구를 위한 옷인가요

권희연씨(가명)가 호텔 재직 당시 지급받은 유니폼. 상의는 흡습성이 떨어지는 폴리에스터 소재에 허리가 타이트하게 재봉돼 착용감이 좋지 않았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딱 달라붙는 H라인 치마는 끝단이 무릎 위로 한 뼘 올라올 정도로 짧았다. 결국 권씨는 사비 7만원을 들여 회사가 지정한 유니폼 판매 사이트에서 바지를 사 입었다. 성동훈 기자

권희연씨(가명)가 호텔 재직 당시 지급받은 유니폼. 상의는 흡습성이 떨어지는 폴리에스터 소재에 허리가 타이트하게 재봉돼 착용감이 좋지 않았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딱 달라붙는 H라인 치마는 끝단이 무릎 위로 한 뼘 올라올 정도로 짧았다. 결국 권씨는 사비 7만원을 들여 회사가 지정한 유니폼 판매 사이트에서 바지를 사 입었다. 성동훈 기자

지난해 경남 지역 소도시의 한 호텔에서 일하다 그만둔 권희연씨(가명)는 입사할 때만 해도 ‘호텔리어’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유명 관광지에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규모도 크지 않은 비즈니스호텔이었지만 손님들이 편히 머무르도록 돕는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직원들은 각자 깔끔하면서도 활동성이 괜찮은 정장 형태의 옷을 갖춰 입고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여성 직원들을 상대로 ‘복장 지침’이 내려왔다. “유니폼을 맞춰 입으라”라는 지시였다. 상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은 유니폼 사진 몇장을 여성 직원들에게 보여주면서 의견을 물었다. 견본 사진 속 옷들은 하나같이 촌스러웠지만 직원들은 그나마 편해 보이는 디자인을 골랐다. 하지만 상사가 추천한 디자인이 채택됐다.

갑작스러운 유니폼 착용 지침도 그랬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여성 직원들은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딱 달라붙는 H라인 치마는 길이도 짧아서 끝단이 무릎 위로 한 뼘 가까이 올라왔다. 당시 권씨는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일했다. 하지만 작은 호텔이라 안내데스크 담당일지라도 안내 외에 여러가지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고객이 요청한 물품을 가지고 객실로 올라갈 일이 많았고, 청소부(룸메이드) 일손이 모자랄 경우엔 침대 시트를 교체하거나 침구 정리까지 해야 했다.

이런 일을 할 때 몸에 딱 붙는 짧은 치마가 편할 리 없었다. “걸을 때 불편한 건 물론이고, 허리를 숙이면 치마가 딸려 올라갔어요. 너무 답답해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일하는 사람도 많았죠.”

남성 직원들은 변함없이 각자 취향에 따라 편한 옷을 사서 입었다. 회사는 한술 더 떠 “주는 게 없어 미안하다”면서 남성 직원들에게만 피복비를 지급했다. “여자는 당연히 치마”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이곳에서 권씨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눈요깃거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회사에 바지 유니폼은 왜 주지 않느냐고 묻자 “바지는 개별 구매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바지를 입고 싶으면 각자 사서 입으라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바지 하나에 7만원이었다. 권씨는 “매일 입어야 하는데 당연히 하나로는 부족했다”면서 “그런데 치마는 그냥 주고 바지는 따로 사 입으라는 건 ‘주는 대로 입으라’는 뜻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사비를 들여 산 바지를 입고 출근한 날, 회사 대표는 그를 위아래로 쓱 훑어보더니 한마디 했다. “치마 안 입었네? 다리에 문신이라도 했나?”

‘입고 싶은’과 ‘입히고 싶은’의 간극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⑤]

같은 일터에서 같은 일을 해도 성별에 따라 다른 옷을 입도록 강요하는 관행은 유니폼이 어떻게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차별과 통제는 여성이 많이 종사하는 호텔, 은행, 항공사, 백화점 등 서비스 업계에서 주로 나타난다. 고용 형태가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많은 곳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권씨가 근무했던 호텔에는 여성 직원들은 굽 높이가 ‘5㎝ 이상’인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지침도 있었다. 신발은 각자 사서 신어야 했다. “돈을 아끼려고 3만원짜리를 샀는데 매일 9시간을 신고 있으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발이 아팠어요. 다리에 쥐가 나서 평소 하던 운동도 못할 정도였고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직원들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발을 감싸는 면적이 좁고 바닥이 얇은 하이힐은 오래 신으면 각종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하이힐을 신으면 체중의 90%가 발 앞코에 쏠린다. 발과 종아리, 허리 등 곳곳에 통증이 오고, 걷다가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질 위험도 높다. 권씨도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심하게 휘면서 관절이 튀어나오는 무지외반증을 앓았다.

