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도한놀이·한국어 간판·교복 체험…한국에 진심인 일본 Z세대들

이유진 기자
일본 Z세대 여성들에게 유행인 일명 도한놀이(渡韓ごっこ, 한국놀이). 호텔 같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한국 음식과 콘텐츠를 소비하며 마치 한국 여행의 하룻밤을 재현하며 노는 놀이다.

일본 Z세대 여성들에게 유행인 일명 도한놀이(渡韓ごっこ, 한국놀이). 호텔 같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한국 음식과 콘텐츠를 소비하며 마치 한국 여행의 하룻밤을 재현하며 노는 놀이다.

드라마로 시작된 일본 내 한국 문화 붐이 대중문화 영역뿐만 아니라 패션, 뷰티, 음식 등 전방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일본 한류 전문가들은 한국 문화가 ‘붐’을 넘어 시대 흐름의 한 가닥으로 자리 잡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일본에서 이 흐름에 가장 빠르게 올라타고 있는 세대가 Z세대다.

■ 일본 Z세대, 한국 상상 여행에 빠졌다

일본 쉐라톤 그랜드 도쿄베이 호텔은 11월 한 달간 ‘코리안 페어’를 열었다. 호텔은 한국 음식으로 채운 뷔페, 한국식 소주와 안주를 즐기는 포차, 한국식 온돌 숙박까지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투숙객과 호텔 이용객을 위한 거문고, 해금 공연과 태권도 시연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노래에 맞춘 K팝 커버 댄스 무대로 흥을 돋웠다.

일본 쉐라톤 그랜드 도쿄베이 호텔은 지난 11월 한달 간 한국식 뷔페, 포차, 숙박 체험을 할 수 있는 ‘코리안 페어’를 진행했다. 쉐라톤 그랜드 도쿄베이 호텔 제공

일본 쉐라톤 그랜드 도쿄베이 호텔은 지난 11월 한달 간 한국식 뷔페, 포차, 숙박 체험을 할 수 있는 ‘코리안 페어’를 진행했다. 쉐라톤 그랜드 도쿄베이 호텔 제공

특히 코리안 푸드 뷔페는 꽤나진심이 느껴지는 메뉴로 구성됐다. 호텔 메뉴에 수육, 잡채, 김밥, 갈비는 물론 대구찜, 낙지볶음, 골뱅이무침 같은 외국인에게는 생소한 한식도 과감하게 추가했다. 디저트는 달고나, 뚱카롱처럼 트렌드를 가미한 메뉴가 주를 이뤘고 한국 술을 이용한 망고막걸리 치즈케이크, 막걸리 무스, 복숭아 참이슬 젤리 등 이색 디저트로 젊은 고객들의 입맛을 노렸다.

코리안 푸드 뷔페를 방문한 현지 이용객은 “매운 음식이 많았지만 한국 여행하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어 즐거웠다”고 평했다. 이번 코리안 페어를 도운 인천 쉐라톤 그랜드 호텔 측은 “일본 측 제안으로 코리안 페어를 협업했고 성황리에 마쳤다. 음식 조리법 제공은 물론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한 화상 한식 코스 요리 강좌도 열었다. 감태, 들깨, 참기름 등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는 따로 공수해 주기도 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쉐라톤 그랜드 도쿄베이 호텔의 코리안 페어는 Z세대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渡韓ごっこ(도칸곳코, 이하 도한놀이)’를 의식해 기획된 이벤트다. ‘도한놀이’는 신조어로 뜻풀이를 하자면 한국 여행 놀이다. 호텔 같은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한국 음식과 콘텐츠를 소비하며 마치 한국에서 여행을 하는 듯한 하룻밤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시야마 칸나(23)는 “양념치킨, 김밥, 핫도그, 한국 음료와 스낵, 우유맛 튜잉 캔디 등이 도한놀이 준비물”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좋아하는 K팝 아티스트의 영상을 보면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면 마치 한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본 호텔 중에는 한국풍 룸을 마련해 ‘도한놀이’ 숙박 패키지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운 곳도 생겼다. 사진| 에스리드 호텔 SNS

일본 호텔 중에는 한국풍 룸을 마련해 ‘도한놀이’ 숙박 패키지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운 곳도 생겼다. 사진| 에스리드 호텔 SNS

새로 문을 연 일본 호텔 중에는 아예 한국풍 룸을 따로 마련해 ‘도한놀이’ 숙박패키지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운 곳도 있다. 지난 7월에 새로 생긴 오사카 에스리드 호텔은 4개의 한국 룸을 만들어 도한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숙박객에게는 한국산 스낵과 마스크를 제공하고 K팝 뮤직비디오를 마음껏 볼 수 있는 프로젝터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설치했다고 홍보한다. 어메니티 역시 한국산 샴푸·린스로 완비했다.

