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과 골목이 정원으로…마당이 있는 삶, '공유정원'이라면 가능

장회정 기자

‘마당 딸린 집이 없어도 마당이 있는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최근 서울 명동에 생긴 녹녹타임워크 명동은 이 발상에서 출발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맞은편에 자리한 타임워크명동 빌딩의 1000㎡ 규모 옥상은 조경설계사무소 랩디에이치 최영준 소장의 설계를 통해 여러해살이풀이 바람에 일렁이는 정원으로 거듭났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싼 고층빌딩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옥상 정원은 요가 수련장이 되었다가, 식물장터와 가드닝클래스 실습장이 되었다. ‘공유정원’의 좋은 예다.

빌딩 숲 옥상에서 ‘공유정원’으로 거듭난 녹녹타임워크 명동. 요가클래스, 디제잉과 함께하는 식물마켓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장회정 기자·앤로지즈 제공

빌딩 숲 옥상에서 ‘공유정원’으로 거듭난 녹녹타임워크 명동. 요가클래스, 디제잉과 함께하는 식물마켓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장회정 기자·앤로지즈 제공

무조건 확장해 주거 공간을 넓히는 용도로 쓰이던 베란다를 아웃도어 용품으로 꾸며 야외 기분을 내거나 반려식물을 기르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밀집주거에 거주하는 도시인들이 필요할 때 내 집 정원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녹녹타임워크 명동을 조성한 앤로지즈 조영민 대표는 ‘공유정원’을 “방치된 건물 옥상 공간에 정원과 인프라를 조성해 이용자에게는 정원과 관련된 경험을 제공하고 건물주에게는 버려진 공간에 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녹녹타임워크 명동을 기획·조성한 앤로지즈 조영민 대표는 “다산 정약용이 가드닝을 하고 시를 썼던 죽란서옥의 역사가 담긴 명동의 낭만을 되살릴 수 있는 정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장회정 기자

녹녹타임워크 명동을 기획·조성한 앤로지즈 조영민 대표는 “다산 정약용이 가드닝을 하고 시를 썼던 죽란서옥의 역사가 담긴 명동의 낭만을 되살릴 수 있는 정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장회정 기자

앤로지즈는 자사 브랜드 녹녹이 가진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유정원 기획 및 조성을 하는 한편 위탁 운영도 담당한다. 근거리 공유정원을 추천하고 조경 공사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정원 및 조경 정보 플랫폼 앱도 개발 중이다.

“건물이 상할까봐 옥상 정원 조성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오히려 자외선이나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보다 건물의 노화를 줄일 수 있으며 에너지 냉난방 효율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경량토를 사용하고 나무보다는 수경 요소가 없는 식물 위주로 식재하면 하중의 부담도 없습니다.”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가 2018년 작업실 옥상에서 시도했던 ‘공유정원’. 옥상 정원을 중심으로 유료 회원제 커뮤니티가 절찬리에 진행됐다. 사진|서울가드닝클럽 제공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가 2018년 작업실 옥상에서 시도했던 ‘공유정원’. 옥상 정원을 중심으로 유료 회원제 커뮤니티가 절찬리에 진행됐다. 사진|서울가드닝클럽 제공

옥상을 공유정원으로 활용한 사례는 또 있다. 2018년 당시 프리랜서였던 이가영씨는 작업실로 쓰던 서울 매봉역 인근 주거용 빌라 옥탑 공간에 개인 정원을 만들었다. 실내 10평, 실외 15평의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인근 원룸이나 아파트 거주자들과 공유하면 좋겠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퇴근 후 나는 가드너가 된다”는 카피를 걸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참여자 모집공고를 내자 예상외로 참가 요청이 쇄도했다. 그렇게 모인 회원 15명은 각자 원하는 식물로 박스 정원을 꾸미며 가드닝 활동을 함께했다. 여행담을 공유하고 ‘토크 프로그램’도 열면서 옥상 정원을 중심으로 한 유료 회원제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당시 회원들에게 ‘정원계의 위워크(글로벌 공유오피스)’라 설명하며 확대 계획을 밝혔던 공유정원 프로젝트는 현재 이가영 대표와 권오은 실장이 이끄는 도시콘텐츠기획집단 서울가드닝클럽으로 발전했다. 서울가드닝클럽은 식물·정원을 기반으로 한 공간 설계와 시공을 하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한다. 그동안 서울역7017 초속정원 설계·시공, 폭스바겐@남산피크닉 조경디자인·시공,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허브가든 가드닝콘텐츠 기획·플랜트디자인 및 시공,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무대연출, 제주도 WeSa 선흘 조경디자인 및 시공 등의 작업을 해왔다.