호텔 안내데스크에서 일했던 권희연씨(가명)가 신은 신발들. 권씨는 회사의 지침에 따라 굽이 5cm가 넘는 구두를 신다가 무지외반증이 심해져 슬리퍼를 따로 샀다. 이마저도 데스크를 벗어날 때면 하이힐로 갈아신었다. 회사가 지급하는 작업복과 장구가 입는 ‘사람’을 고려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성동훈 기자

호텔 안내데스크에서 일했던 권희연씨(가명)가 신은 신발들. 권씨는 회사의 지침에 따라 굽이 5cm가 넘는 구두를 신다가 무지외반증이 심해져 슬리퍼를 따로 샀다. 이마저도 데스크를 벗어날 때면 하이힐로 갈아신었다. 회사가 지급하는 작업복과 장구가 입는 ‘사람’을 고려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성동훈 기자

김승섭 교수 연구팀의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연구결과’(2018년) 보고서를 보면 권씨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하루 종일 하이힐을 신고 서서 일하는 노동자 28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무지외반증 발병률이 20~49세 여성 평균(건강보험공단 데이터 기준)보다 67배 높았다. 발바닥 근육에 통증이 생기는 족저근막염 발병률은 15.8배 높았다. 다리(하지정맥류 25.5배), 허리(요통 5.3배), 척추(척추측만증 55.5배) 질환 발병 가능성도 높았다.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⑤]

그가 일했던 호텔의 안내데스크에는 의자도 없었다. 권씨는 안내데스크에 서 있을 땐 굽 낮은 슬리퍼를 신었지만, 데스크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기면 눈치가 보여 하이힐로 갈아 신어야 했다. 회사는 왜 굳이 하이힐을 신도록 강요했을까? 권씨는 “키가 크면 외관상 좋아 보이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통일성 때문이라는데…왜 여자만 입어야 하나요?”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⑤]

금융권도 오랫동안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입도록 강요해온 분야이다. 최근 몇 년 새 주요 시중은행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근무 복장을 자율화했지만, 신용협동조합이나 농협,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은 여전히 여성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입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영남 지역의 한 신협 지점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해온 채수경씨(가명)는 “대면 업무를 주로 하는, 하위 직급 여직원은 반드시 유니폼을 입는다”고 말했다. “여직원은 2년에 한번 유니폼을 받았어요. 남직원은 셔츠와 정장을 각자 사서 입고 피복비로 30만원을 받았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행이라더군요.”

채씨가 일하는 곳의 여성 직원들은 치마와 바지 중 선택해서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유니폼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유니폼은 대면 서비스를 하는 하위 직급 여성이면 반드시 입어야 한다. 남성 직원은 같은 대면 서비스를 하는 하급직이더라도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서울 테헤란로의 빌딩 숲. 이준헌 기자

서울 테헤란로의 빌딩 숲. 이준헌 기자

채씨는 획일화된 근무복, 즉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게 생긴다고 했다. 그는 “유니폼을 입느냐, 안 입느냐에 따라 고객은 물론 동료들의 대우도 달라진다”고 했다. “관리직으로 일할 때는 사복을 입었는데, 창구직으로 발령을 내면서 ‘내일부터 유니폼을 입으라’라고 하더라고요. 근무복으로 사람의 계급을 나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근무복을 입은 사람은 사소한 사람, 그래서 하대해도 된다는 식의 문화가 있고요.”

채씨가 받은 옷은 질도 형편없었다. 겨드랑이처럼 몸이 접히는 부위는 금방 땀이 차고, 몇번 세탁하면 금세 보풀이 일어나는 값싼 옷은 직업인으로서의 자존감마저 낮아지게 했다. 채씨는 “유니폼이 정말 소속감이나 통일성을 강조한다면 왜 여직원만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부당한 조직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작업복에는 기업의 기대가 투영된다.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유니폼을 강요하는데,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요구는 반영하지 않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치마 유니폼은 입는 사람에게 불편한데도 오로지 잘 보이기 위한 것이다. 여기엔 여성의 일이 남성의 일을 보조하는 데 그친다는 잘못된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돼 있다”면서 “건강한 조직이라면 당연히 직원이 업무에 적절한 복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크루부터 점장까지, 맥도날드 유니폼엔 ‘계급’이 있다

