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시계 반란으로 어둠 속의 스트레스 불면

박효순 기자

‘잠이 보약인데….’ 40대 후반의 직장인 정모씨는 연말을 맞아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밤에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졌다. 다음날 할 일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며 새벽까지 비몽사몽이기 일쑤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자주 졸고, 어느 날은 지각까지 해서 눈총을 받다 보니 성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될까봐 또 걱정이다. 참다 못해 병원을 찾은 정씨에게 의사는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성 불면증’이란 진단을 내렸다.

[건강]생체시계 반란으로 어둠 속의 스트레스 불면

늦은 밤까지, 혹은 새벽까지, 심하면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며 뒤척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어쩌다 한두 번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것은 수면리듬이나 인체 컨디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나 반복적으로 적절한 수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생체리듬이 깨지면서 정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수면시간은 피곤에 지쳐 있는 몸과 두뇌를 회복시키고 피로물질을 분해하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기회다. 숙면은 기억을 강화시키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수면이 단순한 휴식의 차원을 넘어 지난 일에 대한 갈등을 해소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적극적인 과정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잠은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이며 하루 동안의 생각과 기억을 정리해주면서 생명유지 기능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3명 중 1명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불면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증상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많고, 65세 이상이 되면 보통 사람보다 1.5배 더 불면증에 시달린다.

불면증이란 잠들기가 어려워 1시간 이상 뒤척일 때, 자다가 자주 깨고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며, 늦게 잤는데도 새벽에 일찍 깨어 정신이 말똥말똥할 때, 자고 나도 잔 것 같지 않고 피곤한 경우 등을 말한다. 이런 증상들이 단독 혹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다음날 활동을 하는 데 지장을 줄 정도로 양적·질적으로 충분히 잠을 못 자는 상태를 말한다.

수면의 패턴과 코골이 및 수면무호흡증 등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수면다원검사 장면.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수면의 패턴과 코골이 및 수면무호흡증 등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수면다원검사 장면.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불면증의 원인은 복잡 다양하다. 우선 질병이 문제가 된다. 관절염, 심장병, 고혈압, 폐경, 임신, 위식도 역류, 만성 신부전, 천식, 뇌졸중 등 대부분의 신체 질병은 잠을 방해한다. 또 이런 질환 때문에 복용하는 약물은 불면증을 가중시킬 수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정신분열병, 알코올·약물 중독 등 정신질환도 단잠을 방해하는 요소다.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등은 숙면을 직접 방해하는 수면질환에 속한다. 심리적·사회적 스트레스가 쌓여 제대로 풀지 못하면 잠을 못 이룸과 동시에 일에 대한 강박관념과 불안증 등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심계항진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불량한 수면환경이나 불규칙한 수면주기, 과도한 낮잠 등도 한몫한다.

이처럼 잠을 못 자면 우선 피로 해소가 되지 않을뿐더러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이 떨어지고 정서도 불안정해지기 쉽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낮에 졸리고 피곤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나 산업재해의 발생률도 높아진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수면부족이 가중되면 사람은 점점 예민해지고 신체적 불균형이 초래되며 환각이 생기기도 한다”며 “동물실험에 의하면 수면을 박탈시키면 음식섭취는 증가하지만 체중은 감소하고, 체온이 떨어지며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사망한다는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밤이 긴 겨울철에는 수면장애가 다른 계절에 비해 잘 나타날 수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신원철 교수는 “우리 몸의 생체시계가 긴 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데다, 잠을 자고 잠을 유지하도록 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햇빛 부족으로 분비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추운 날씨와 건조한 공기 등도 불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고 밝혔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윤형근 교수는 “불면증은 전문가의 평가와 진단, 불면증 해소법 및 수면위생 교육, 비약물치료(잘못된 수면습관 교정, 이완 요법 등을 포함한 인지행동 요법), 약물치료·뇌파치료 등으로 충분히 치료하거나 개선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무리하게 잠을 청하지 말고 일어나 조용한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하다가 졸리면 다시 가서 눕는 습관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로복지공단 인천산재병원 정신과 최성규 과장은 “스트레스가 많은 연말연시에 음주를 많이 하면 알코올의 각성효과 등으로 수면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며 “가슴이 뛰면서 거의 한잠도 못 자고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잦고 이로 인해 극도의 피로감과 불안증세가 몰려온다면 정신과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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