초·중·고생 사이에서는 한복 체험에 이어 한국 교복 체험이 인기다. 이용자들은 국내 예술고등학교 교복을 선호한다. 실제 예술고에 재학 중인 K팝 아이돌 멤버들의 학교 생활이 노출되고 또 인기 그룹이 무대 의상으로 교복 콘셉트를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유행이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안에 한국 세계관을 만든 인플루언서도 화제다. 교토에 사는 나나는 정기적으로 ‘오늘의 한국 밥상’을 만들어 게재하면서 현지인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는 “과거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는 ‘아줌마 드라마’라는 인식이 강해 당시에는 한국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K팝에 빠져 한국 여행을 다녀온 것을 계기로 한국 문화에 푹 빠졌다”고 말한다. 그가 한국 밥상을 직접 차리고 공개한 시점은 하늘길이 막혀 한국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부터다.

일본인 나나는 한국 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에 자신의 SNS에 ‘오늘의 한국 밥상’을 차려 게재한다. 사진| 나나 SNS

일본인 나나는 한국 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에 자신의 SNS에 ‘오늘의 한국 밥상’을 차려 게재한다. 사진| 나나 SNS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한국의 거리, 경치, 분위기예요.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이곳저곳 방문했던 곳을 떠올리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가고 싶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한국 기분을 낼 수 있는 식기, 젓가락, 숟가락, 물병, 컵, 밥상 등을 구입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한국 소품이나 식재료는 일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한인타운이 아닌 일반 슈퍼에서도 코리안 코너를 꾸며놓을 정도로 유행이거든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상상력에 의지한 도한놀이가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Z세대 트렌드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도만 아야카는 Z세대의 특징인 ‘세계관 재현’으로 설명했다. 그는 “Z세대는 패션, 메이크업 등으로 타 세계관 재현에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놀이의 폭이 제한됐고 한국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한국 세계관을 만들어보자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욕구로 도한놀이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주쿠 지하철에 설치된 <왜 나는 ‘한드’에 빠졌을까?>라는 제목의 넷플릭스 광고판. 일본인들에게 글로벌 OTT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를 보기위한 주된 플랫폼이 됐다. 요시자키 에이지 제공

신주쿠 지하철에 설치된 <왜 나는 ‘한드’에 빠졌을까?>라는 제목의 넷플릭스 광고판. 일본인들에게 글로벌 OTT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를 보기위한 주된 플랫폼이 됐다. 요시자키 에이지 제공

■ 날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는 한류

일본 오사카에서 27년간 한국 레스토랑 ‘아리랑’을 운영했던 한국 반찬 전문점 ‘테레즈 키친’의 안경자 사장은 한식에 대한 인기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일본 내 한식의 대중화는 10년 단위로 바뀌고 있어요. 30년 전에는 호르몬(곱창구이), 아키니쿠(고기구이), 냉면 정도였죠. 그러다 한류가 막 생기기 시작한 20년 전부터 매운 김치와 마늘을 찾기 시작했어요. 30년이 흐른 지금은 젊은 세대들의 입맛을 저격하는 요즘 음식이 대세예요. 한국 사람들과 입맛이 별다르지 않게 됐어요. 특히 넷플릭스 등을 통해 본 드라마 속 한국 음식을 많이 찾죠.”

안 사장이 뽑은 현지 인기 한식 1위는 짜장면이다. 영화 <기생충>에 인스턴트 짜장라면이 등장하면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과거에는 짜장면을 두고 “이상한 검정색 면”이라며 ‘불호’를 외쳤던 일본인들이다. 안 사장이 가장 격세지감을 느끼는 한식이다. 2위는 발효김치. 과거에는 겉절이 위주의 김치를 먹었지만 요즘은 깊은 맛을 내는 발효김치도 많이 찾는다.

“특히 젊은 주부들이 슈퍼에서 시판용 김치를 사기보다는 직접 김치를 담가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해요. 저에게 ‘김치 요리교실’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곤 합니다.”