맥도날드 크루가 입는 유니폼. 김유경씨(가명)는 “예전에 받았던 반팔 칼라 티셔츠는 소매가 너무 짧아 패티를 구울 때 기름이 팔에 다 튀었다”면서 “일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입는 ‘여름용 티셔츠’만 생각하고 만든 옷 같았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맥도날드 크루가 입는 유니폼. 김유경씨(가명)는 “예전에 받았던 반팔 칼라 티셔츠는 소매가 너무 짧아 패티를 구울 때 기름이 팔에 다 튀었다”면서 “일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입는 ‘여름용 티셔츠’만 생각하고 만든 옷 같았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유니폼에는 성별에 따른 차별뿐 아니라 위계에 따른 차별도 존재한다. 해외에서 들어온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라고 예외는 아니다.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은 작업 환경이나 노동 강도보다는 지휘 체계를 분명히 하고 계급을 구분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도권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4개월간 크루(일반 직원)로 일한 적이 있는 김유경씨(가명)는 자신이 받았던 옷의 특징을 ‘없다’는 말로 요약했다. 반팔 티셔츠는 신축성이 없고, 통기성도 없었다. 그리고 바지엔 주머니가 없었다. 휴대폰은 물론 어떤 물건도 근무 중 소지하지 말라는 게 회사의 방침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머리 고무줄이나 안경, 안약 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넣어둘 주머니가 없어 너무 불편했다”고 말했다.

바지 뒤쪽에 주머니가 있긴 했는데 뜯지 못하게 윗부분이 박음질로 막혀 있었다. 주머니 모양을 냈을 뿐 주머니 기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맥도날드는 직원 유니폼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를 묻는 경향신문 질의에 “식품 안전은 맥도날드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면서 “이물질 혼입 등의 위생 문제를 방지하고, 조리 기구 등에 옷이 걸려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막고자 유니폼에 따로 주머니를 두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⑤]
맥도날드 직원들이 받는 유니폼 하의. 바지 앞뒤에 주머니 모양을 냈지만 뜯지 못하게 윗부분이 박음질로 막혀 있어 주머니 기능은 없다. 직원들은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을 넣을 수 있는 곳이 없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맥도날드는 위생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유니폼에 주머니를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하얀 기자

맥도날드 직원들이 받는 유니폼 하의. 바지 앞뒤에 주머니 모양을 냈지만 뜯지 못하게 윗부분이 박음질로 막혀 있어 주머니 기능은 없다. 직원들은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을 넣을 수 있는 곳이 없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맥도날드는 위생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유니폼에 주머니를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하얀 기자

맥도날드 직원은 말단인 크루에서부터 중간 관리자인 팀리더, 매니저, 점장 등으로 서열이 구분된다. 크루와 팀리더는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카운터와 주방, 그릴을 오가면서 주문과 요리와 설거지 등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한다. 이들은 모두 칼라가 있는 셔츠를 입지만 차이가 있다. 팀리더가 입는 셔츠는 크루와 달리 단추가 달려 있어서 좀 더 정중한 느낌을 준다. 팀리더인 이영민씨(가명)는 “손님이 컴플레인을 제기할 때, 팀리더는 옷이 다르니까 ‘직급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크루한텐 막말을 해도, 팀리더에겐 그렇게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팀리더가 입는 옷이 좋은 것도 아니다. 셔츠는 무조건 맨 윗단추까지 채우고 바지 안에 넣어서 입어야 하는데, 바지에 신축성이 없어 앉았다 일어나면 셔츠가 삐져나온다. 역시 팀리더로 일했던 홍규진씨(가명)도 옷에 주머니가 없는 게 제일 불편했다고 말했다. “셔츠 왼쪽 가슴에 작은 주머니가 딱 하나 있었는데, 메모지나 펜을 넣어두면 몸을 숙일 때마다 주르르 다 쏟아졌어요. 차라리 바지에 주머니가 있어야죠.”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머리카락이 빠져나오지 않게 머리망을 착용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음식 위생, 식품 안전이다. 이 중요한 ‘원칙’은 음식을 만들고 매장을 관리해야 하는 직원들에겐 큰 불편함이 된다. 맥도날드 유니폼엔 상· 하의 모두 주머니가 없다. 어떤 것도 넣어다니지 말라는 뜻이지만, 직원들은 “위생이 가장 중요한 건 맞지만 일하다 보면 주머니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작업자의 편의가 하나도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성동훈 기자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머리카락이 빠져나오지 않게 머리망을 착용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음식 위생, 식품 안전이다. 이 중요한 ‘원칙’은 음식을 만들고 매장을 관리해야 하는 직원들에겐 큰 불편함이 된다. 맥도날드 유니폼엔 상· 하의 모두 주머니가 없다. 어떤 것도 넣어다니지 말라는 뜻이지만, 직원들은 “위생이 가장 중요한 건 맞지만 일하다 보면 주머니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작업자의 편의가 하나도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성동훈 기자

맥도날드는 주기적으로 유니폼을 교체한다. 하지만 직원들 편의를 높이려는 게 교체 이유는 아닌 듯하다. 직원들은 “요구사항을 전달할 창구도 없고 말을 해도 반영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뀌는 건 디자인과 색깔 위주이고, 입는 사람에게 중요한 재질이나 기능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2016년부터 최근까지 근무했던 권주원씨(가명)는 거의 매년 유니폼을 받았다. 그와 동료들이 원하는 기능을 갖춘 옷은 한번도 없었다. “최근에 유니폼이 상아색, 남색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상아색 옷은 기름때나 먼지가 묻으면 바로 티 나거든요. 옷을 받을 때마다 ‘이번에는 왜 이 재질이냐, 디자인은 또 왜 이 모양이냐’라고 하면서 욕했죠. 회사가 별것 아닌 걸로 사람 서운하게 만들어요.”