서울 노들섬의 식물문화공간 식물도 앞에 서울가드닝클럽이 조성해 놓은 미니 화단. 1평 공간에서도 충분히 정원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샘플이다. 권오은 실장이 허브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장회정 기자

서울 노들섬의 식물문화공간 식물도 앞에 서울가드닝클럽이 조성해 놓은 미니 화단. 1평 공간에서도 충분히 정원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샘플이다. 권오은 실장이 허브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장회정 기자

2019년 노들섬 개장에 발맞춰 식물문화공간 ‘식물도’를 기획하고 입주한 서울가드닝클럽의 쇼윈도 앞에는 박스 화단이 나란히 놓여있다. 1평(3.3㎡) 화단을 들여다보니 당근이 머리를 빼꼼 내밀고 이에 질세라 순무(빨간 무)도 튼실한 속살을 과시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주황색 마리골드가 만발했다. 작은 공간에도 충분히 화단을 꾸릴 수 있다는 도시정원의 샘플인 셈이다. 이 대표는 “마리골드는 예쁘기도 하지만, 벌레를 쫓는 역할을 한다”며 “여기에 벌과 나비를 부르는 밀원식물, 틈틈이 따먹을 수 있는 허브를 함께 심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동반자 식물을 함께 심는 것. 이른바 서울가드닝클럽의 시그니처 식재 스타일(컴패니언 플랜팅)이다. 정원과 텃밭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아름다우면서도 생산성이 있는 ‘도시형 정원’을 추구한다. 서울가드닝클럽에서는 식물별 역할과 기능에 따라 함께 심으면 좋은 매칭법을 알려주는 교육도 실시한다. 300명이 넘는 회원을 모았던 공유정원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인해 주춤한 상황. 대신 소규모 가드닝 프로그램, 요가·명상을 가드닝과 결합한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가드닝의 문화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연말까지 ‘식물도’에서 진행하는 ‘파밍시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  도시농업과 정원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엿볼 수 있는 행사다. 노들섬을 함께 둘러보는 주말 나들이 코스를 짜도 좋겠다. 사진|서울가드닝클럽 제공

연말까지 ‘식물도’에서 진행하는 ‘파밍시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 도시농업과 정원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엿볼 수 있는 행사다. 노들섬을 함께 둘러보는 주말 나들이 코스를 짜도 좋겠다. 사진|서울가드닝클럽 제공

권오은 실장은 “코로나19가 공유정원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부추긴 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가드닝클럽은 연말까지 도시농업과 정원의 공존을 조명하는 ‘파밍시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원’ 행사를 지속한 뒤, ‘위드 코로나’ 시대에 맞춘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시민 텃밭’이라는 역사를 가진 노들섬에서 도시정원에 대한 다양한 제안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탐나는 공유정원 후보지를 물었다.

“요식행위로 소나무를 꽂아 놓은 도심 속 공개공지, 흡연 공간으로 전락한 건물의 저층부 유휴공간에 접근하고 싶습니다. 데커레이션 개념의 조경이 아니라, 우리에겐 도심지에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거든요.”

광고인 출신인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왼쪽)는 조경가이자 도시전문미디어 요즘도시의 편집장도 맡고 있다. 권오은 실장은 조경디자이너 겸 문화콘텐츠 기획자로 활약 중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다. 사진|장회정 기자

광고인 출신인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왼쪽)는 조경가이자 도시전문미디어 요즘도시의 편집장도 맡고 있다. 권오은 실장은 조경디자이너 겸 문화콘텐츠 기획자로 활약 중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다. 사진|장회정 기자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조영민 대표와 조경대학원을 거친 이가영 대표는 광고인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트렌드를 파악하는 촉이 남다른 이들은 ‘자연은 공짜’라고 여기는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세대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그 안에서 색다른 경험과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는 점을 읽어냈다. 2030세대 참가자를 대상으로 분갈이 워크숍 등을 진행한 권오은 실장은 “(요즘 세대는) 화분 하나를 채우는 것에도 개성과 정체성을 반영해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식물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가드닝을 통해 긴장된 일상에서 틀어져 있던 시간성을 회복하는 경험을 하면서 감동 수준의 감정 변화를 느끼는 듯하다”며 도시인에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그게 꼭 교외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비용을 지불하고 정원을 기반으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트렌드를 서울가드닝클럽은 ‘라이트 아웃도어 시장’이라 명명했다.

