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법 ‘자기 사랑’

이계성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요즘 상영중인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수명’의 대사를 들으면서 두 가지 장면이 눈앞에 중첩됐다.

한 장면은 장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한 고등학생의 모습이다. 그 학생은 바로 필자 자신으로, 때때로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고 죽도록 싫어지는 자조(自嘲)의 감정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다. 해답을 알 수 없는 고민이 나를 가두고 괴롭혀 그 이유가 너무나 알고 싶었다.

[의술 인술]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법 ‘자기 사랑’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를 힘들게 했던 자조의 해답은 ‘자기 사랑’에 있음을 알게 됐다. 내 자신과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책이 자조의 원인이었으며, 거대한 세상 앞에 선 내 자신이 아무리 작고 초라하고 부족해도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에 대한 해법이라는 것을 오랜 고민과 공부 끝에 찾아낸 것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경쟁과 불안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 스스로 갇혀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우리 사회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기대치가 높아 스스로를 작고 초라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럴수록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그것이 사회의 근본 구조가 바뀌기 전까지 본인과 가정과 우리 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다.

자기 사랑의 실천은 자신과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생각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타인의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주의해야 할 점은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운다는 말이 욕구 충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욕구는 아무리 채워도 끝이 없으며 채우는 그 순간뿐이어서 공허한 느낌은 욕구를 채우는 시도로는 절대 충족시킬 수 없다.

또 다른 장면으로,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중독치료 모임 ‘녹색반’의 한 중독 환자가 떠올랐다. 그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아프고 외로워서 술을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술이 나를 더 외롭고 아프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술이 편안하게 달래준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지만 어느새인가 술에 ‘갇혀서’ 더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술, 담배, 인터넷 게임, 마약 등은 잠시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어 주지만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상처의 경험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다보면 항상 일어난다. 이럴 때 술과 담배, 게임 등에 지나치게 빠지면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한 분노와 원망만 키우고 자신의 행동은 정당화하는 불합리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달래준다는 명분 아래 술, 담배, 인터넷 게임 등을 너무나 쉽게 허용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마음의 상처와 괴로움이 나를 죽이거나 크게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을 느끼지 않고 잊으려고, 피하려고, 없애려고 하는 선택들이 자신을 파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자신의 아픔에 대해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처에 매몰돼 자신만의 성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파괴해가는 이들을 진료실 안팎에서 만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혼자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같이 나누고 돕고 이끌어주며 소통하고 공감하다보면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 회복되고 자기 스스로를 가둔 자신만의 성으로부터 탈출해 나갈 수 있다. 세상에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늘 공허감과 불행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 이겨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누군가가 주위 어딘가에 있다는 것에 눈을 떠야 한다.

‘수명’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 ‘승민’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빼앗기지 마, 네 시간은 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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