맥도날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맥도날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김유경씨는 “예전에 받았던 반팔 칼라 티셔츠는 소매가 너무 짧아 패티를 구울 때 기름이 팔에 다 튀었다”면서 “일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입는 ‘여름용 티셔츠’만 생각하고 만든 옷 같았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업종에는 아르바이트생이 많다. 아르바이트생이 많은 작업장에서 사업주의 관심은 작업복의 질에까지 미치지 않는다. ‘일을 금방 관둘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좋은 옷을 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주당 근로 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아르바이트 취업자는 157만7000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좋은 작업복을 고민한다면…“입는 사람의 목소리부터”

지하에 있는 환경기초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하에 있는 환경기초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시리즈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일했다. 지하, 건설 현장, 제조업 공장, 산속, 학교 급식실, 호텔 안내데스크, 은행,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등. 공통점이 있다면 ‘입는 사람’의 목소리와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작업복은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위협했다. 불티가 튀는 현장에서 화학섬유로 된 옷을 지급받은 이들, 사이즈에 맞지 않는 보호구를 지급받은 이들은 사고 위험에 노출됐다. 산속에서 불 끄는 이들은 걸으면 밑창이 빠지거나 발톱이 빠지는 신발을 신었다. 학교급식 조리사들은 음식의 위생은 지키지만 자신의 안전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옷을 입었다.

안전의 범위는 넓다. 일터는 물리적으로 안전할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 옷의 기능보다는 차별과 통제의 의도가 더 큰 유니폼을 지급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안전하게 일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⑤]
사이즈에 맞지 않는 용접복을 입고 일하는 여성 용접사 (사진 위), 신체 보호는 거의 되지 않는 위생복을 입고 일하는 급식 조리사 (사진 아래). 권도현 기자

사이즈에 맞지 않는 용접복을 입고 일하는 여성 용접사 (사진 위), 신체 보호는 거의 되지 않는 위생복을 입고 일하는 급식 조리사 (사진 아래). 권도현 기자

그간 작업복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있었다. 원·하청 노동자에게 다른 색깔의 신분증을 지급하고, 여성에게 치마를 강요하고, 제대로 된 안전장구를 충분히 지급하지 않는 등의 불합리하고 규정을 벗어난 관행들이 질타를 받았다. 그럼에도 왜 개선되지 않았을까?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불감증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 때 방역복 입은 의료진을 많이 봤잖아요. 더 좋은 재질의 옷을 주거나 노동시간을 줄여서 의료진이 제대로 숨을 쉬게 하는 방식을 고민하기보다는 ‘#덕분에’ 챌린지 같은 것으로 그들의 노동에 대해 ‘리워드(보상)’를 해줬죠. 사회적으로 ‘널 인정해, 너에게 고마워’라는 이야기를 했을지언정 좀 더 논의할 생각을 못했던 거죠. 작업복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⑤]

작업복은 사회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간다.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관심이 없는 사회에서는 이들이 안전한 작업복을 입게 될 가능성이 낮다. 여성은 일보다 외양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가 업무 친화적인 작업복을 입긴 어려울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질이 나쁜 작업복을 받게 된다.

이 위원이 말했다. “작업복은 나랑 붙어있는 거잖아요. 차별, 안전, 위계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보지 못했던 측면이 있어요. 자본이나 국가가 먼저 나서서 해주면 좋겠지만…. 다양한 사회적 위험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더 내야 해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환한 핀조명 아래에서 작업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이 조명 아래 서 있는 모습. 성동훈 기자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환한 핀조명 아래에서 작업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이 조명 아래 서 있는 모습. 성동훈 기자

※ 작업복 기획팀
김한솔·김정화·박하얀(스포트라이트부), 성동훈· 권도현(사진부), 최유진· 모진수(뉴콘텐츠팀), 박채움·이수민(데이터저널리즘팀)

<시리즈 끝>

치마 안 입었다고 “다리에 문신했니?”···유니폼이 보여주는 차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⑤]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작업복을 찾아라’ 숨은그림찾기를 통해 더 다양한 노동자들의 작업복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시리즈 기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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