녹녹타임워크 명동에서 열린 소규모 가드닝 클래스. 조영민 대표는 “마치 내집정원을 즐기듯, 턴테이블로 재즈음악을 들으며 차나 와인 한 잔과 함께 실내 가드닝 실습을 해보는 2:1 클래스였다”는 후기를 전했다. 사진|앤로지즈 제공

녹녹타임워크 명동에서 열린 소규모 가드닝 클래스. 조영민 대표는 “마치 내집정원을 즐기듯, 턴테이블로 재즈음악을 들으며 차나 와인 한 잔과 함께 실내 가드닝 실습을 해보는 2:1 클래스였다”는 후기를 전했다. 사진|앤로지즈 제공

조 대표 역시 관상용이 아닌 ‘콘텐츠가 있는 정원 경험’ 제공을 목표로 한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플랜테리어(플랜트+인테리어)’를 적용한 다중이용시설도 인기를 더하고 있다. 판매시설 못지않게 조경에 힘을 준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의 실내정원은 인스타그램 촬영 명소로 유명해졌다. 조 대표는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고 매장 곳곳에 화분과 꽃을 배치해 쇼핑과 식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한 일본 유니클로파크 요코하마베이점을 눈여겨봤다. 그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그 기능을 고민하기 시작한 오프라인매장의 해법으로 정원 조성을 제시했다. 정원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보여주거나 소비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심 오피스의 공실도 환기, 조명, 채광이 해결되면 실내 정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사원복지를 위해 구내식당을 만들 듯, 정원도 그 일환이 될 수 있어요. 또한 그 공간을 휴일에는 인근 주민에게 개방한다면 지역 커뮤니티와의 교류 접점이 될 수도 있죠. 학교 공간이나 교화 시설에서도 공유정원이 단지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육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공유정원은 일찍이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서 ‘커뮤니티 가든’ 형태로 존재했다. 도심 공터의 무차별적 개발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그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공간에서 얻은 농산물은 푸드 마일리지를 줄이는 친환경 로컬푸드로 적극 소비된다.

이웃과 함께 공유하는 골목정원 조성에 앞서 목공예 수업을 받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주민들. 골목정원에는 각종 채소와 꽃을 심을 예정이다. 사진|해운대구 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이웃과 함께 공유하는 골목정원 조성에 앞서 목공예 수업을 받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주민들. 골목정원에는 각종 채소와 꽃을 심을 예정이다. 사진|해운대구 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에서는 지금 ‘골목정원’ 만들기가 한창이다. 정비사업으로 폐가가 철거된 부지에 당초 주차장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차량 진입이 제한적인 골목이라는 한계 때문에 정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마당이 없는 저층 주거지가 밀집돼 있어 정원을 가꿀 수 없었던 주민들은 적극 환영했다. 주민들은 해운대구 도시재생지원센터를 통해 정원 식재에 대한 이론 교육을 받고 있다. 목공예 수업 시간에는 골목정원에 놓을 조경 용품도 제작했다. 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는 “향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환경 및 주거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올해 스타트업 쿠퍼스테이션의 ‘땅스(TTHANKS)’는 도시농부 46명과 함께 청계산 농장에서 기후농업을 실천했다. 사진|쿠퍼스테이션 제공

올해 스타트업 쿠퍼스테이션의 ‘땅스(TTHANKS)’는 도시농부 46명과 함께 청계산 농장에서 기후농업을 실천했다. 사진|쿠퍼스테이션 제공

정원을 통해 개인적인 위안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농업을 실천하는 가드닝 커뮤니티도 있다. 올해 스타트업 쿠퍼스테이션의 ‘땅스(TTHANKS)’는 도시농부 46명과 함께 청계산 농장에서 밭을 일궜다. 참가자는 20대 학생부터 30대 직장인, 아이를 둔 가족 단위까지 다양했다. 화석연료나 비료, 석탄을 사용하지 않고 토양이나 지하수 오염을 불러올 수 있는 해악을 끼치지 않는 것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농사의 기본 원칙. 공동 창업자인 박두병 대표는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비건이었는데, 그동안 사먹어야 했던 채소를 자기 손으로 직접 가꿔서 먹는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았다”고 전했다. 1계좌당 배정된 3평 공간에 토마토를 비롯한 치커리, 케일, 고수 등 다양한 채소를 심었다.

공동 창업자인 박두병 대표는 땅스를 “밭에서 하는 트레바리”라고 소개했다. 사진|쿠퍼스테이션 제공

공동 창업자인 박두병 대표는 땅스를 “밭에서 하는 트레바리”라고 소개했다. 사진|쿠퍼스테이션 제공

땅스를 “밭에서 하는 트레바리(독서 모임 커뮤니티)”라고 소개한 박 대표는 “농업, 가드닝, 영속농업(퍼머컬처), 기후농업, 독서, 네트워킹파티 등을 접목시켜 자연과 먹거리가 있는 커뮤니티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속농업과 환경, 도시 등을 위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을 선정하는 2021러쉬 스프링프라이즈 최종 후보 명단(전 세계 54개팀)에 오른 땅스는 벌써 내년 농사를 준비 중이다. 러쉬코리아의 펀딩을 통해 참가자의 혜택은 늘고 규모는 커진다. 내년 3월 공고를 내고 4월에 첫 삽을 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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