한국 문화를 즐기는 세대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일본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주일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은 ‘젊어진 한류’를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국문화원 조은경 홍보팀장은 “드라마, 영화, K팝 등 다양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두고 4차 한류라고 하는데, 한국문화원 이용 고객의 연령대만 보더라도 확실히 젊은층으로 퍼진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조 팀장은 한류가 젊은층에까지 흡수된 원인을 ‘부모의 영향’과 ‘히트 콘텐츠의 지속적인 등장’의 상호작용으로 보고 있다.

“젊은 이용객들은 드라마를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한국 콘텐츠를 접했다는 말을 많이 해요. 실제로 행사에 어머니가 자녀를 데리고 참가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렇다보니 젊은이들에게는 한국 문화가 매우 익숙하면서 재밌는 문화가 됐고 또 이를 충족시킬 만한 히트 콘텐츠가 계속 나오다보니 한류가 젊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류 팬인 시부야 요시코가 촬영한 지난 11월27일 도쿄 코리안 타운 신오오쿠보의 풍경들,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할 정도로 인파로 가득하다.

한류 팬인 시부야 요시코가 촬영한 지난 11월27일 도쿄 코리안 타운 신오오쿠보의 풍경들,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할 정도로 인파로 가득하다.

이런 시류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곳이 바로 도쿄도 내 코리아타운 신오오쿠보다. 한국 관련 상점과 한식당이 즐비한 신오오쿠보는 10대 소녀들이 꼽은 ‘도쿄에서 가장 가고 싶은 장소’ 상위권에 늘 드는 곳이다. 지난 11월27일 BTS의 팬인 시부야 요시코는 신오오쿠보를 방문했다. 마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난 듯 상점가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고 했다.

“BTS 진의 생일을 앞두고 이를 축하하는 곳이 많다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신오오쿠보에 갔어요. 마치 주말 도쿄디즈니랜드처럼 사람들이 많았어요. 멀미가 날 정도였죠.”

일본에서는 한국 선술집을 그대로 재현한 음식점(사진)이 여럿 생기고 있다. 내건 간판도 ‘기적이 일어나다’ ‘돼지의 신’ 같은 한국어 일색이다. 한때 서울 홍대입구 등지에 일본을 옮겨놓은 듯한 술집과 식당이 들어섰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삼겹살, 김밥 같은 음식 이름이 마치 ‘햄버거’처럼 무리 없이 통용되고 있다.

한류 전문 저널리스트 요시자키 에이지는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 문화의 일상화’라 일컫는다. 이는 코어팬들의 확대라는 형태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배용준 열풍과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의 시너지 효과로 한류 열풍이 시작됐습니다. 말 그대로 붐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했을 때 지상파 TV는 연일 해당 이슈를 때렸고 ‘한류는 끝났다’고 보도했죠.”

한류의 인기를 부정하는 일본의 일부 레거시 미디어의 논조는 여전하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한국 콘텐츠가 나올 때마다 우익 패널들은 한국 정부 개입설이나 매수설을 공공연히 언급한다.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의 작품성이나 국제적인 인기보다는 스토리 속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집중하고 폄하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어 간판과 메뉴, 한국 선술집을 그대로 재현한 일본의 술집, 한국 문화에 대해 친말감을 느끼는 일본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사진| 나나 SNS

한국어 간판과 메뉴, 한국 선술집을 그대로 재현한 일본의 술집, 한국 문화에 대해 친말감을 느끼는 일본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사진| 나나 SNS

이에 대해 요시자키는 “2015년부터 일본 미디어 환경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한국 문화의 일상화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TV 같은 기존 미디어를 보지 않는다. 당연히 레거시 미디어가 주장하는 논조는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34.9%다. 저조한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우선 남성은 27%, 여성은 42.5%가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세대별로 보면 60대와 70대는 2%, 40대와 50대는 3%, 30대는 4%대지만 20대 이하는 무려 54.5%가 한국에 호감을 보였다. 요시자키는 “한국 문화를 즐기는 연령대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한국 문화가 곧 ‘힙한’ 것이라는 공식이 통한다.

“요즘 일본 아이들은 유튜브 속 K팝 콘텐츠로 춤이나 노래를 처음 접합니다. 얼마 전 댄스스쿨 선생님을 인터뷰했는데 ‘자국의 아이돌을 먼저 접한 후 K팝 아이돌을 보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젊은이들 사이에서 콘텐츠의 국경은 사라지고 있고 그 자리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K팝, K드라마, K웹툰이죠.”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점점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한국 문화가 일본의 다음 세대에게도 주류 문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어렵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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